reing in Busan.

I Have A Dream - ABBA

by 레잉

2019년 2월 7일 나는 일본 오사카에서 부산으로 혼자 떠났다.


한국어능력시험 최상급을 취득할 정도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지내본 경험은 겨우 3주가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나의 한국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무게감을 주려면 현지에 가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가게 되었다.

한국 도시 중에서 특별히 부산을 고른 이유가 있다.

꼭 부산으로 가야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어서이다.


나는 일본인이지만 한국의 뿌리가 있다.

나의 증조부모님은 일 때문에 일본과 한국을 자주 왕래하셨다.

덕분에 두 분은 한국에서 만나 긴 연애 끝에 결혼을 하셨고 나의 외할머니를 낳으신 후 일본에 돌아오셨다.

술을 드시면 항상 아리랑을 부르셨다고 하니 한국생활이 좋으셨던 것 같고 한국을 정말 사랑하셨던 것 같다.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좋은 인연이 닿을 수 있었던 이유, 많은 한국 분들이 나에게 잘해주신 이유,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하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라고 물어보면 “한국어 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라고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해 왔던 이유도 다 궁금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한 번도 만나 뵌 적은 없으나 한국 문화나 한국어를 가까이하면 할수록 증조부모님과 나의 거리도 가까워지는 것 같고 한국어를 통해 많은 행복을 느꼈다.


나의 직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후에 한국으로 여행 갔을 때 4박 5일간 서울과 부산에 머문 적이 있었다.

부산에서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서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익숙함이 있었다.

나는 부산이 마음에 들었고 이유 없이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부산에 크게 끌리는 이유가 “과거에 증조부모님이 부산에서 지내셨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는 증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세한 주소를 받아서 그 장소에 찾아가 보려고 외할머니께 주소를 물어봤다.

기대감을 품고 물어본 나에게 외할머니는 京城 龍山(경성 용산)이라고 알려주셨다.

부산 근교도 아닌 서울이었다.

나의 직감은 완전히 틀렸다.

그렇게 오해로부터 시작하게 된 부산 생활이지만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엉엉 울며 오사카를 떠난 2019년 2월에도, 비자 만료로 부산을 떠나야 했던 헤어짐이 그저 아팠던 2020년 1월에도,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늘 부산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나의 직감은 결국 틀렸지만 부산을 선택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나에게는 과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과 자꾸만 인연이 닿았다.

진짜 좋은 인연이라는 건 좋은 관계가 잔잔하게 오래 유지된다고 생각하는데 부산에서 닿은 인연은 딱 그런 인연들인 것 같다.


1년 동안 지내면서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들이 좋을 수는 없었다.

솔직한 한국 문화가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어 많이 어려웠다.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 하나에도 뭐라고 대답을 해야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 하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곤 했다.

왜냐하면 나의 일본 생활에서는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지내는 1년 동안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항상 먼저 물어봐 주고 항상 나의 생각을 존중해 주었기 때문에 나도 점점 속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보다 인간관계가 많이 편해지고 즐거워졌다.

한국 가기 전과 후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어느 순간부터 나도 한국에서 배웠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주변 사람들도 나처럼 인간관계에 있어서 편해지고 즐거워졌으면 좋겠다.


일본에서 나에게 “한국의 어떤 점을 제일 좋아해요?”라고 사람들이 자주 물어본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식의 차이라고 대답을 한다.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있을 때 어르신이 서 계시면 자리를 양보해 드린다.

일본에서는 어르신들이 괜찮다고 거절을 한다.

그렇다고 다시 앉기에는 내가 불편하고 또 서 있기에는 어르신들도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결국 서로 불편한 마음만 생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르신들이 고맙다고 하시며 앉으시고 내릴 때 또 한 번 고맙다며 나에게 다시 자리를 내어 주시기까지 한다.

줄 때는 물론 받을 때에도 솔직하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한국의 방식이 편하고 좋았다.

돌려서 말하는 일본의 방식으로는 상대방에게 배려가 아닌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옳은 행동도 자꾸 망설이게 된다.

옳은 행동을 하기에 주저하지 않고 또 옳은 행동을 받기에도 주저하지 않는 솔직함 때문에 한국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일본보다 조금 직설적이기도 한 한국 문화가 낯설고 어려웠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런 문화 때문에 한국이 더 좋아졌다.


길고도 짧았던 1년 동안 나는 부산에서 많은 것을 받고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어를 공부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는 지금,

부산 생활을 시작한 그날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내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한국어로 나의 마음을 이렇게 남겨 볼 수가 있어 참 행복하다.


부산에서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즐겁게 지낸 나는 또 한국으로 가야 될 것 같은 직감 때문에 올해 안에 부산을 또 찾아갈 것 같다.

이번 직감은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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