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기록] 01. 근육
소명을 알아간다는 건, 근육을 키우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그렇듯, 소명도, 건강함도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거나, 생기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한다. 매일 조금씩 스트레칭을 하면 조금씩 근육이 붙고 단단해지는 것처럼.
소명을 알아가는 여정에 조급해 하지 말라는 마음과 함께 “지금의 시간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존재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속박되어’ 있다. 수많은 세력들이 우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만큼 우리는 ‘존재로의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의 노예나 환경의 희생자가 되지 않고 진정한 자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존재로의 용기’는 어느 정도 까지는 ‘타고난 존재’의 궤도에 합류하여 함께 진행될 것이다. (p.50)
존재로의 용기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 기존에 형성된 분위기와 세력이 존재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가족의 정서, 경제적 환경 등일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정하고 잊고 싶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는 것 처럼. 오히려 알아야만, 기존에 형성된 세력에 계속 지배받지 않고 “진정한 자아” - 자유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우리를 개개인으로 보고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신다. 즉, 우리를 독특하고, 특별하며, 고귀하고, 중요하며, 자유로이 반응하는 존재로 대하신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무한하고 인격적인 존재로써,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인격인 존재다. 그러므로 부름받은 우리는 개개인으로서 거명되었고, 그분과의 관계로 초대받은 것이다.
이 책에서 소명을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을 구분해야 하며, 항상 그 순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게는 이차적 소명을 통해 얻는 인정, 성공과 실패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일차적 소명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통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개인을 존재로 보고 존귀한 존재로 여겨주는 관계.
그러나 많은 조직들이 그렇듯, 그 존재로의 인식이 베이스가 되지 않은 ‘소모적이고 일회성’으로 ‘사용되고 쓸모가 없으면 버려지는’, ‘조직 안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필요있고 쓸모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사람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는 기능적 쓸모가 더 에너지를 쏟게되면, 사실은 소명이나 사명감이 [일중독]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개개인이 자유인으로써 존재로서의 용기를 내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수 없는 영역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처럼 인간적인 성향으로 깊이 빠져드는 길을 차단한다. (p.79)
내게도 인간적인 성향들(욕심과 성취와 인정을 위한 갈망) 을 인정해야, 그제서야 내가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인가 아닌가가 드러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