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는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고...
매주 주말 심야시간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음악쇼 프로그램으로 방송작가 첫걸음을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피디와 진행자 그리고 작가 선배들까지 다들 그 계통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었기에 그 팀에서 일하는 시간들은 매일매일 보석처럼 소중했다. 특히 담당 피디는 부드러운 말투와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라 다른 팀 작가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었고, 막내작가인 나에게도 한없이 자애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도 365일 24시간 모든 상황에서 허허실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진실씨가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확정된 이후 우리 팀에서 기획한 아이템은 전국에 있는 수많은 최진실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한국의 톱스타 최진실과 동명이인으로 살아가는 사람 중에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을 찾아내서 전화연결을 해야 했는데 그 번거로운 작업은 막내작가와 조연출의 몫이었다. 수없이 많은 곳에 전화를 돌려서 자료를 받고 확인하고 인터뷰를 거친 끝에 ‘80대 최진실’을 찾아냈다. 여든이 넘은 ‘최진실 할머니’이라니! 자애로운 담당 피디는 나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고 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톱스타 최진실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동명이인 최진실 할머니라니! 최진실과 최진실의 전화통화를 들으면 시청자들이 얼마나 재밌어할까! 귀가 어두워서 몇 번이고 반문을 하는 대화방법이며, 무뚝뚝하면서도 속이 푸근한 최진실 할머니의 음성은 방송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엄청 상냥한 손녀딸처럼 여러 번 통화를 하면서 방송의 취지와 생방송 일정을 알려드렸고 할머니도 충분이 숙지하셨다. 그러나 생방송을 몇 시간 앞두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오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통화가 됐는데,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마지막 확인 전화를 드리니 전화벨만 요란하게 울려댈 뿐이고 등줄기엔 땀이 쭉 흘렀다. 이 일을 해결해줄 슈퍼맨- 우리팀의 피디에게 갔다.
- 차장님. 최진실 할머니가 전화를 안 받으세요.
그때였다. 한없이 자애롭고 능력자였던 담당 피디는 나를 구해주기는커녕 어떠한 해결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눈빛으로 1초 2초 3초 동안 나를 쳐다보고 나가버렸다. 그 눈빛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가시처럼 돋쳐있었다. ‘동명이인 전화 인터뷰’가 날아갔으니 나는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 방송은 망가질 테고 나는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하지만 이런 고민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 날 방송은 아주 자연스럽고 재밌게 채워졌다. 선배 작가는 애초부터 그런 전화 인터뷰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매끄럽게 구성을 손질했고 다들 방송 몇 시간 전에 수정된 큐시트대로 척척 움직였다. 누군가 야단을 치거나 책임을 물었다면 변명할 기회라도 있었을 텐데 아무도 ‘최진실 할머니가 왜 전화를 받지 않는지’ 묻지 않았고, 나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였다. 책임이라는 것도 아무나 질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이튿날 최진실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해보니, 할머니는 저녁상을 물리고 깜빡 잠이 들어서 전화벨 소리를 못 들으셨다고 했다. 세상에 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나. 할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시면서 다음 주에는 꼭 전화를 받겠다고 하셨지만 이미 물 건너간 일.
그로부터 한두 달쯤 지나서 그 당시 각종 프로그램의 전문 MC로 활동하면서 시청자들에게 호감도가 높은 방송인이 출연하게 됐다. 그녀는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도 야무진 아내이자 사랑받는 며느리로 알려져 있었기에 이번에는 ‘깜짝 전화연결’로 그녀의 시어머니를 섭외하게 됐다. 두 번 다시 ‘최진실 할머니’처럼 말없이 펑크 내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걸 알기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러나 나만 정신을 바짝 차린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시어머니 역시, 방송을 몇 시간 앞두고 전화연결이 힘들 것 같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다양한 말로 어르고 달래고 짐짓 화를 내기도 했지만 시어머니의 마음을 돌릴 재간이 없었다. 시어머니를 설득하느라 시간을 날리기보다는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담당 피디를 찾아갔다. 피디는 이미 스튜디오에 내려가 카메라 스텝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 언저리를 빙빙 도는 내 꼬락서니를 보고 대충 감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 어, 왜?
- 오늘 전화 연결하기로 했던 H 씨 시어머니가....
- 안돼 안돼. 그거 어떻게든 해야 된다.
- 잘 말씀드렸는데도, 안 하시겠다고......
- 그럼 니가 시어머니를 하든가!
시냇물 같고 강물 같고 바다 같았던 피디가 내게 소리를 질렀다. 니가 시어머니를 하든가!
나는 얼굴이 하얘졌다. 아니 얼굴이 뜨거워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입고 있었던 베이지색 꽈배기 무늬의 스웨터가 무겁게 느껴졌다. ‘최진실 할머니’에 이어 ‘H씨 시어머니’까지 놓치면서 프로그램을 망가뜨리는 인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피디 말대로 출연자의 시어머니로 빙의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날개만 없지 천사와도 다름없던 피디가 나랑 단둘이 마주한 스튜디오 객석 제일 뒤쪽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는 걸 누구에게 말하면 좋을까. 내 머리는 도둑이 들쑤셔놓은 서랍장처럼 뒤죽박죽이 됐지만 그날 방송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다. 시어머니와의 전화연결 실패를 기억하는 건 나 혼자뿐이었나.
나의 사사로운 감정보다 더 중요한 건 그날의 방송이다. 방송이 잘 되면 중간 과정에서 누가 실수를 했고, 누가 상처를 받았는지는 잊힌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나는 담당 피디의 웃는 얼굴도 낯설고 서먹했다. 느릿한 말투와 평온한 표정 위로 ‘니가 시어머니를 하든가’라고 소리치던 모습이 덧입혀지면서 한발 뒤로 물러서게 됐다.
- 넌 작가가 마음이 그렇게 약해서 어떡하니. 종이에도 마음이 베이겠구나.
내 마음을 벤 건 종이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으므로 PC통신 나우누리 아이디를 [베인 마음]으로 만드는 것으로 나를 위로했다.
아직 일이 서툴던 20대 후반에 내 감정을 흔든 사람들은 주로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자애롭고 바다 같던 피디도 소리를 꽥 지르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하루에도 여러 차례 자기 혼자 신났다가 자기 혼자 파르르 화를 내는 K피디와 일할 때는 매일매일이 전쟁터였다. 그 사람이 언제 / 왜 / 얼마나 작가들을 들볶을지 예측 불가능했고, K피디와 눈을 맞추지 않기 위해 다들 바쁜 척을 하고 있어야 했다.
예능프로그램 초보 작가들은 주로 섭외 업무를 담당했는데, 선배들이나 피디들처럼 친분 있는 매니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능수능란하게 사람을 다루는 언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주가 아니면 다음 주, 다음 주가 아니어도 좋으니 언제든지 한번 시간을 내달라고 굽신거리는 게 통화내용의 대부분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이 머리를 조아리듯 부탁의 부탁을 거듭해서 겨우 출연하게 된 가수가 있다. 성격이 활화산 같았던 K피디도 흡족한 눈치였다.
출연자들과 사전 인터뷰를 하는 게 기본이지만, 그 가수는 너무 바빠서 전화 인터뷰도 불가능하다고 거절한 대신 녹화 당일에 일찍 와서 대본 내용을 충분히 설명 듣겠다고 매니저가 약속했다. 그래, 잘 나가는 연예인이니까 약속도 잘 지키겠지! 오늘만 잘 견디면 또 한고비 넘어가는 거라고 생각하며 녹화 당일 대본을 들고 출연자 대기실을 찾아갔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다른 스케줄을 하느라 너무 피곤해서 지금 잠깐 눈을 붙였으니 방해하지 말라며 매니저가 가로막았다. 출연자가 잠에서 깰 때까지 대기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녹화 직전에서야 잠깐 얼굴을 봤는데, 나보다 예닐곱 살쯤 어린 그 가수는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눈만 치켜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 대본 설명 잠깐 해드릴게요.
- 아 괜찮아요. 물어보는 대로 대답만 하면 되잖아요
그 거만한 태도와 교만한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 많이 피곤하죠, 이번 앨범 노래가 너무 좋아요, 대본을 미리 보내줄걸 그랬네, 이렇게 부드러운 말로 사람을 아우르고 다독여줄 에너지가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휘어지지 못하는 나는 부러지기를 택한 것이다. 그날 녹화를 마친 후 다음 주부터 출근하지 않겠다 통보하자 분노조절장애 증세가 심각했던 담당 피디는 천둥같이 우르르 쾅쾅 한바탕 난리를 쳤다. 그만 두기로 마음먹으니 그 사람의 호통 따윈 두려울 게 없었다. 아침부터 내린 함박눈이 눈부시게 쌓여있는 창밖을 보며 집에 갈 생각을 한다. 연말이라 길도 많이 막힐 텐데. 그래도 눈이 오니까 기분은 좋네.
그렇게 스물아홉 살의 12월은 대책 없이 끝났고, 30대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뜨겁거나 혹은 거지 같았던 연애도 했고, 일자리를 옮긴 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일할 수 있었고 가내 두루 평안했으니 돌아보면 참 감사할 일이 많았던 30대였다. 그렇게 30대는 짧게 훅 지나갔다. 너무 짧았다.
어어어어 하는 사이에, 이번엔 마흔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내가 당황스러워하거나 말거나, 마치 40년 동안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선뜻 악수를 청하는 마흔 살- 내 인생 새로운 시절과 인사한다.
hello, 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