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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Oct 19. 2022

변곡점



몇 년 전,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때는 그저 호기심일 뿐이었다. 남는 게 시간이다 보니 무언가를 찾아보고 생각하기에 넘칠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있던 그런 때였다.

브런치를 알고 호기심에 가입할 때만 하더라도 내가 에세이나 창작을 시도해볼 거라는 생각 따위는 일절 없었고, 단지 블로그 대용으로 끄적거리는 정도로만 여겼다.


그렇게 몇 개의 글을 올리던 어느 날 아침.


푸시 메시지가 내 핸드폰의 브런치 앱으로 미친 듯이 날아들며 쉼 없이 띠링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마치 텍사스 소떼처럼 메시지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렇게 게시글 하나가 하루아침에 30만 뷰를 찍어버리는 기염을 토해내며, 말 그대로 브런치 로또를 맞게 된 것이다.

(그냥 로또가 훨씬 나았을 텐데......)


그 글은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잘 써진 것도, 이슈가 잘 정리된 것도 아니다. 심지어 결론마저도 뭔가 맹숭맹숭하게 마무리된 블로그용 수준의 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적 이슈 하나를 잘 건드렸고 제목빨(?)도 제법 잘 작용했던 탓인지 그런 행운을 누려볼 수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재미있는 해프닝이라 생각하면서도 내심 다시 한번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으며 다음 글들을 썼던 것 같다.


결국 마무리를 못하거나, 다시 보니 낯부끄러워서 사자리게 된 불쌍한 내 새끼들......


그 이후로 몇 년간 내 키보드는 겸손해졌고 침묵을 지켜왔다.






최근 들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썼던 글과는 스타일 자체가 너무도 다른 글이었다. 예전처럼 시간이 남아서도 아니고 뭔가를 기획한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 졌을 뿐이다.


내가 써본 글이라고는 주제를 정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잘 나열해서 설명하는 정보전달용 글이 대부분이었는데, 갑자기 쓰고 싶어진 글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내 얘기를 담담하게 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스타일을 시도해봤다. 에세이 같은 느낌으로, 운율을 담는 느낌으로, 그리고 감성적인 느낌으로 내가 아는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해봤다.


사실 시도해봤다는 건 틀린 말이고, 연습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


그동안 올렸던 20여 편의 글을 최근 며칠 동안 반복해서 읽었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두 손도 부족해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고 싶다.


그럼에도 글을 내리지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이 글들이 현재 내 감정 상태라 생각이 들어서였다.


20여 편의 글들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모두가 내 감정을 쏟아내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닌 쏟아내는 느낌.


글쓰기에 이제 막 입문했으니 경험도 테크닉도 없어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를 좀 봐달라는 외침이었다.

여기 내가 있으니 나를 봐달라고.

이렇게 살아온 나를 알아달라고.



'짜식. 관심받고 싶었구나.'



이번 한 주 동안 글이 잘 안 써진 이유는 아마도, 그동안 충분히 감정을 쏟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단어나 문장을 보고 감정을 끌어내서 써 내려가던 글은 이제 동이 났으니 더 이상 써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은 글을 더 써보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경험이 더 필요한 것일까......


모르겠다.

예전에 어떤 작가가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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