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2017)
소공녀는 힘들게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주인공 '미소'가, 위스키와 담배라는 자신의 '취향'을 포기할 수 없어, 주거를 포기하고 대학시절 친구들의 집에 신세를 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주인공 미소를 통해 보여주는 대도시의 청년 주거와 청년 가난 문제 이외에도, 각 친구들의 생활을 통해 '결혼', '이혼', '노총각' 등 한국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문제들을 은근하게 잘 반영하고 있다.
누군가는 집도 없으면서 위스키와 담배 같은 '사치품'으로 대변되는 생활을 포기하지 못하는 미소가 철없어 보일 것이다. '당장 생활할 돈이 없으면 그런 데 쓰이는 돈을 아껴야지, 정신 못 차렸네. 겉멋만 들었네'라며. 나도 돈 없는데 테이크 아웃 커피를 척척 사 마시는 사람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으니까. 그러나 미소의 위스키와 담배는, 명품 가방과는 소비의 측면이 다르다. 명품 가방은 과시하기 위해서 소비된다. 그러나 그녀의 그 '작은' 것들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고, 나아가 일상을 지탱해주는 것들이다. 커피도 누군가에겐 그런 것이겠지.
취향은 선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돈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빈자들은 당장 먹고 살 돈, 당장 잠잘 집이 급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따져볼' 여유가 없다. 먹을 수 있으면 먹는 거고, 공간이 주워지면 누워서 자는 것이다. 그러나 금전적 여유가 생길수록 선택의 자유는 늘어난다. 가격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을 먹을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잠들 수 있다. 더 나아가 축적한 부를 통해 의식주 이상의 것들까지 누릴 수 있다. 더 다양한 것을 누릴 수 있고, 그렇게 다양한 것을 누려보면서 호불호가 생긴다. 경험을 통해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취향을 확립할 수도, 가질 수도 없다. 그것이 음악이 됐든 술이 됐든 담배가 됐든.
이런 구조에 미소는 반항한다. 비상식적인 주거비 때문에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 비상식적인 주거비를 가진 주거공간을 포기한다. 비록 사회적 구조의 한계 내에서 내려진 선택이지만, 미소는 한정된 예산으로 자신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선택지를 알고 있고 그것을 행했다. 위스키와 담배는 미소 자신이 정의 내린 상대적으로 더 행복한 선택지다. 미소가 자기 선택지에 만족한다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미소에게 '넌 행복하지 않아.'라며 자신의 기준에 미소를 맞춰 비난할 권한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미소의 행복 기준은 미소가 전한다. 자기가 선택해서 만족한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러나 이런 취향의 실행이 생존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주거'의 희생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은 여전히 짚어봐야 한다. 미소의 선택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재 한계 내에서 미소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지였으니까. 최선의 선택지가 '주거의 희생'일 수밖에 없었던 데는, 많은 사람을 '집 값 내고 나면 월급이 얼마 남지 않는 하우스푸어'로 만드는 비정상적으로 비싼 주거비에 있다. 주거는 인간의 기본 요소다. 그런 만큼 주거 값은 정상화되어야 한다. (집값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나아가, 취향이 '있는 자들만의 것'이 아닌 사회가 필요하다. 무료로 열리는 미술관, 무료 음악회, 적당한 가격의 음악처럼.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것은 의식주 밖의 것들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고 이야기한 신경림의 시구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갈 필욘 없다. 그렇기에 사회는 가난한 자들도 개인의 취향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