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돋보기 어디 갔지?"
"뭐 찾아요?"
"아, 여깄구나"
"뭐 찾느냐니까요"
"뭐라고?"
"뭘 찾느냐고요"
"찾았어, 돋보기"
"아유. 거기 식탁 옆에 봐봐요. 거기 있는 거 같던데"
"응. 찾았다고"
"아. 찾았어요?"
"응"
자주 들려오는 엄마와 아버지의 대화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하고, 주고받는 질문은 서로에게 한 템포씩 늦게 도착한다. 두 분은 언제 저렇게 "노인"이 되신 걸까...
아버지의 여든에 은퇴하셨다. 은퇴식이 있던 그날까지 매일 아침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반듯하게 머리를 빗어넘기고, 직접 운전을 해서 삼성동 회사로 출근하셨고, 매주 한 번씩은 기독교 실업인들의 조찬기도회에 나가셨으며 한 달에 한 번씩은 이천에 있는 공장에 다녀오셨다. 그렇게 건강하고 말쑥하던 아버지가 은퇴를 하자마자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할아버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회사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던 청력이 점점 기능을 상실하면서 보청기를 착용하셨고, 마루에는 볼륨을 잔뜩 키워놓은 TV가 밤낮없이 쩌렁쩌렁 울려댔고, 아버지는 그 앞에 앉아 휴대폰으로 바둑게임에 몰두하셨다. 딱. 딱. 딱. 딱. 바둑알을 놓는 게임 효과음이 내 방까지 들린다. 엄마가 집에 안 계신 동안 한두 시간 정도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바둑을 두는 아버지.. 딱. 딱. 딱. 딱.
나는 비혼이며 프리랜서라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보니,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할 말은 점점 더 줄어들고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혼자 지내던 공간에 아버지까 불쑥 들어온 느낌이랄까. 게다가 여름이 끝날 무렵, 23년간 운영하던 사업장을 정리하고 엄마도 이제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로 바뀌자 나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 그동안 소홀했던 집안 살림을 다시 정리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엄마는 그동안 나에게 익숙했던 물건들을 재배치하기 시작하셨는데, 화장지가 있던 자리에는 텀블러가 들어있었고, 거금 5만 원을 주고 구입한 강아지 눈물자국 제거를 위한 치료제는 이미 쓰레기통으로 향했으며, 속옷이 들어있던 서랍엔 양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더니, 저렴한 수납용품들로 집안 구석구석을 채우기 시작할 무렵 나의 짜증은 폭발했다. "제발! 조잡하게 만들지 좀 마! 그리고 엄마 물건이 아닌 건 손대지 말라고. 제발 좀!" 엄마는 당황해서 한 며칠 잠잠한 듯했으나, 집안 살림의 재배치는 요즘도 슬금슬금 진행 중이다.
어떻게 하면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지, 한참 동안 짜증과 심통이 뒤 범범이 된 채로 고민해보니, 지금 이 상황이 나 혼자만 불편한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는 쭉 계속 함께 살고 있었지만, 이전까지는 각자의 사무실, 각자의 직장동료. 각자의 시공간이 확보되어있던 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한집에서 24시간을 지내게 됐으니 이게 어떻게 나만 불편할 수 있겠는가. 모두 마찬가지지만 그분들은 어른이고 부모라는 이유로 티를 내지 않으시는 거겠지. 그래서 이튿날부터는 일찌감치 노트북을 챙겨서 카페에 나가 일을 하거나, 평소에는 무심했던 회의나 출장에도 적극 참여하고, 매일 저녁시간에는 요가 수업을 들음으로 가능하면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한다. 내가 우리 세명중 가장 젊으니, 내가 밖으로 나가야지!
늘 같은 집에 살았면서도, 같은 집에 산다는 게 새삼스러운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운전을 못한다. 엄마는 애초에 면허증이 없으니 운전을 못하고, 나는 면허증이 있으나 겁이 많아서 운전을 못하고, 아버지는 우리 삼남매의 반대로 운전을 못하게 되셨다.
아버지는 베스트 드라이버이며, 은퇴 이후에도 운전을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갈 때, 스포츠센터에 운동하러 갈 때, 엄마랑 코스트코에 장 보러 갈 때, 그리고 명절이나 집안의 경조사를 다니실 때 아빠는가 운전하셨었는데, 그래 봤자 일주일의 반 이상은 주차장에 세워둔 채였으니, 차를 타는 날보다 안타는 날들이 점점 더 늘어갔다. 이따금 아빠 차를 타보면 순간적인 판단력이 떨어져서 운전이 매우 거칠어졌다는 게 느껴졌고,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가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운전대에서 손을 떼야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 살살 다니면 괜찮아. 멀리 다니는 것도 아닌데, 뭐.
- 이제부터는 택시 타고 다니시라고요.
- 괜찮다니까.
-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빠 나이에 운전하는 건, 음주운전이랑 똑같아. 운전하는 사람만 괜찮다고 말하지,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은 다들 불안하다고.
- 가끔 교회 갈 때만 타는 건데, 뭐
- 도대체 언제까지 운전하실 건데? 크게 한번 사고가 나면 그때 그만두실라고?
모질게 아빠를 몰아붙였다. 나는 정말 못됐다. 아빠가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게 되면 제일 불편할 사람이 엄마랑 나라는 걸 알면서도 내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오빠가 의견에 힘을 실어준 덕분에, 올해가 시작되면서 아빠는 운전을 그만 하기로 결단하셨다. 차를 이용할 일이 더 많은 회사 직원들을 위해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에 차를 돌려보내기로 결정하기까지 많이 아쉽고 섭섭하셨으리라 짐작한다. 내 짐작의 폭이 좁아 미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공허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아빠는 차를 보내기 싫다고 더 타고 싶다고 어린애처럼 떼를 쓰며 울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차와 함께 보내는 마지막 일주일 동안,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하셨고, 분당과 명일동에 사는 고모집에 하루씩 나들이를 다녀오셨다. 작년 여름에 새 식구가 된 강아지가 아빠 차를 한 번도 못 탔다는 게 생각나서 금요일 아침에는 온 식구가 아빠 차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코스트코에 가서 한아름 장을 봐오고 트렁크에 있는 짐들을 말끔하게 정리하셨다.
- 아빠, 그 차 안 탈 거면 내가 탈게. 나한테 물려줘
그렇게 덥석 아빠 차를 물려받는 살가운 딸이 되고 싶었다. 엄마 아빠를 태우고 여주도 가고 봉평도 가고 일산도 갈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운전연수 3개월 만에 운전을 포기해버린 겁쟁이 딸이라 그, 저 죄송한 마음만 갖고 있을 뿐. 아빠 차가 우리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이튿날 2017년 3월 6일 월요일 아침 9시 반. 아빠는 회사 직원에게 차 키를 넘기셨다.
그렇게 아빠 차는 사라졌고, 아마 아빠는 본인의지와 상관없이 타의에 의해, 사회적 편견과 제도에 의해, 시간의 흐름에 의해 많은 것들과 헤어지는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이다. 딱. 딱. 딱. 딱. 바둑 소리에 파묻힌 채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것은 아닐까.
자기 자식 크는 거 보느라 부모님 늙는 줄은 몰랐다. 애인을 대할 때의 다 점함의 반만큼이라도 부모님한테 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머 음만 그렇지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저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노인으로 변해가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것이 40대가 해야 할, 일이다.
아, 그렇다고 너무 쓸쓸해하지 말자! 우리는 누구나 늙는 법이고, 어떻게 늙으면 되는 건지 부모님이 몸소 시범을 보여주시는 중이니 우리는 잘 따라가면 되니까. 우리는 부모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 매년 떡국과 함께 나이를 먹게 될 텐데, 내가 몸담고 있는 "마흔"의 세계에 들어오는 2018 신입회원들의 얼굴이 아주 흐뭇하다. 공유. 성시경. 이나영. 이효리라니.... 이렇게 굵직굵직한 인재가 모두 마흔이 되어 내가 느꼈던 그 이상미 묘한 감정과 신체적 변화까지 겪게 되겠구나! (2019년 신입회원은 김태희도 있다는!!)
부모님만 늙는 것 아니고, 나만 늙는 것 도 아니고, 모두 함께 늙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쌤통, 마흔 살! 웰컴 마흔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