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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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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이모 Oct 16. 2017

여보세요, 나야

지금도 기다리는 것

수년 전 그 남자의 휴대폰 컬러링은 '소주 한잔'이었다.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여보세요. 왜 말 안 하니. 울고있니...

 
헤어지고 1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업무차 그에게 전화하게 됐을 때 그 컬러링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가 헤어진 이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그때처럼 울고 있는건 아니냐고 내게 묻는 듯 다정했다. 그 사람은 언제부터 이 노래를 컬러링으로 해놓았을까.내가 전화해서 이 노래를 들어주길 얼마나 바라고 있었을까. 별별 로맨틱한 생각으로 가슴이 떨렸지 그건 나의 상상이었을 뿐, 그 사람은 나 없이도 너무 멀쩡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는 게 현실-!


전화는 무엇일까? 전화는 그냥 전화일까?  감정과 추억과 시간이 담겨 있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거나 오랜 인연을 끊어주기도 하는 그것- 전화, 그 이상의 무엇.    


1896년, 덕수궁에 새로운 물건이 설치됐다.  벽에 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상한 물건이 궁궐 곳곳에 놓이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기계]라고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게 전화라고 하는 것인냐. 기특한 물건이로군!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들은 고종은 그 기계를 궁궐뿐 아니라, 홍릉에도 설치하라고 명했다. 그의 아내, 명성황후가  묻혀있는 홍릉에 전화가 설치되자 이튿날부터  고종은 아침마다 전화를 걸었고 홍릉에 있던 신하들이 수화기를 들어 무덤 가까이에 갖다 대면 통화가 시작된다.


- 밤새 춥지는 않으셨소.

-......

- 별일은 없으신 게요.

-......

- 왜 아무 말씀도 없으시오. 허허. 멀리 있는 사람 목소리를 들려준다더니, 하늘까지는 닿지 않는가 보오.


한 나라의 왕이자 마흔 살이 넘은 중년의 남자가 매일 아침마다 무덤에 대고 통화를 하다니, 이 얼마나 우습고 바보 같은 짓인가. 이미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명성황후가 대답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행여나 만약에 상대방이 아주 조금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고 싶고,  날이 쌀쌀해졌으니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고 말해주고 싶은 고종의 간절함이 전해진다.  


나만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독특한 억양. 컨디션을 알아챌 수 있는 말투. 문장과 문장 사이의 빈틈을 채우는 숨소리와 나지막한 웃음소리. 진심을 숨긴 농담과 어색한 고백들.  그 모든 것이 전화기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연인과 헤어진 뒤에도 혹시 걸려올지 모르는 그 사람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이별후유증을 앓아야 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그 전화번호를 없애지 못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세상 떠난 아내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그쪽이 전화를 받지 않는 걸 보니 아내가 이젠 정말 이 세상사람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는 남자의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수시로 통화하던 사람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몸통만큼이나 크고 무거운 허전함이 된다.


전화를 한다는 건 마음을 전하는 것-


이렇게 서늘한 밤- 나는 지금도 기다린다. 전화기 너머 그 누군가의목소리를. 시답잖은 안부인사를.  



* 남의 사랑, 한 줄 요약

: 우리나라에 전화기가 처음 설치되었을 때, 고종은  명성황후의 무덤으로 매일 전화를 했다.


이미지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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