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Faces, Places)'이 넷플릭스에 들어왔길래 벼르고 있던 영화라 냉큼 봤다. 기대했지만 실망하지 않은 영화였다. 나이가 들어 모든 게 흐릿하게 보인다는 바르다와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는 JR은 '일상성의 예술'이라는 길목에서 만난다. 그들은 우연을 동력삼아 트럭 한대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정성스런 시선으로 아무도 발견하지 않았던 마을들을 바라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쳤던 얼굴은 바르다의 렌즈를 통해 영화로, JR의 사진을 통해 그래피티로 재탄생한다. 한번 혹은 그 이상 더 들여다 본 자의 시선, 소중한 시선들.
나이가 들어 시야가 흐릿해진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명확한 상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명확한 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물체들간의 흐릿한 경계다. 바르다의 흐린 시선은 사건을 구별짓지 않는 시선을 대변한다. 즉, 모든 사건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연결짓는 시선이다. 경계가 없기에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불안정하지만 유연하다. 오리인지 토끼인지 모를 그림처럼. 유연함은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우연과 불확실성은 최고의 궁합이다. 우연이 가져다주는 거의 모든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가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계획 없는 여행에서 가장 큰 우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바르다와 JR(장 르네)이 정처 없이 트럭을 운전하다 만난 염소를 키우는 아주머니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이다. 바르다는 염소와 고양이를 좋아한다. 바르다는 노르망디에서 봤던 염소를 떠올린다. 그 염소가 절벽에서 떨어졌었다고. JR은 절벽에서 떨어져있던 바위를 떠올린다. 둘은 그 바위를 찾아간다. 마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라는 어릴적 불렀던 노래처럼, 우연히 마주쳤던 이미지들은 아주 작은 연결고리를 통해 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연결된다.
이미지 간의 바느질은 여러번 들여다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고양이와 바위를 연결하기 위해선 그들이 공유하는 작은 공통점을 찾아야하고, 작은 특징을 찾기 위해선 꼼꼼히 보아야한다. 여러번 본다는 것은 '애정'이다.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주의깊게 여러번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겪고 본 게 많은 만큼 모든 게 심심하고 지루할 법도 싶은데, 바르다는 작은 것들 조차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녀가 영화를 통해 내보이는 호기심 가득한 1인칭 바르다 시점은 세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다.
여러번 들여다본 것은 기억에 흔적을 남긴다. 기억은 현재와 상호작용한다. 현재는 과거를 불러온다. 33살의 JR의 선글라스는 33살의 고다르의 선글라스를 상기시킨다. 그녀가 방문한 장소는 가이브루딘에 대한 기억에 불을 붙인다. 과거는 현재의 모습이 되어 재출현한다. 가이의 사진은 JR을 통해 현재의 그래피티가 된다. JR은 가이의 사진을 보고 같은 자세를 취한다 - 과거의 가이는 JR로서 현재로 불려온다. 흐릿한 그녀의 시선 안에서 시간 역시 구분이 흐릿해진다. 현재는 기억을 호출하고, 불려온 과거는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
그녀가 살피는 것들은 보통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다. 이름 없는 도시, 버려진 곳, 죽어가는 마을,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 바르다 시선은 이곳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름 없는 도시는 영화에 출연한다. 버려진 마을은 사람과 활기를 되찾는다. 역사의 뒷편으로 잊혀진 광부들은 벽화로 재탄생한다. 인터뷰는 바르다의 카메라를 통해 영화가 되며, 평범한 얼굴들은 JR의 그래피티를 통해 벽화가 되고 도시의 명소가 된다. 바르다와 JR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이분법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과거는 현재가, 현재는 과거가 된다. 평범은 비범해진다. 일상은 예술이 된다. 현실은 영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