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의 마음이 뜨거웠다. 얼른 편지를 쓰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서른세 살의 청년 로버트는, 엘리자베스의 시집을 읽자마자 팬레터 아니 러브레터를 쓰기 시작했다. 당신의 시집을 읽자마자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의 글과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편지를 받아 든 엘리자베스는 의아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열다섯 살에 낙마사고로 척추가 손상되서 몸이 불편하고, 가슴 동맥이 터진 이후로는 매일매일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사랑해? 시집을 발표했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작가인줄 아는 모양인데 난 그저 서른아홉 살이 돼서 겨우 겨우 첫 번째 시집을 냈을 뿐 여러가지로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데 이래도 내가 좋아? 엘리자베스는 로버트의 마음을 의심했지만 그 사랑은 진짜였다.
그녀보다 여섯 살 어린 로버트 역시 무명의 시인이었는데,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은 부드러운 문장이지만 마음의 중심을 전달하기에는 더없이 명확하고 예리했다. 결국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엘리자베스는 사랑에 사랑을 더하며 15년을 살다가 로버트의 품 안에서 눈을 감는다.
로버트가 앨리자베스를 위해 썼던 글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집을 사주겠다거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주겠다는 말랑말랑한 약속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자'는 현실적인 고백 부분이다.
나와 함께 늙어갑시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요.
엘리자베스와 로버트의 시를 좋아하던 존 레넌이 노래로 만들기도 했던 그 문장. Grow old with me.
사랑한다는 것은 젊었을 때 잠깐 하다가 그만두는 일이 아니다. 결혼식 주례사에 흔히 나오듯이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싸우고 실망하고 초라해지는 단계를 넘으며 성장해야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 사람의 모든 콤플렉스까지 인정하고 그 부분을 문제 삼지 않으며 나의 부끄러운 비밀을 낱낱이 드러내고도 관계를 유지하고 인생 최고의 날이 올 때까지 함께 늙어 가는 것- 그 어려운 사랑을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배렛이 해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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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옛사랑이 되어버린 사람 중에 늙어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함께 늙어갈 수 없다면 각자의 삶을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같이 보낼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기까지는 매우 낭만적인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곰곰히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노인이 되서 만나도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 귀가 어두워서 서로 딴 소리를 하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돋보기가 어디 갔는지 찾아 헤매고, 푸석한 얼굴과 꾸부정한 허리와 느린 발걸음으로 다시 만나도 여전히 사랑스러울까. 행여 건강이 안 좋아서 드러눕기라도 하면 이를 어쩐다. 병시중을 들며 대소변을 받아낼 자신이 있냐고 나자신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 로버트도 엘리자베스에게 "함께 늙어가자"라고 했지, "늙어서 함께 하자"고 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늙어가고 있는 당신이 챔피언이다.
* 남의 사랑, 한 줄 요약
: 여섯 살 연상 연하 커플, 엘리자베스와 로버트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혼했지만, 결혼 15년 만에 엘리자베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