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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Oct 23.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22

겨울 이야기 (2)

- 겨울 이야기 (1)

- 겨울 이야기 (2)

- 겨울 이야기 (3)






두 요정이 잠든 사이에 서쪽 산의 정상에는 많은 눈이 쌓였어요. 멀리서도 보일만큼 새하얀 눈이 산 정상을 가득 매웠답니다.


소복소복 눈이 쌓이면서 어느덧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서쪽 산의 정상은 아침 햇살을 받아 더없이 밝고 찬란하게 빛이 났습니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눈을 비비며 일어난 두 요정은 서로를 바라보고 키득키득 웃으며 기지개를 켰어요.



"겨울아, 이제 숲으로 내려가자. 친구들이 널 걱정하고 있을지도 몰라. 숲에 안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났잖아?"


"응. 그래야지. 북쪽 동굴에서 너무 오래 놀았어. 친구들이 걱정할 거야."



그렇게 아침을 맞이한 두 요정은 가볍게 날갯짓을 하며 숲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한 요정이 다급하게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겨울아, 너네 여기 있었구나!"


"어라?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겨울이가 안 보여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 산 꼭대기가 숲에서도 보일만큼 눈이 쌓였더라고!"


"아 그렇구나. 어때 멋있지?"


"그것보다 우선 숲으로 같이 가자. 동쪽 숲에 새싹이 또 피어났어!"



그 말을 듣자마자 신이 난 겨울이는 들뜬 날갯짓을 하며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요. 얼굴에 함박웃음이 핀 겨울이는 아직 출발하지 않은 요정 친구들을 보며 소리쳤습니다.



"얘들아, 뭐해. 빨리 따라와!"



세 요정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빠르고 경쾌한 몸놀림으로 눈에 쌓인 나무 사이를 비행하며 숲으로 날아갔습니다. 새싹이 핀 것도 신나는 일이었지만, 다른 요정들보다 행복해하는 겨울이의 등을 보고 있자니 친구들도 절로 힘이 났어요.


날개가 땀에 젖을 만큼 빠르게 날아온 겨울이와 친구들은 저 앞에 다른 요정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 땅에 내려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라도 큰 날갯짓에 새싹이 놀랠까 봐 조심하는 발걸음이었어요.


요정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한 겨울이는 친구들에게 작게 속삭였습니다.



"얘들아, 새싹은 어디 있어?"


"......"



요정들은 슬픈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해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본 겨울이는 불안한 마음에 목소리를 조금 더 높여 물었어요.



"새싹이 피지 않은 거야? 아니면 시들어버린 거야?"


"겨울아. 네가 오기 전에 새싹이 다시 시들어버렸어. 살아있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 또 시들었구나. 왜 이렇게 빨리 시들어버리는 거지? 언제 그렇게 된 거야?"


"얼마 안됐어. 조금 전부터 생기를 잃어가더니 이렇게 된 거야."



다시 시들어버린 새싹을 보며 겨울이의 마음에는 슬픔이 차올랐습니다. 새로 태어난 생명에 대한 슬픔은 곧 겨울이의 자책으로 이어졌어요.



"조금 더 조심히 올걸. 내 날개소리에 놀라서 이렇게 된 걸 지도 모르는 거잖아. 아마 남쪽의 새싹도 소리에 놀라서......"


"아니야. 그렇지 않아. 겨울아."


"남쪽의 새싹... 동쪽의 새싹... 어...... 설마......?"


"왜. 무슨 일인데 그렇게 놀란 표정을 하는 거야?"


"남쪽과 동쪽. 어...  얘들아 미안해. 나 아무래도 생명의 요정님을 만나러 가야겠어. 먼저 갈게."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던 겨울이는 친구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빠르게 몸을 돌려 날아갔습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요정 친구들은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어요.


겨울이는 생명의 요정을 찾아 숲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요정 클로드는 숲의 모든 생명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보듬는 일을 해야 했기에 항상 숲 전체를 돌아다니며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겨울이는 클로드 님을 찾으려면 나무들에게 물어가며 숲을 헤맬 수밖에 없었어요.



"클로드 님~~~!"


"어. 우리 겨울이 왔구나. 천천히 다니지 왜 이렇게 급히 왔어. 그렇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클로드 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너무 궁금해서 이렇게 급히 왔어요. 죄송해요."


"다친 데는 없니? 그래,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을까?"



클로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겨울이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습니다. 다치 곳이 없다는걸 확인한 다음에야 작게 한숨을 쉬며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었어요.



"클로드 님. 아무래도 이 숲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게 저 때문인 것 같아요."



클로드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겨울이도 이 숲을 지키는 요정 중 하나란다. 겨울이 때문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아."


"아니에요. 제 말 들어보세요. 제가 북쪽 동굴에서 며칠 동안 혼자 놀고 있었는데, 반대쪽인 남쪽에서 새싹이 피어났어요. 그리고 먼 서쪽 산에 갔던 어제는 숲의 동쪽에서 새싹이 피었고요. 그런데...... 그 새싹들은 제가 다가가면 시들어버려요."


"그랬구나. 하지만 우연일 수도 있지 않겠니? 새싹이라고 해서 모두 추위에 약한 건 아니란다."


"하지만... 그렇지만...  제가 태어난 이후로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적이 없잖아요. 이번에도 금세 시들어버렸고......"



클로드는 미소 짓는 표정 속에 아픈 마음이 느껴지지 않도록 숨기려 애쓰며 천천히 겨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하지만 손 끝에서 겨울이의 작은 떨림이 느껴지자 클로드는 자기도 모르게 슬픈 눈빛으로 겨울이를 바라보게 됬어요.



"겨울아. 네가 있어서 이 숲이 이렇게 하얗게 빛날 수 있는 거란다. 여기 있는 나무들도 풀들도 몸을 깨끗하게 빛내주는 눈을 좋아하고 있지 않니. 아직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이 숲에 적응한 씨앗들이 새 생명을, 새 새싹을 만들어낼 거야.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클로드의 얘기를 들으며 위로를 받던 겨울이는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끄덕이다가 이내 번쩍 들어 클로드의 눈을 마주쳤어요.



"클로드 님.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시험을 좀 해볼게요. 며칠 동안만 저를 말리지 말고 지켜봐 주세요. 죄송해요."



겨울이는 이번에도 할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보지도 않고 북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어요.


말릴 새도 없이 날아가버린 겨울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생명의 요정 클로드의 눈가 맺힌 이슬은 어느새 눈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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