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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Oct 30.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24

낙엽



나는 작고 푸르른 녹색으로 태어났다.

따뜻한 바람과 밝은 햇살을 맞으며 이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저 아래 보이는 흙은 나에게 끊임없이 양분을 보내오고 있다. 하늘 위에 떠있는 해는 내가 더욱 푸르를 수 있게 힘을 주었다. 나를 스쳐가는 바람은 기쁨을 표현할 수 있도록 나를 흔들어주었다.


푸르른 녹색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나는 하늘을 향해 몸을 곧게 세우고 사랑받는 존재임에 뿌듯해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자라났다.


태양이 점점 뜨거워졌지만 아마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인 듯했다. 때로는 걸어 다니는 친구들에게 몸을 흔들어 인사를 했고, 잠시 앉아 쉬는 친구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던 날에는 너무 무서웠지만 가지를 꼭 붙잡고 버티고 이겨냈다.


다시 맑은 날이 찾아왔을 때는 뜨거웠던 태양은 멀리 물러나고 있었고, 높고 파란 하늘이 이제는 괜찮다며 속삭이듯 구름으로 인사했다. 바람은 미안하다는 듯이 내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스쳐갔다.


항상 푸르른 녹색일 줄 알았던 내 모습은 어느새 노란 빛깔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내가 변해간다는 게 아직은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항상 내 옆을 지키고 있던 친구들도 노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으니까.


바람이 불면 친구들과 파르르르 소리를 내며 지난 일들에 대해 떠들어댔다.


차가운 바람이 불던 어느 날.

이제는 노란색을 지나 붉은 갈색을 띠며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처럼 하늘을 올려보기는 힘들었지만 걸어 다니는 친구들을 더 잘 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허리를 숙인 만큼 친구들도 팔을 길게 뻗으며 나와 가까워지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새하얗고 차가운 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낙엽이 되어 땅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항상 좋은 양분이 되어주던 흙이 나에게 조용히 속삭여왔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훌륭했다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테니, 이제는 잠시 쉬라고.


다른 친구들도 땅 위로 내려앉았다.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행복했어.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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