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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Sep 14.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6

은평의 하루 (2)


- 은평의 하루 (1)

은평의 하루 (2)

- 은평의 하루 (3)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정하고 노력을 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워 하나씩 단계를 밟으며 목적지에 다다르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고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발생해 애써 일구어 놓은 것들을 일순간에 무너트리기도 한다.


이런 순간이 오면 목표를 바꾸거나 계획을 수정하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거대한 폭풍에 휩쓸리면 계획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맑은 하늘을 바라 보고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며 길을 나서야 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동민의 편에서 흘러야 했을 시간은 아침부터 동민의 머리채를 움켜 잡고 빠르게 내달렸다.


오늘 계획했던 강화도 드라이브, 바닷가 카페 멍 때리기 등의 일들은 이미 동민의 머릿속을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그래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동민의 방만큼은 여전히 적막하고 조용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코를 찌르는 듯한 술냄새만 아니라면......


뭔가 잘못됐다.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분명했다.






방 한 곳을 노려보던 동민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정희야."


"......"


"정희야. 잠은 집에 가서 자야지, 응?"


"......"


"아침부터 술을 처먹었으면 곱게 집에 가서 자야지! 이렇게 아무 남자 집에서 처자면 안 되지! 그리고 네놈이 누워있는 건 내 침대란 말이다!!"


"...... 오빠"


"왜?"


"닥쳐"


그 짧은 한마디를 내뱉은 정희는 다시 잠들었고, 동민이는 가슴까지 올라온 욕지거리를 가라앉히느라 얼굴색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후우ㅡ"


크게 한 숨을 내쉰 동민은 방문을 닫고 나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자고 있는 저 망할 동생 놈을 보고 있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아직 아침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배달앱을 켜고 빠르게 음식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침은 이미 망쳤지만 밥이라도 맛있는 걸 먹어야 기분이 좀 풀릴 것 같았다.


저 악마가 깨기 전에 빨리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손가락을 빛처럼 빠르게 움직여 주문을 완료하고, 요청 메시지에 한 줄을 적었다.



- 사나운 개가 있으니 문은 두드리지 말아 주세요.



동민은 만족스러웠다. 이 한 줄이 오늘 한 일 가운데 가장 완벽한 일이 될 것이라 장담했다.


그렇게 만족감을 느끼면서 빨리 정희를 쫓아내고 내 하루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음식이 배달되었다.



"맛있게 드세요!"



문을 두드리지 말라고 하니 큰 목소리로 말씀하시네......


'네...... 기사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눈을 질끈 감고 배달기사님께 속으로 인사를 마친 동민은 현관을 열고 포장된 음식을 집어 들었다.


포장비닐 사이로 빠져나온 음식 냄새가 동민의 코 끝에 닿으니 허기진 뱃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냄새가 너무 좋다. 빨리 먹어야지!'


방으로 들어가려 몸을 돌린 순간 동민의 얼굴은 봐서는 안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빠르게 굳어버렸다.

당연하게도 그 앞에는 사나운 개가 으르렁 거리며 서있었다.



"오빠, 그거 파인애플 볶음밥이지?"



냄새만으로 음식을 맞추는 신기를 보던 동민은 내심 감탄을 했지만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정신 차리려 했다.



"아니 조금 전에는 오빠 말 다 씹고 자더니, 왜 기어 나왔어! 빨리 들어가 더 자!"



이미 입가에 침을 흘리면서 반쯤 풀린 눈으로 동민을 쳐다보고 있던 정희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내놔."


"......"


"나 술 덜 깼어. 해장이 필요해. 그러니까 내놔. 그거."






만약 친동생이 있어 같이 살았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침도 모자라 점심까지 강탈당한 동민은 동생 놈이 마귀 같은 모습으로 음식을 흡입하는 모습을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진짜 있었다면 저 모습을 평생 보며 속이 터져나갔을 테니까.



"맛있냐......?"


"움 아 이딥 좋아해. 아오 아부 시겨. (응 나도 이 집 좋아해. 나도 자주 시켜)"


"그래, 많이 먹어라. 많이......"


슬프다. 아니, 슬픈 건지 힘든 건지 모르겠다.


"아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더 사줄게."



말을 하던 동민은 잠시 제가 미쳤나 생각했다. 쫓아내도 부족할 판에 먹고 싶은걸 더 사주겠다니.


'세상에 호구가 의외로 많다더니, 그게 나였구나. 나였어......'


서글픔이 밀려오던 동민의 생각과는 다르게 반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착한 일을 하면 보답받는다는 게 이런 걸까?



"아니야 오빠, 충분해. 많이 먹었어. 그만 먹고 이제 집에 가야지."



동민은 순식간에 반의 반으로 줄어든 볶음밥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오? 그래 아침부터 해장하느라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 아무래도 집에서 자는 게 더 편할 거 아냐."


"응, 오빠 잘 먹었어. 있다가 저녁에 뭐해? 할 일 없지? 전화할게."


"아니 난 있다가......"


"저녁 6시쯤 전화할게. 아까 아침에 얘기 다 못했어. 그거마저 얘기해줄게."


"아니 나는 전혀 궁금하지......"


"오빠 나 간다! 전화할게 받아! 안 받으면 쳐들어올 거야! 알았지?"


쿵.



잠시 대화라는 게 되는구나 싶었는데, 그건 동민의 착각이었나 보다.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정희가 먹고 남긴 한 덩이의 볶음밥을 먹으려 발걸음을 옮겼다. 망할 동생이지만 그래도 녀석이 먹던 음식을 같이 먹는 것에 거리낌은 느껴지지 않았다. 빨리 먹고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다시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오빠! 미안한테 택시비 좀 빌려줘! 걷기 힘들어. 택시 탈 거야!"



'밥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꺼졌으면 좋겠다.'


태풍 앞에서 계획이라는 것은 무가치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동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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