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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Sep 15.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7

은평의 하루 (3)

- 은평의 하루 (1)

- 은평의 하루 (2)

은평의 하루 (3)






이른 저녁, 은평구의 어느 한 실내포차.


동민은 당연하게도 이곳에 앉아 있었다.

살짝 짜증 어린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는 동민의 앞에는 정희와 진우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정희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진우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큰 소리로 깔깔 거리며 물개 박수를 쳐댔다.


동민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녀석들의 수다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아...... 난 대체 왜 여기 있는 걸까?'



동민이 둘의 수다에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어제저녁 있었던 모임에는 동민이 없었기도 했고, 무슨 일이 있었던들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저 빠른 수다와 그 앞에서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박수를 치는 두 인간의 소란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런 수다는 동민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동민의 의지와 무관하게 여기에 소환되어 앉아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제 새로 나온 사람이 그 난리를 쳤던 거야. 웃기지 않아? 그치?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음? 아니 그 사람이 뭘 하든 내가 알바 아니지. 그러게 이상한 사람 있으면 그냥 나왔어야지. 왜 앉아서 그 꼴을 보고 있었냐?"


"아니 아니, 오빠 잘 들어봐. 그게 아니라 그 인간이 어제......"



순간 동민은 아차 싶었다.


정희는 지금껏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 시작했고, 동민은 꼼짝없이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아...... 저 열정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한편으로는 존경심이 생길 것도 같았다.


정신이 혼미해져 눈이 살짝 풀린 상태로 듣고 있는 동민을 본 정희가 갑자기 소리를 꽥 질러댔다.


"아니 그러니까 어제 오빠도 나왔어야지! 내가 안 불러도 알아서 재깍재깍 나왔으면 힘들게 설명 안 해도 됐을 거 아냐! 솔직히 말해봐. 어제 술 마셨지? 언 년이랑 마셨어, 불어! 새언니 되실 분이야? 어?"


존경심은 개뿔......


동민은 귀가 아팠다.

분명 잔소리는 아닌데 정희의 말이 귀와 가슴을 동시에 찔러왔다.



"나 엄청 오랜만에 백수가 됐잖아. 그 시간 좀 즐겨보려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


"오빠 여행가게? 어디 갈 건데? 같이 가자. 모임에서 친한 사람 몇 명 껴서 같이 다녀오면 재미있겠다!!"


"아니, 정희야. 그냥 나 혼자 좀 있게 해 주면 안 될까?"


"아니지, 오빠 잘 생각해봐. 오빠는 독거노인이잖아? 그렇게 혼자 있다가 꽥하고 가버리면 아무도 몰라. 뉴스에 많이 나오잖아! 그러니까 오빠가 꽥하는 순간에 주변에 누군가 있으면 늦지 않게 관 뚜껑 닫아 줄 수 있잖아! 아니, 이건 내가 오빠를 도와주는 일이라니까?"


"개새......"



저 동생 놈은 아무래도 나를 빨리 묻어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다고 내 재산을 상속받을 것도 아닌데......


"깔깔깔깔깔깔!!!"


그 옆에 있던 진우는 얼큰하게 술이 올랐는지 붉게 상기된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물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동민은 한 사람 안에 어울리지 않는 세 가지 모습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었다.






동민은 은평으로 이사를 올 때까지만 해도 슬로우 라이프와 비슷한 생활을 할 거라 생각했었다. 전혀 연고가 없는 처음 와보는 동네이기도 하고, 지인들과도 거리가 제법 먼 곳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 몇 개월은 예상했던 것처럼 보낼 수 있었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출근길 버스를 타고, 퇴근 후에는 잘 정비된 불광천 러닝을 즐겼다. 집 벽에 설치한 프로젝터로 영화도 보고 낯선 골목골목으로 산책도 다니며 방해받지 않는 삶을 보냈다.


그 모임에 가입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커졌고, 우연히 가입하게 된 동네 모임을 처음 나가는 날에 하필이면 이 두 악마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한 번의 선택이 동민의 모든 시간을 폭풍 속에 집어던질 줄이야.


동민은 한 숨을 쉬며 모임에 가입하기 전 삶을 마음속으로 잠시 동경했다.



"정희야, 그런데 넌 출근 안 하냐? 오늘 평일인데 왜 놀고 있어? 또 잘렸냐?"


"어허, 잘리다니! 내 발로 나온 거야. 내 발로! 아닌 말로 직원들이 그렇게 텃세를 부려대는데 그걸 어떻게 버텨! 그런데는 오래 다녀봐야 어차피 똑같아. 아니다 싶으면 원형탈모 생기기 전에 튀어야지!"


"그래서 언제까지 놀건대? 이 오빠는 네가 빨리 취업하고 남친도 생겨서 저 멀리서 놀았으면 하는 큰 소망이 있네."


"깔깔깔깔깔!! 정희가 남친이 생긴데 우하하하하하!!!"



진우야, 목소리 좀 낮춰주지 않으련?

저기 저쪽에서 주인아저씨가 쳐다보고 있잖니.

주변에 손님이 없다 해도 내가 다 부끄럽다......



"오! 그럼 오빠도 빨리 여친 만들어. 같이 커플끼리 놀러 다니게! 커플여행 그거 해보고 싶었어!"


"......  그걸 왜 나랑 하는데."


"아니 오빠 관 뚜껑 닫아 줄 사람은 나뿐이라니까? 오빠 목 잡고 넘어가면 여친이 도와줄 것 같아? 어림없지! 독거노인이 쓰러지면 여친이고 나발이고 다 남 되는 거야! 남!!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 그걸 할 사람은 나뿐이라니까?"


"개새......"


"깔깔깔깔깔!! 관 뚜껑 닫는데!! 우하하하하"



진우 녀석이 아예 머리를 뒤로 젖히고 배까지 움켜잡을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

저러다가 뒤로 넘어가겠는걸?



쿵!


넘어갔다.



뒤로 재껴 물개 손뼉 치며 웃던 진우가 뒤로 넘어갔다.

물론 테이블은 뒤집혔고 넘어지면서 정희도 잡고 넘어갔으니 둘 다 무사하지는 않으리라.


내심 고소를 머금던 동민은 달려가 정희 팔을 끌어 일으켰다.



"괜찮냐? 풉!  머리 안 다쳤어?"


"오빠...... 중간에 풉? 이런 소릴 들은 거 같은데?"



동민은 그 말을 무시하고 진우를 일으키기 위해 다가갔다.



"오빠, 진우는 어때? 쟤 왜 안 일어나?"



잠시 진우를 바라보던 동민은 얼굴에 한 껏 미소를 머금었다.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진우는 지금 세상 평온한 얼굴로 바닥에 누운 채 잠들어버렸으니까.



"저... 저 새끼...... 누운 김에 처자고 있네."



동민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사 가야겠다......'




- 은평의 하루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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