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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Oct 22.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21

겨울 이야기 (1)

- 겨울 이야기 (1)

- 겨울 이야기 (2)

- 겨울 이야기 (3)






항상 추운 날씨 때문에 척박해진 북쪽 땅에는 새하얀 눈을 가득 품은 숲이 있었어요.


이 숲은 땅과 나무가 항상 하얀 눈에 덮여있어서 해가 반짝이는 맑은 날에는 숲 전체가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숲에는 다양한 요정들이 살고 있었답니다.


꽃과 나무를 자라게 하는 나무의 요정.

물과 안개를 부리는 물의 요정.

땅과 바위를 만드는 땅의 요정.

노는 걸 좋아하는 장난의 요정.

그리고 모든 생명을 관장하는 생명의 요정.


이 숲에는 많은 요정들이 함께 모여서 숲을 관리하고 있었어요.


이 요정들은 서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답니다. 항상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장난치는 익살꾸러기들이지만 서로에게 좋은 말을 건네고 힘이 되어주기 위해 애쓰는 행복한 존재들이었어요.


하지만 지난 10년의 시간 동안 이 요정들은 조금씩 변해왔어요. 요정들의 노력으로 항상 푸르고 아름다웠던 숲에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생명이 태어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예전의 숲으로 되돌릴 수 없게 되자 요정들은 점점 의욕을 잃으며 자신들의 역할을 게을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익살맞은 요정들은 장난을 멈추지 않으며 항상 시끌시끌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 요정들 가운데 가장 어리고 가장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요정의 이름은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아, 너 덕분에 항상 맑고 깨끗한 눈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 고마워."



요정들의 축복 속에 겨울이는 항상 즐겁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어요.


눈이 녹거나 지저분해지면 다시 새로운 눈을 만들어 쌓았고, 호수를 얼려서 얼음 위에서 썰매놀이를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요정들은 겨울이가 만드는 새로운 놀이들에 항상 즐거웠답니다.


하루는 겨울이가 숲의 북쪽에서 놀다가 처음 보는 동굴을 발견했어요. 입구가 작아 밖에서는 찾기 힘든 곳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산 반대편까지 길게 이어지는 큰 동굴이었습니다. 겨울이는 신기해하면서도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은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동굴 안을 폴짝폴짝 뛰어다녔습니다. 그리고 동굴 안에서 몇 날 며칠 동안 얼음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땅의 요정이 겨울이에게 찾아와 말을 걸었어요.



"겨울아, 숲 남쪽에 새싹 하나가 돋아났어! 정말 오랜만에 태어난 새싹이야."


"정말? 난 아직 새싹을 본 적이 없는데,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어! 나도 데려가 줘."



둘은 날갯짓을 하며 빠르게 숲의 남쪽으로 날아갔어요.


새하얀 나무기둥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멋진 장관을 이루었지만 급하게 날아가는 둘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어요. 새로 태어난 새싹이 너무도 궁금하고 보고싶었으니까요.


마침내 두 요정은 새로운 생명 앞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이는 기대에 찬 반짝이는 눈으로 새싹을 향해 조심조심 걸어갔답니다.


하지만 겨울이가 마주하게 된 것은 허리를 숙이고 시들어버린 모습이었습니다. 겨울이는 안타까운 마음에 힘없이 발길을 돌렸어요.



"괜찮아 겨울아. 새싹이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으니까 곧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겠지? 난 정말 새싹이 보고 싶어. 새로 태어난다는 게 어떤 건지 너무 궁금해."


"응. 한번 피어나기 시작했으니까 곧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 우리 이러지 말고 서쪽 산으로 놀러 가자. 서쪽 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이 숲을 아주 높은 곳에서 한눈에 볼 수 있거든!"



두 요정은 다시 밝은 표정으로 왁자지껄 떠들며 서쪽 산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서쪽 산으로 날아가는 동안에도 둘의 수다와 장난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 서쪽산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땅 아래로 숨어들며 하늘에는 진한 노을이 멋지게 펼쳐었어요.


하늘에 떠있는 조각구름들은 노을빛을 반사하면서 더욱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고, 새하얀 눈에 덮여있는 요정들의 숲도 노을빛을 품은 눈의 색깔에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멋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겨울이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너무 멋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와... 사실 나도 이렇게 멋진 숲은 처음 봐. 나도 네가 태어난 후로 처음 와봤거든."


"그래? 그럼 다른 요정 친구들도 못 봤을 수 있겠네? 다음에는 다 같이 와서 놀자!"



둘이 수다를 나누는 동안 뉘엿했던 해는 땅 밑으로 사라졌고 다시 별이 반짝이는 밤이 찾아왔어요. 그리고 두 요정이 앉아있는 산 정상의 바위들도 어느덧 새하얀 눈으로 덮였습니다.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차분하게 쌓여가는 눈을 바라보던 겨울이가 문득 물어왔어요.



"그런데, 나 이후로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적이 없잖아. 그럼 내가 마지막이라는 건데, 이제 이 숲은 더 이상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는 거야?"


"아니야, 겨울아. 아까 봤던 것처럼 새로운 새싹이 피어났잖아. 이렇게 언제든 다시 피어날 거야. 옛날처럼 많이 피어나지 않을 뿐이야."


"옛날에는 땅도 나무도 온통 푸른색이었댔지? 숲 전체가 아까 그 새싹처럼 녹색으로 뒤덮이면 얼마나 예쁠까?"


"푸르른 숲도 정말 아름답지. 하지만 지금 눈의 숲도 너무 예쁘단다."


"왜 예전처럼 새싹이 피어나지 않게 된 걸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하지만 이건 확실해. 그 새싹처럼 너 이후로도 많은 새싹들이 피고 졌을 거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밤은 깊어졌고 두 요정은 어느새 서로에 기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두 요정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생명의 요정은 얼굴에 작은 미소가 맺혔지만, 속으로는 안타까운 마음과 슬픈 감정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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