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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Oct 13.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19

대화



“계속 그렇게 입 닫고 있어. 좋아도 같이 좋고 힘들어도 같이 힘든 건데, 답답한 것도 똑같지 않겠어..?”

- ......



며칠째 마음과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요지부동이다. 이대로 들러 쪼개진다면 다중이... 그러니까 이중인격자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나는 잘 모르겠어. 내가 너와 같은걸 공유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사이에 너무 큰 강이 있는 것 같아. 사실 우리라는 표현도 웃기지...”

- ......


“그래, 계속 침묵하고 있어. 속이 터져도 같이 터지는 거니까.”



내 이성이 계속 속마음에 대화를 청해봤지만 메아리도 없는 적막한 침묵만 느껴졌다. 그러기를 며칠째. 드디어 이 녀석, 그러니까 내 속마음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 늘 나를 무시했잖아.

“무슨 말이야? 내가 언제...  아니 우리는 하나인데 그게 가능해?”


- 정말... 하나라고 생각해? 이렇게 네가 얘기 좀 하자고 하는데?

“......”


“예전에... 그러니까 한 20살 그쯤.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해? 삶이 어땠는지, 그때는 왜 그렇게 즐거웠는지 말이야.”

- ......


“그때 우리는 이렇게 다툰 적이 없었어. 같이 고민하고 같은 결론을 내렸지. 우린 하나니까. 그런데 지금은...... 말해 뭐하니. 너무 힘들다”


- 틀렸어. 그게 아니지. 너는 이성이니까 힘든 게 뭔지 이해 못 해. 그건 내가 느끼고 너에게 알려주는 거야. 20대 때...? 난 기억 못 해. 그건 네 역할이거든. 중요한 건 어느 순간부터 네가 나를 배척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내가 뭘......”

- 아마도 우리가 즐거웠을 때는 이랬을 거야. 선택에 당당했고 실수해도 상처받지 않았어. 너와 내가 끊임없이 대화하고 위로하고 의지했거든. 그런데, 언제인가 부터 너는 나를 감추기 시작했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나 뭐라나...


“그건 오해야. 단지 사회생활에 필요했기에 그랬던 거잖아.”

- 아니... 넌, 아니 우리는 사랑할 때조차 그랬어. 상대를 관찰하고 가늠했어. 관계가 어디까지 이어지는 게 좋은지 계산하고 선을 그었지.


“......”

- 그거 알아? 난 그저 사랑하고 싶었어. 외로우면 외롭다고 티 내고 싶었고, 아프면 아프다고 외치고 싶었어. 그렇게 누군가 나를 돌아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게 나니까.


“때로는 가면을 쓰고 아파도 괜찮은 척, 외로워도 멀쩡한 척, 힘들어도 즐거운 척해야 좋은 일들이 일어나. 지금도 봐봐. 우리 삶이 많이 안정되고 여유라는 것도 생기고 있잖아? 우리가 저녁마다 운동을 하고 주말마다 카페를 다닌 적이 있었나?  나는 이렇게 더 나은 삶을......”

- 그 안에 나는 없잖아.


“......”

- 고통도 괴로움도 외로움도 다 우리인데, 지금은 그런 게 없잖아. 너는 살아있는데 나는 깊이, 아주 깊이 감춰뒀잖아. 솔직히 나도 예전의 내가 안 느껴져. 너무 오래돼서 돌처럼 굳어버린 진흙 같아.


“알겠어. 무슨 말 하는 건지 알겠어. 우리를 괴롭히던 게 외로움도 공허함도 아니었구나. 내가......”


- 이성아, 너는 잘 알 텐데?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외로움과 늘 함께였어. 먹고 자고 일하는 모든 순간에 함께 있었잖아. 우리가 좋은 친구가 있었나? 맘 편히 만날 사람이 있었던가? 외로움이 찾아올 때 반갑다고 악수하던 때는 지났지. 지금은 같이 살아가는 있는 우리 중 하나니까. 그런데 새삼스레 이제 와서......


“그러네. 네 말이 맞네. 늘 같이 있었지. 미안해. “

- ......



대화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렇게 얘기를 들으니, 나 좀 힘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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