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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Nov 18. 2022

달리기



목표가 정해져 있다.

달려야 할 거리가 정해져 있으니 끝이 분명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얼마나 힘들지 예상할 수 있다.


목표가 확실하다.

목적지와 방향이 분명하고 돌발변수도 거의 없다.

이만큼 쉬운 운동이 또 있을까?






30분을 목표로 설정하고 앱의 운동 시작 버튼을 누른다. 천천히 달리면서 보폭을 조정하고 호흡을 정비한다. 몸이 가볍게 느껴지니 생각보다 편안하게 운동을 마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달리기가 심심해 속도를 조금 더 높인다. 생각보다 가볍고 빠르게 나아감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오늘은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든다.


갑자기 숨이 가빠진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항상 이 시간쯤 있는 현상이다.

잠시 속도를 줄이고 호흡을 고르니 몸이 편해진다.

한 러너가 내 옆을 추월해 나간다.


나보다 반의 반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페이스에 말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호승심이 생겨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이겼다.


나를 추월한 사람을 다시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그 사람도 나를 의식해서 뛰었는지 거의 걷다시피 하는 지친 모습이다.

그를 추월하느라 숨이 벅차고 다리에 힘이 풀려간다.


속도를 줄이고 쉬고 싶지만, 그러면 그 러너가 다시 뛰어올 것 같다. 내 승리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무리해서 뛴다.


반환점을 찍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 보상으로 속도를 조금 줄여볼까 싶었지만 내가 추월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 애써 멀쩡한 척 무리해보고 싶지만 호흡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멈춰 서지 않으려고 속도를 줄였다.

숨이 벅차오르고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페이스를 잃은 대가였다.


모두가 나를 추월해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를 지나쳐간다.

비둘기도 오리도 내 옆으로 날아간다.


이제는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저 앞에 목적지가 있지만 도무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지나가는 강아지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목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땅을 박차며 속도를 높였다.

강아지를 추월했다.


다리가 멈췄다.

저 앞에 피니시 라인이 보이지만 다리는 더 이상의 혹사를 거부하고 있다.

완전히 멈춰서 숨을 몰아쉬었다.






페이스만 유지했으면 문제없이 완주했을 텐데, 쓸데없는 유혹들이 나를 잃게 만든다.


그 유혹들은 별것 아닌 것처럼 너무 작기 때문에 오히려 저항하기가 더 힘들다. 그렇게 한번 빠지면 확실한 길도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내 모습이 그렇다.

지금 나는 어떤 유혹에 빠져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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