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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joicewons Feb 04. 2022

#14. 비밀의 화원

장미를 가꾸는 곳에서는, 엉겅퀴가 자랄 수 없다 


"잎사귀도 없고, 회색하고 갈색이 나면서 말라 보일 땐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봄기운이 닿을 때까지 기달려야지. 비가 오다가 햇살이 내리쬐구, 햇살이 내리쬐는데 비가 올 때까지 기달리다 보믄 알게 되겄지."

"어떻게, 어떻게요?" 메리가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소리쳤다. 

"잔가지허구 굵은 가지를 살펴보다 보믄 여기저기 갈색 혹이 부푼 게 있을텐데, 따듯한 비가 온 담에 그게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시오" 




디콘은 작은 순 하나를 건드렸다. 딱딱하게 마른 회색이 아니라 갈색이 도는 초록빛으로 보이는 순이었다. 메리도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경건한 자세로 그 순을 만졌다. 
"저건? 저건 살아 있어?"

디콘이 큼지막한 입으로 빙끗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아가씨나 나만치루 팔팔허요"

메리는 "팔팔하다"는 말이 "살아있다"는 뜻도 되고 "생생하다"는 뜻도 된다는 걸 마사에게 들은 기억이 나서, 숨죽여 외쳤다. 
"팔팔하다니 다행이야! 여기 전부 다 팔팔하면 좋겠어. 화원을 돌면서 팔팔한 애들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자!" (144)


"난 계속 살이 붙는 중이야. 힘도 점점 세지고 있고, 전에는 늘 피곤했는데 이젠 땅을 파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 흙을 뒤엎을 때 나는 냄새도 좋아." (147)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메리. 


"땅은 필요한 만큼 가지렴. 네 덕분에 땅과 자라나는 것들을 사랑하던 어떤 사람이 떠오르는구나. 가지고 싶은 땅을 보게 되면 가지거라 얘야, 그리고 그곳을 살려보렴" 크레이븐 씨가 미소 비슷한 것을 머금은 채 말했다. 

(165)


디콘은 죽은 것처럼 보였던 장미 나뭇가지에서 잎눈이 돋아난 것을 보여주었다. 수없이 많은 연둣빛 새싹들이 비옥한 흙을 밀고 올라오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디콘과 메리는 신이 나서 코를 땅에 들이대고 킁킁대며 따스한 봄날의 숨결을 들이마셨다. 황홀경에 빠져 땅을 파고 잡초를 뽑고 숨죽여 웃다보니 어느새 메리 아가씨도 디콘처럼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두 뺨은 양귀비만큼 빨갛게 상기됐다. 


"우리가 여 앉아있는 동안 울새허구 그 짝허구 어떻게 했는지 봤남요? 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녀석 좀 보시요. 저걸 어디에 놓으믄 젤루 좋을까 궁리하믄서 잔가지를 부리에 물고 있잖어요" 

디콘이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자 울새가 고개를 돌려, 여전히 잔가지를 부리에 문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디콘은 벤 웨더스태프 노인처럼 울새에게 말을 걸었지만, 디콘은 다정하게 충고하는 말투였다. 

"그거 암 데나 놓아두 다 괜찮어. 넌 알에서 나오기두 전부터 둥지 짓는 방법을 알고 있었잖어. 놓구 싶은 데다가 놔. 낭비헐 시간이 없어."  (227)


"다신 안가겠다고 했는데.." 메리는 망설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봐서.. 봐서.. 가봐야겠어.. 그애가 오라고 하면.. 아침에 말이야. 또 베개를 던지려고 할지 모르지만... 생각해보니까.. 가야겠어"  (239)


"네가 상상한 모습 그대로야. 꼭 네가 직접 보고 말한 것 같아. 네가 처음으로 화원 이야기를 해준 날에도, 꼭 다녀온 사람 같다고 내가 그랬잖아."

메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사실대로 말했다. 

"그때 보고 말한거였어. 화원에 다녀왔던거 맞아. 열쇠를 찾아서 들어간 게 몇주 전이었어. 하지만 너한테 말할 수 없었어. 용기가 안났거든. 불안해서. 너를 믿어도 될까... 정말로 말이야!" 


동물을 부리는 마법사만이 알 수 있는 온갖 자세한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땅 속 세계 전체가 얼마나 살 떨리는 간절함과 불안을 안고 쉼없이 움직이고 있는지 깨닫게 되면서 몸서리쳐지는 흥분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것들도 우리랑 똑같어요. 단지 집을 해마다 지어야 할 뿐이죠. 그러다보니 너무 바빠서 집을 지으려구 아웅다웅하는거구요" 


"봄이 오는구만요. 냄새가 나남요?"

코를 킁킁대자 메리도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뭔가 기분 좋고 상쾌하고 축축한 냄새가 나요."

벤 웨더스태프가 땅을 파면서 말했다. "그게 기름진 흙냄새요. 땅두 뭘 기를 준비를 허니 기분이 좋은 게지. 심는 철이 오믄 땅두 기뻐허거든. 아무 헐 일두 없는 겨울은 따분한 거라. 저밖에 있는 화원들 검은흙 밑에서두 작은 것들이 자라느라 꿈틀꿈틀허것죠. 햇빛이 따뜻허게 뎁혀주니까요. 좀만 기다리믄 초록 싹들이 검은흙 위로 삐져나오는 걸 보겠구만요.”

"그 싹들이 크면 뭐가 되는데요?" 메리가 물었다.

“크로커스두 되구 갈란투스두 되구 수선화두 되구. 한 번도 못 봤남요?”

"네.인도는 매일같이 너무 덥고 축축한 데다, 비가 오고 나면 온통 초록색이 되거든요. 그래서 하룻밤 사이에 다 자라는 줄 알았어요."

"하룻밤 사이에 자라는 게 아니요. 기다려줘야지. 이쪽서 더 크게 삐져나오는가 하믄 저쪽서 더 많이 나오구, 오늘 이파리가 하나 피면 또 딴 날 하나피고 그런다니까. 한번 보시요."

"그럴게요." 메리가 대답했다.


장미를 가꾸는 곳에서는 얘야,

엉겅퀴가 자랄 수 없단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들.. 다음이 기대되지 않는 두려운 순간들..

작은 불행하나에도 큰 불행을 예감하며 두려워했던 순간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게 된 메리에게도 있었고, 

방구석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콜린에게도 있었고, 

아내를 잃은 슬픔에 정원 문을 닫아버린 크레이븐씨에게도 있었고.

나에게도 있었다. 


*메리가 비밀의 정원에 가서 벤 할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며 땅을 기경한 장면.
죽은 것 같았던 장미의 새 순을 발견한 순간! 

*건강한 소년이 된 콜린이 커튼을 열어두고 그림 속 엄마의 눈빛에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


나도 나만의 작은 화원을 가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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