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독서 01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베스트셀러는 잘 안 읽는 편이지만, (관심은 있지만 읽어야 할 책을 고르는데 있어서는 꽤 조건이 높은 편) 그래도 한번은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밀리의 서재]로 오디오북을 들으며 완독했다.
*밀리의 서재의 좋은점 중에 하나가, 몇몇 책들은 오디오북도 제작되어 나온다는 것[!]
; 핸드폰으로는 음성을 듣고, 아이패드는 눈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함!
때마침 어떤 영상을 통해 작가님이 어떻게 이 이야기를 쓰게 되셨는지를 접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책. 중간중간 피식 - 웃음도 나는 따듯한 책이었다.
서울역에 얽힌 추억이 몽글몽글, 그리고 선한 움직임들.
이 이야기는 코를 찡긋하게 만드는 냄새나는 서울역이 배경이다. 주인공 독고는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게 된 중년남성으로, 우연히 어떤 여자의 파우치를 갖게 되고, 다시 돌려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상치 못하게 노숙자를 통해 자신의 파우치를 찾게 된 이 여성은, 청파동 작은 골목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서울역' 하면, 나에게도 많은 추억들이 있다. 우리가족은 해마다 명절이 되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시골에 갔었다. 어린시절 명절 차표를 끊기 위해 엄마와 서울역에서 줄을 서기도 했고, 20대가 되어서는 매주 토요일 점심시간 마다 구)서울역사의 구름다리 (현재는 서울로 7017 산책길로 바뀌었다) 로 향하곤 했다. 교회 청년부에서 하는 노숙인 배식 봉사 때문이었는데, 냄새도 많이 나고 아주 거칠게 생긴 분들을 많이 만났었다. 어쩐 일인지 그 당시에 내 기억 속 노숙자 분들이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어떤 한 여자분을 만나기 전 까지는..
배식을 하면서, 식사하러 오시는 분들의 눈을 최대한 마주치며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키 작은 아주머니는 나에게 "야, 왜 이만큼 밖에 안줘, 나 무시하는거야?" 라면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소란을 일으켰다. 나는 정말 많이 당황했지만, 당시에 아주 사랑과 성령이 충만했던 우리팀들은 나에게 괜찮은지 물어보고, 또 그 분을 다독여드리며, 다시 넉넉하게 식사를 드리고 심지어 바닥에 마주앉아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들어드리기까지 했다. 그 전까지는 이 노숙인들은 그냥 나와는 상관없는 먼 사람들이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그저 이유없이 따듯함을 베푸는 사람들에게조차, 신경질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왜 그럴까, 왜 저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을까 라는 질문이 나의 삶에 들어왔고, 기도시간에도 그들을 향한 기도제목이 추가 되었다. 다시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고민하며 눈물도 짓던 시간도 있었다.
아마 당시에는 서울시에서 노숙인 급식을 제도화하기 이전이었던 것 같다. 아침 일찍 교회식당에서 만나, 그날 배식할 밥과 반찬, 국, 그리고 식판을 가져갔고, 또 배식이 마치고 나면 다시 교회로 돌아와 설겆이까지 했었다.다시한번 생각해보지만 내 힘과 의지는 정말 아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교회에서 많은 시간동안 '전문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혼자 할 수 없었던 것들, 내 스스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고 경험하게 해주었다. 서울역 노숙자 배식봉사, 이주 노동자들과의 만남, 쪽방촌 어르신들과의 만남, 해외 유학생들과의 한국어 수업 등... 시대마다,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돌봄이 필요했던 사람들, 약자가 된 사람들을 살피고 돌보는 시간을 통해, 우리들의 삶에 가장 누추한 곳, 가장 낮은 마음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나를 개인적으로가 아닌,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준 좋은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내 삶을, 이웃과 연결시키는 시간들!
소설이라는 장르의 재미, 읽고 쓰는 시간에 대한 고찰.
"소설쓰고 앉아있네" 라는 말은 왠지 이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간을 '허송세월'이라고 여기게끔 만드는, 약간 비꼬는 투로 쓰이는 말이다. 누군가가 지금도 한자 한자 써내려고 가고 있는, 아무것도 없는 빈 화면에 하염없이 검은색 텍스트를 썼다 지웠다하는 그 시간들 말이다.
소설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물론 영화도 그렇지만. 그래도 소설과는 좀 다른 느낌을 준다. 영화는 이미 배우라는 사람이 그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대신해 실존해있지만, 소설은 형태가 아직 없다. 그러니 머릿속에서는 소설 속 인물들을, 자신이 알고 있는 실존하는 인물들 속에서 매칭해보려는 애씀의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재미있는 작업이네.)
<불편한 편의점>을 보면서, 그리고 계속해서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 읽는 다양한 문학작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을 읽는 행위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조금 더 넓게 생각해보았을 때, 책을 읽는 행위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될 수도 있겠다. 한 뼘 더 나아가 글을 쓰려고 앉아있는 시간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은 어쩌면 나의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들을 향한 질문이기도 한 것 같다.
많은 시간을 현장에서 나의 손과 발을 움직여 이웃을 돕고 만나는 것을 경험했던 나이기에, 지금 이렇게 책을 읽고 앉아 있는 / 글을 쓰고 앉아있는 이 시간이 아직도 꽤나 어색한 모양이다. 두 손과 두 발을 움직이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시간들. 하지만 이제는 머리와 두 손이 대신해서 움직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이 또한 감사할 일!)
더불어, 문학작품을 읽을 때 왜 작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한지 너무나도 잘 알려준 작품이다.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에 대한 작가의 인터뷰를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소설 쓰고, 앉아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말이다. 무언가 일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도, 쌓여간다는 진리.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또 한번 나의 손과 발을 움직여 이웃을 향하고 싶게 만들어 준 따듯하고 뜨거운 책이다.
오늘 저녁에는 편의점에 들러서 옥수수수염차 투플러스원 하는지 보고, 사들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