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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이모 Nov 12. 2017

나는 어떤 도형을 닮았을까.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동그라미. 각자 자신이 어떤 '도형'과 닮았는지 머릿속에 그려보자. 도형이 떠올랐다면 그것을 입체화해보자. 우리는 사람인지라 점과 점을 이어놓은 평면도형이 아니라 두께와 깊이를 지닌 입체도형으로 살아나야 한다. 직사각형을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는, 직사각형을 회전해서 원통형을 만들 수도 있고, 직육면체가 될 수도 있으며, 스스로를 동그라미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구슬처럼 둥근 모양이나 원통형이 될 수도 있다. 즉 비슷한 평면도형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입체화되면서 그 모양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것이 사람이다.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고, 닮았지만 닮지 않은 우리들은 이따금  "그 사람에게 그런 면이 있었어?"라고 얘기하는데, 가장 단순한 정육면체도 최소 여섯 면을 갖고 있으니 그 사람에게  "그런 면"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개의 면중에 가족을 향해서 보여주는 면과 외부인에게 보여주는 면이 다르고,  보는 사람이 어느 방향에 서있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생기다 보니, 똑같은 사람이지만 다르게 보인다.

사진 / Pinterest

마음이 잘 맞아서 여러 해 동안 한 팀에서 일한 동료가 있다. 그는 나의 재능을 믿어주었고, 나는 그의 감각을 빨리 알아들었다. 그가 생각하면 내가 구현했고, 내가 글을 쓰면 그가 생동감을 덧입히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러다가 몇 년을 다른 팀으로 헤어져 지냈고 7,8년 만에 다시 한 팀이 됐는데, 다시 만난 1년이 나에겐 죽을 맛이었다. 그의 구체적인 아이디어 제안은 과도한 업무지시로 느껴졌고, 그가 입을 다물고 한발 물러설 때면 나를 테스트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 예전에는 감각적이고 세심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몇 년 사이에 전혀 다르게 다가오자 그와의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다 보니 나는 급속도로 무기력하고 무능해졌다.  급기야 어느 날 아침에는 샤워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불안증세가 시작되는 바람에 벌거벗은 채 마루로 뛰쳐나오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선배 엄청 힘든가 보다"

"미치겠어"

"옛날에는 그 차장님이랑 어떻게 그렇게 잘 지냈어요?"

"옛날엔 저렇지 않았거든"

"무슨 소리예요. 옛날에도 저랬어요. 그래서 선배가 잘 지내는 게 신기했는걸요"


정말 예전에도 그랬나? 근데 나는 왜 몰랐지? 왜 이제 알았지? 나는 그 사람의 어떤 면을 보았던 걸까? 잘 맞는줄 알았던 사람이 이제는 꼴도 보기 싫었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스트레스성 불안증세때문에라도 좀 쉬어야 했다. 절교에 가까운 형태로 등돌렸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나이를 먹었고 지금은  다시 친구 같은 동료로 만나 술을 마시며 속얘기를 나누는 관계로 회복됐다.  어느새 부장이 된 그에게 불만이 많은 한 사람이 얼마 전 내게 물었다.


"선배는 왜 그 부장이랑 다시 친하게 지내요? 엄청 싫어했었잖아요?"


그래, 맞다. 나는 그를 좋아했다가 싫어했다가 다시 친구가 됐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와 나 사이에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한때는 그 사람의 좋은 면만 보다가, 또 나쁜 면만 보다가, 이제는 그 사람의 전체적인 부분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그 사람이 나쁘기만 한 사람은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좋기만 한 사람도 아니며,  서로의 장단점을 이미 겪었기 때문에 이 보다 더 좋은 친구를 구할 수 없다고 하면 너무 긴 설명일까. 후배들은 그냥 부장으로만 보겠지만 나는 그를 사람으로 대한다고 하면 너무 잘난척일까. 그냥 나이가 들다 보니 외로워서 이렇게 됐다고 말하면 너무 초라하려나. 그대들도 40대 중반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히 이런 인간관계가 한둘쯤 있을 거라고 말해주면 너무 꼰대 같을까.

사진 / Pinterest

각자 자신과 닮은 도형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그리고 이번에는 그 도형의 촉감이나 재질을 생각해보자. 보송보송 순면으로 만들어진 삼각뿔. 뾰족한 가시로 만들어진 둥근 공, 속이 보이는 유리로 만든 십이면체.... 무엇이든 가능하겠지만 나를 이루고 있는 재질은 '가죽'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좀 뻣뻣하다. 그러다가 세월에 길들여지면 부드러워지기도 하지만 점점 더 교묘하게 질겨지는 면이 있는 가죽.  상대방이 나와 다른 면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 좋아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알게 된다"는 것뿐! -,  사사로운 다툼을 피해갈 수 있을 정도로 둥글어지고, 타인의 시선에 무뎌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버릴 수 없는 고집은 질겨지는 것. 그게 바로 40대의 우리가 아닐까.

더 욕심을 부려 바라자면 뾰쪽하건 둥글건 그 모양은 각자의 개성으로 간직한 채, 마음의 중심에 온기가 생겼으면 한다. 따뜻한 네모. 따뜻한 뾰족함. 따뜻한 딱딱함.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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