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는... 모르겠는데요.

도를 아십니까의 추억

by 레이니아
한국에서 오셨나 봐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껄끄러움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직관은 정확하게 들어맞은 편으로, 훗날 필자가 "난 독일에서까지 '도를 아십니까?'를 만나본 사람이야!"라고 외칠 수 있는 기억이 되었다.


살면서 한 번쯤 '도를 아십니까?'류의 종교적 권유를 안 받아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나름 가이드가 있다고 들었는데, 혼자 다니면서 쉽사리 거절을 못할 것 같은 사람, 좀 거칠게 말하자면 내성적인 사람을 주로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도 첫인상이 나쁜 편인 것 치고 이런 종교적 권유를 꽤 많이 받아봤다. 다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필자 성격이 원만한 편은 아니라는 점. 그래서 무사히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필자의 기억을 되짚어 종교적 권유에 관한 필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몇 가지 유형을 나눠보았다.




시작하기 전에, 늘 그렇다시피 이는 필자의 지독하게 개인적인 견해가 반영된, 철저하게 주관적인 글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상식이라 생각하는 궤도를 아득하게 넘어가는 일이 많으므로, 얼마나 많은 종류와 마주쳤는지 정도만 보면 좋겠다. 또한, 도(道)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으나, 필자 기준으로 가는 길 방해하고 믿음을 팔면 다 도(道)로 정의했음을 밝힌다.


1. 정통파 - 도를 아십니까?

요새는 많이 줄었지만,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 '정통파'. 돌직구로 사람의 허를 찌르는 유형도 여기 속하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뜸 다가와서 무조건 "도를 아십니까?" 류의 이야기를 꺼낸다. "도를 아십니까?" 외에도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혹은 "내세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유형도 있다.


계단 옆에서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도를 아시나요?' 따위의 말을 건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유형은 쉽게 걸러낼 수 있어서 좋지만, 이들이 이런 영업을 하는 곳이 좀 으슥한 곳이라든지 밤길에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이런 질문을 하면 굉장히 무섭다. 쫄보인 필자는 이런 상황에 처하면 비명을 반쯤 삼킨다. 정말 도를 아는지 묻는 판정 의문문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 달려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 물리적인 접촉까지 일어나진 않으나 반응하지 않고 지나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2. 잔 다르크파

본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형태로, 주변의 반응이나 불러올 여파는 생각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경우다. 대개는 지하철에서 마주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고성방가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고, 격앙된 표현은 덤으로 따라온다.


지하철에서도 방심할 수 없다. 아니, 이미 지하철은 온갖 일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이론적 근거가 되는 책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본인을 입간판처럼 꾸미고 오는 사람도 있다. 혹은 도심 한복판에서 확성기 혹은 마이크와 앰프를 가지고 종교적 신념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형태는 1:多 전파를 목적으로 하기에 자리를 뜨거나 당사자가 지나가길 기다리면 해결할 수 있다. 정말 악질적인 형태는 여기서 1:1로 뜻을 설파하는 경우.


지하철 안이라면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지하철 문자 신고로 해결하자. 본인의 귀찮음이 여러 사람의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만약 본인에게 달라붙었다면, 역시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지나갔을 때 신고하자.


3. 유야무야파

말을 하지 않는 경우, 혹은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시도하는 경우를 모두 여기에 넣을 수 있다. 비교적 온건한 편으로 경우에 따라선 꽤 호의적으로 볼 수도 있다. 좀 좋지 않은 사례를 꼽으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내리는 곳 앞 같이 혼잡한 데서 사람의 흐름을 막아가며 종교적 전단지를 남기는 사례. 이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으므로 좋지 않다. 지하철에서 한 사람마다 쥐어주고 가는 것도 별로 좋지 못한 사례. 지하철에 쓰레기 투척은 문제다. 역시 문자 신고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꽤 재미있는 일을 겪었는데, 어느 날 취재 중에 몸이 좀 좋지 않아서 근처 약국에서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좀 샀다. 약사 분이 친절하게 복약지도도 해주시고 이것저것 신경도 써주셔서 처음 간 약국이었음에도 호감이 생겼는데, 계산까지 마치고 약 봉투를 주면서 '아 이거요.' 하면서 뭔가를 봉투에 담아주시더라.


'뭔가 덤으로 챙겨주셨나' 싶어서 꾸벅 인사하고 나와서 나중에 살펴보니 종교 관련 책자더라... 묘한 배신감을 느끼며 쓰레기 통에 넣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4. 회유파

필자가 굉장히 싫어하는 유형으로, 대부분 사람의 호의를 이용해먹으려는 시도가 많다. 이런 유형은 대개 다른 소리로 말을 붙잡고 교묘하게 자신의 목적을 취하려고 하는데, 호의로 얘기를 들어줬다가 알고 보니 다 쓸데없는 이야기였다는 걸 깨달으면 무척 화가 난다.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여러 가지 유형이 있으나 대표적인 유형이 길 물어보기. 근처 장소를 물어보고 가는 길을 가르쳐주려고 할 때 서로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물어보거나, 설명을 다 듣고 '그런데...'로 시작해서 목적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더 악랄한 경우는 방향감각이 떨어져서 혹시 가는 길이 맞으시면 근처 표지까지 데려다 줄 수 있냐고 물어보고 승낙하면 따라가며 종교적 목적을 회유하는 경우다.


누가 보면 전문 협상가인 줄... (출처 : SNL 코리아5 E12. 네고시에이터)


지하철에서 급하게 가다가 뭐 떨어뜨린 것 같다고 해서 습관적으로 감사인사를 하고 둘러봤더니 '실은...'으로 시작해서 사람 붙잡기.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다가와서 '죄송한데 좀 급한 설문조사가 있어서 초록불로 바뀌기 전 30 여초 정도만 동영상 보고 설문조사 하나만 해주시면 안 되겠냐'고 해서 무슨 동영상인가 봤더니 전도 동영상. 이처럼 사람의 호의를 이용하는 경우는 성공률이 높은 편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알아챈 순간 무시하고 그냥 갈 길 가는 게 최상, 상큼하게 쌍욕을 시전하고 돌아서는 게 상책이다. 이런 불순한 사람들 때문에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혹시나 그런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부끄러운 줄 아시라.


5. 거머리파

이 유형은 진짜 지독하게 달라붙는 유형이다. 말로 따라 붙는 것도 있지만, 이대로 두면 가는 목적지까지 쫓아오면서 말을 걸 것 같다는 불안함을 느끼게 하는 유형. 이런 유형은 확실하게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게 좋다. 가끔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말을 트는 거라고 쫓아오는 유형도 있지만, 아래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경찰에게 인계하자.


최악의 경우 중 하나.


제일 끔찍한 유형이 신체적 접촉을 하는 유형이다. 옷깃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악수를 하거나 손목을 덜컥 붙잡는 경우도 많다. 사람 사이의 물리적 공간을 무시하는 유형으로 굉장히 혐오감과 불쾌감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런 유형이 신체 접촉을 쉽사리 그만두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네가 회회(回回) 아비도 아니고, 내 손목을 왜 잡아!"하고 뿌리쳐도 계속 붙잡고 따라오는 등, 나이트 삐끼 같은 모습을 보이는 악질도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범죄의 영역이다. 경찰에 신고하자.


거머리 유형은 다른 유형과 섞이기도 잘한다. 길 물어보다가 갑자기 손목을 잡는다든지 등으로 연계할 수 있어서 유의해야 한다. 신체접촉을 하는 순간 소리를 지르든 하여 분명한 거부의사를 밝히고 손을 떼야한다.


6. 기타, 뜬금파

흔치는 않지만, 가끔씩 정말 뜬금없는 말을 던지는 유형이다. 필자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기억이 있다. 하나는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쩡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대뜸 다가와서는


학생, 하나님의 이름이 뭔지 알아?


515a1a36fa6be87a43afa11731b544f9.jpg 뭐래는 거야


'이게 뭔 개소린가?' 싶어서 벙찐 얼굴로 쳐다봤더니 이게 조건이 되었는지 2. 에서 소개한 잔 다르크형으로 돌변, 갑자기 하나님의 이름이 뭐고 영생을 해야 한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관심을 보인 필자가 등신이었지만 때는 이미 늦으리오. 다행히 차가 제 때 도착해서 타고 도망쳤다.


위에서도 소개했던 독일 전도(!?)는 베를린 소니 센터 앞에서 한글을 발견하고 웃었다가 이 소리를 듣고 누가 다가와서 세미나에 초대한 것(링크)이었다. 정중한 초대에 필자 일행도 정중히 거절했기에 무탈하게 지나갔지만, 설마 해외까지 나가서 이런 일을 겪을 줄 몰라서 무척 당황했다.


또 하나는 지하철 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데 웬 여성이 앞을 가로막고 뭔가를 물어보려고 하더라. 그랬는데 알고 봤더니 필자가 맘에 든다고 혹시 지금이나 저녁에 시간이 되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저, 초면에 죄송하지만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데
혹시 시간 좀 괜찮으세요?


b0010453_54dd8e82c4975.jpg 네? 저를요?


뻥 아니고 진짜로... 필자 몸뚱이를 보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나, 필자도 사람이고 남자인지라 혹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 게 화근이었다. 혹한 필자에게 그 여성분은 아직 번호도 교환하지 않은 그 자리에서(!?) 진짜 청춘에게 중요한 게 있다면서 그게 뭔지 아는지 물어보는 무리수를 저질렀고, 필자는 '여자가 말 건다고 혹한 내가 등신이지...'를 되뇌며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심지어 그냥 무시하고 가려니 '뭐 급한 일 있느냐'고, 정말 마음에 들어서 말 건 거 맞다고 하셨다. 그 마음이 그 마음이 아니었던 게지. 이제 방에 가서 이불 좀 차고 와야겠다.


아무튼 이런 형태는 반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했을 때, 모든 반응을 멈추고 최대한 신속하게 도망치는 수밖엔. 특히, 어디서 선남선녀가 갑자기 마음에 든다고 말해도 절대 혹하지 말자.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여기 걷어차게 이불 좀 더 가져다 주세요.)




남들 다 겪어봤을 일이겠으나, 이렇게 분류하는 게 또 재미 아니겠는가? 필자는 여러분의 온갖 놀라운 '도를 아십니까?'와 관련된 일화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필자 주변에는 이미 제사까지 지내고 돈까지 알차게 기부하고 온 기부천사도 있는데, 이 외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면 같이 얘기도 나눠보자.


필자가 가져온 이불, 여러분에게도 나누어 드리겠다.




출처
(이하 삽입순, 출처 표기가 불분명하거나 Copyleft인 경우는 미처 출처에 넣지 못한 게 있다.)

renee_mcgurk, dark alley : https://flic.kr/p/dZYyDV

e-MagIne Art, Pills 1 : https://flic.kr/p/8dZbk4

네고시에이터, SNL 코리아 5 E12 : http://i.ytimg.com/vi/w4FB1t-cR6o/maxresdefault.jpg

Dave H Franks, Scabbard-grip on wrist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cabbard-grip-wrist-1.JPG

lily, 재미있는 바른생활 표어 포스터 : http://dorothea.egloos.com/5717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