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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Sep 19.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9

여기 있었구나. (2)

- 여기 있었구나. (1)

- 여기 있었구나. (2)

- 여기 있었구나. (3)






이상한 일이다.


동민은 분명 최근에는 산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했다고 하기에는 상태가 너무 깨끗하고 멀쩡했다.


동민은 언제부터 집에 있던 건지 기억해보려 했지만, 계속 떠오르는 잡생각들의 방해로 집중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한 눈으로 거실의 선풍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예전 원룸에 원래 있던 걸 들고 온건가? 모르겠다. 뭐..... 아니면 누구한테 받았거나 했던 거겠지.'



동민은 거실의 선풍기를 향한 시선을 빠르게 거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그토록 원했던 좋은 분위기 속에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 아쉬움이 너무도 크게 남았다.


무엇보다 토요일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짜증을 부리며 침대 위에 엎어졌다.



'아깝네... 평일 동안 그렇게 기다리던 주말이었는데! 뭐 괜찮겠지. 내일 잘 보내면 되니까.'



내일은 동민이 기대하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동민 씨. 어서 오세요!"



회의실처럼 생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넓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심 풍경이 멋지게 펼쳐져 있었고, 살짝 고개를 숙인 한 여성이 밝게 웃으며 동민을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수진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동민의 시선은 테이블을 향해 내려왔다.


한쪽에는 용도는 알 수 없지만 잘 찍은 사진이 한 장씩 담겨있는 카드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그 옆 테이블에는 타로카드가 부채꼴로 예쁘게 펼쳐져 있었다.


동민은 이상하게도 타로카드에 자꾸 시선이 갔다.

마치 저 카드에 묻고 싶은 게 있는 것처럼.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들의 용도를 궁금해하던 차에 막 도착한 사람들이 방 안으로 들어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순식간에 방 안은 살짝 들뜬 목소리들로 가득 차며 수다스러워졌고 동민 역시 자연스레 녹아들기 위해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했다.


동민에게 있어 오늘 이 모임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친구나 지인들과는 하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때로는 가까운 사이보다 낯선 사람에게 꺼내기 편한 이야기도 있는 법이니까.



왁자지껄했던 분위기는 빠르게 차분해졌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모임이 시작되었다.


동민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와 안정감을 받으려 했고, 한편으로는 깊이 감춰둔 자신의 이야기들을 꺼내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싶었다.


특히,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제의 찝찝한 기분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법한 일이잖아요? 동민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갑자기 들려온 이름에 동민은 깜짝 놀라며 눈의 초점을 바로 하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수진은 동민의 대답이 궁금하다는 듯 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동민은 그 눈빛에 아차 싶으며 등으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껴야 했다.



'아, 이런. 또 멍해졌었구나. 큰일이네......'



방금 했던 실수가 큰일은 아니었다.

자꾸 이렇게 대화를 놓치고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에 걱정이 생긴 것이었다.


이런 상태가 오래가거나 심해진다면 분명 안 좋은 일들이 생길 테니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러다 말겠지 싶던 생각이 이제는 조급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예. 몇 년 전에, 이사 오기 전에... 어... 그게......"


"예?"


"...... 아, 아니에요.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헛소리가 나왔네요. 미안해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빠르게 주어 담으며 사과를 한 동민은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기억나질 않아. 예전 살던 때가...... 잘 기억나질 않아.'


동민의 심장이 다시 작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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