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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Oct 24.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23

겨울 이야기 (3)

- 겨울 이야기 (1)

- 겨울 이야기 (2)

- 겨울 이야기 (3)






북쪽으로 날아가는 겨울이는 이전과는 다르게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날갯짓을 했어요. 그러면서 숲의 모습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 숲은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앞으로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걸까?"



무언가 담담하게 느껴지는 이 말, 그리고 겨울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던 다른 요정들의 걱정과는 달리 겨울이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미소의 의미는 바로 희망이었어요. 언젠가 이 숲이 더욱 아름답게 빛날 거라는 희망이었죠.


그렇게 눈에 닿는 숲의 모습들을 마음 깊이 갈무리하며 북쪽 동굴 앞에 도착했습니다. 동굴 앞에서 입구를 바라보는 겨울이는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내 생각이 맞을 거야. 꼭 맞아야 해. 그래야 해."



다시 한번 결심을 굳히며 뒤돌아 숲을 바라봤습니다. 곧 다시 보게 될 숲의 모습은 이 모습이 아닐 거라는 믿음이었어요. 겨울이는 그렇게 뒷걸음질을 치며 천천히 한 걸음씩 동굴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클로드 님. 혹시 겨울이 못 보셨나요? 이 아이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갑자기 어디론가 날아가버려서 너무 걱정돼요."



겨울이를 찾아 나선 요정들이 생명의 요정 클로드를 발견하자 급한 마음에 인사도 없이 겨울이 소식부터 물었습니다. 그런 요정들의 마음을 헤아린 클로드는 잠시 걱정스러운 마음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어요.



"아마도 겨울이는 눈과 얼음을 만드는 자신 때문에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 같더구나. 완전히 옳은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겨울이가 몰랐으면 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구나."


"클로드 님. 그래도... 겨울이도 우리 숲의 일부잖아요. 숲에서 태어난 겨울이 때문에 숲이 잘못되는 건 아니잖아요. 겨울이가 아파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 너희 말이 맞아. 하지만 나도 겨울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우리는 모두가 겨울이의 친구니까, 끝까지 겨울이를 믿어보자꾸나. 그 아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말이야."



숲의 요정들은 온통 겨울이에 대한 걱정으로 울상이었고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리는 요정들도 있었어요. 이 일로 인해서 겨울이가 너무 큰 상처를 받을까 봐 말이죠.


겨울이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나눠가질 수 있을지 여러 고민들을 하면서 요정들은 처음으로 말 없는 조용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동굴 깊이 들어간 겨울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동굴에서 얼음을 만드는 장난도, 동굴 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놀이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있었어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호기심과 장난기를 애써 억누르며 얌전히 있으려고 노력했답니다.



"분명 숲에 변화가 생길 거야. 며칠만 참아보자. 며칠만 참으면 알 수 있어."



처음 하루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어요. 태어난 순간부터 장난과 수다를 멈춘 적이 없었기에 얌전히 있는 것은 가시방석에 누워있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다음 하루는 얌전히 있는 것에 약간은 적응이 되어서 힘이 들뿐 괴롭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요정 친구들이 너무도 보고 싶은 마음에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날개가 흔들리지 않도록 벽에 등을 대고 지내야 했답니다.


셋째 날, 어두운 동굴 안에서 조용히 숨을 쉬던 겨울이는 이제 어둠과 조용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게 되었어요. 그 덕분에 자신이 숨을 쉴 때 나오는 입김이 얼음을 만들고 눈을 내리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다음 날 숲으로 나가보려 했던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답니다.


넷째 날, 겨울이는 혹시 자신의 입김이 생각보다 멀리 퍼져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겨울이는 숨을 참아보기로 했습니다.


최대한 오래 참아보기로......


다섯째 날.

여전히 숨을 참은 채로 걸음을 조심스레 옮겨 동굴 밖을 향하기 시작했어요. 동굴 안으로 들어올 때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한 걸음씩 입구를 향해 걸어갔어요.


사박. 사박.


조심스레 밟히는 눈 소리를 들으며 걸어간 겨울이는 드디어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겨울이 앞에 펼쳐진 숲은 겨울이가 동굴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닷새 전과 다를 게 없었어요. 여전히 새하얀 눈에 덮여 눈부시게 햇빛을 반사하는 눈의 숲 그대로였죠.


하지만 겨울이는 실망하지 않았답니다.



'이곳은 내가 있던 곳이었으니까.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숲의 남쪽에는 분명 변화가 있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날개를 펼치고 천천히 남쪽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클로드 님. 새싹이에요. 새로운 새싹들이 피어났어요......"



숲에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고 있었지만 요정들은 평소답지 않게 복잡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어요. 겨울이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겨울이가 없는 동안 새싹이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것이 요정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이 숲에 이렇게 많은 새싹이 피어나는걸 오랜만에 보는구나. 얘들아.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고 우리는 이 태어남에 감사하자꾸나."



최대한 담담한 말투와 밝은 웃음을 보이며 요정들에게 말을 건넨 클로드 역시 마음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답니다. 새로운 탄생은 축복할 일이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될 겨울이는 크나큰 상처를 받을까 봐였어요.


그렇게 복잡한 생각으로 새싹들을 바라보던 요정들 뒤로 낯익은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답니다.



"어? 겨울아? 클로드 님. 얘들아! 저기 겨울이가 오고 있어!"


"겨울아. 어디 있다가 이제 오는 거야. 걱정했잖아!"



많은 요정들이 겨울이를 향해 걱정스러우면서도 반가움을 숨기지 못한 말투로 소리쳐댔지만 겨울이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그들 앞에 내려앉았어요. 꼬박 하루 넘게 숨을 참고 있던 겨울이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 얼굴이 창백해졌고 눈은 빨개져있었습니다.



"겨울아, 너 왜 그래? 어디 아프니?"


"클로드 님. 겨울이가 아픈가 봐요!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이는데 어떻게 좀......"



여러 요정들이 겨울이 앞을 막고 얼굴을 살피며 소리쳤지만, 그 행동을 짐작한 클로드는 마음이 너무 아파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이는 요정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아갔어요.


마침내 여러 새싹들이 태어난 것을 본 겨울이는 이내 얼굴에 큰 미소를 띠며 그동안 참았던 숨을 내뱉었습니다.



"하아- 하아- 하아-."



다시 호흡이 돌아온 겨울이는 빠르게 시들어가는 새싹들을 잠시 바라보다 생명의 요정 클로드를 향해 말했어요.



"클로드 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제 알겠어요."


"겨울아......"


"아니에요. 클로드 님. 그리고 내 요정 친구들아. 난 지금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행복감이야."


"겨울아......"


"제가 숲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너무 행복해요. 그리고 저는 그 일을 해야 해요. 저는 이 숲의 요정이니까요."



한 요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겨울이에게 물었습니다.



"겨울아. 그게 무슨 말이야? 숲을 위해 할 일이라니...?"


"이 숲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건 나 때문이 맞았어. 그래서 난 이 숲을 떠나려고 해. 그러면 다시 생명이 가득한 요정의 숲으로 돌아올 거야!"


"겨울아. 그게 무슨 말이야. 떠나다니? 너도 이 숲의 일부인데 네가 왜 떠나야 해?"


"내가 숨을 쉬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떠나야 해. 하지만 클로드 님. 그리고 친구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난 다시 돌아올 테니까. 나도 이 숲의 일부니까요!"



겨울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아팠던 요정들과는 달리 겨울이는 담담한 미소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생각을 이야기했어요. 그런 겨울이의 모습에 요청 친구들은 어떻게 말려야 할지 모른 채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어디로 간다는 거야. 그리고 언제 온다는 거야...?"


"나는 북쪽으로 갈 거야. 그리고 한 해가 끝나갈 때쯤에... 그때 다시 돌아올게. 나는 생명이 넘치는 숲을 볼 수는 없겠지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너희들이 잘 보살펴 줄거라 믿어. 클로드 님. 숲을 부탁해요."



겨울이의 결심을 들은 클로드는 더 이상 눈물을 참지 않았답니다.






겨울이가 떠나고 머지않아 숲에는 따뜻한 공기가 찾아왔어요. 부드럽게 내려앉은 햇살은 쌓인 눈을 녹여 땅을 적시고 얼음을 녹여 호수를 만들었습니다.


점차 새싹들이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곧 숲은 꼬마 새싹들로 가득 차게 되었어요.


그리고 요정들은 다시 저마다의 할 일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하기만 했던 햇살은 어느덧 뜨겁게 달아올랐어요. 하지만 요정의 숲은 더욱 푸르게 바뀌어갔지요. 나무는 청아한 나뭇잎을 피웠고, 땅에는 다양한 색을 입은 꽃들이 자라났습니다.


요정들은 누군가의 빈자리에 허전함을 느끼면서도 오랜만에 정신없이 일을 해야 했지만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희망으로 가득 찬 미소를 띠게 되었어요.






무더운 태양이 멀어지고 선선한 공기가 살랑이던 어느 날. 땅의 요정은 나무와 꽃들을 사이를 거닐며 흙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어요.



"흙이 건강해서 꽃과 나무도 즐거워하는 것 같아. 정말 오랜만이네. 잘 커줘서 너무 고마워."



생명 하나하나에 감사하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던 요정은 발 밑에서 들려온 낯선 소리에 잠시 몸을 굳혔어요. 그리고는 천천히 발 밑을 내려다보며 발 끝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어요.


바스락.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멍하니 바라보던 요정은 곧 정신을 차리고 숲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숲에 갈색의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요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속으로 조용히 말을 꺼냈습니다.



'겨울아. 어서 오렴.'




- '겨울 이야기'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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