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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joicewons Jul 13. 2021

#13 대지. 그 땅에서

소박하고 가난한 농부 왕릉이 부농이 되기까지


왕룽은 담배를 피우며 앉아서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은화를 생각했다. 그것은, 그 은화는 흙으로부터, 그가 몸을 바쳐 일하고 쟁기를 갈아 뒤엎은 흙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는 이 땅으로부터 생명을 얻었고, 한 방울 한 방울 땀을 흘려 흙으로부터 식량을, 그리고 식량으로부터 은화를 짜내었다. 전에는 누구에게 주려고 은화를 꺼낼 때마다 마치 그의 삶을 한 조각 떼어내서 아무렇게나 누구에게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주는 것이 처음으로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다. (p.50) 


"단지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이유 때문에 작은아버지한테 돈을 준다는 건 살을 베어내는 것과 같아." (중략) 그러자 그는 오늘 그의 집에 태어난 새 식구가 머리에 떠올랐다. 부모에게 속하는 자식이 아니라 다른 집안을 위해서 태어나고 키우는 딸, 그 딸들이 그에게 태어나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은아버지 때문에 화가 났던 터여서 그는 새로 태어난 이 작은 생명의 얼굴을 보려고 잠깐 걸음을 멈출 생각조차 못했다. (p.91) 

그리고 그는 날마다 여러 날 동안 그의 땅으로 나갔다. 그러나 훌륭한 대지가 또다시 상처를 아물게 해서, 태양이 그를 비춰 고통을 쫒아버리고 여름의 훈훈한 바람이 그를 평화로 감싸주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봉착한 걱정거리들을 상기시키는 끊임없는 생각의 뿌리까지도 치료해주려는 듯 어느 날 남쪽으로부터 작은 구름 한 조각이 흘러왔다. 그것은 처음에 지평선 위에 엷고 자그마한 안개처럼 걸려 있었지만 바람을 타고 흐르는 구름처럼 이리저리 날아가지를 않고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는 공중에 부채처럼 펼쳐졌다. (p.310) 


언젠가 그가 그 큰 집으로 기어 들어가다시피 찾아가서 문지기까지도 두려워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서 있던 때를 왕룽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고, 왕룽은 평생 그에게는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은 그 순간을 증오했다. 평생동안 그는 사람들이 자기 읍내에 사는 사람들보다 좀 낮은 신분이라고 여긴다는 의식을 지니고 살아왔으며, 큰 집의 노마님 앞에 섰을 때는 그 의식이 위기로 변했었다. 그래서 아들이 '우리도 큰 집에서 살 수가 있다'고 말했을 때는 '그 늙은이가 올라앉아 농노처럼 서 있으라고 명령하던 그 자리에 내가 앉을 수 있고, 이제 나는 그곳에 앉아 다른 사람을 내 앞에 호출시킬 수도 있어'라는 생각이 실제로 눈앞에 벌어지는 장면처럼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그럴 마음만 있다면 나는 그럴 수 있더'라고 자신에게 다시 말했다. (p.382) 


"내가 할말은 이게 전부야. 돈을 그만 써. 그리고 열매를 맺으려면 뿌리는 대지의 흙 속에 잘 묻혀 있어야 해." (p.411)




대지. 책 제목을 많이 들어보았지만, 드디어 책을 덮었다. 책을 두세번 열고 닫아가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라는 문학장르가 선사해주는 제3자의 입장이지만, 책 속에서 나를 만난다. 내 생각과 비슷해서 흠칫 놀라게 되고, 내 생각과 다르지만 꽤 괜찮은 결과였음을 보게되는 것만큼 특이하고 재미난 경험이 없다.

시대상이 반영된 장치들로 노마님, 작은어머니가 즐겼던 아편이 부의 상징이며, 차를 마시는 것을 은을 먹는 것과 같이 표현된 지점에서 들었던 생각은, 2021년 오늘날의 이야기를 훗날 기록에 부친다면 빠질 수 없는 '코로나백신' / '마스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조금 다른 면에서 어쩌면 인생에서 "누군가를, 어떤 행동을 닮아감" 이라는 말이 얼마나 부드럽고 인격적인 말인가 싶으면서도,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가 새삼스레 느꼈다. 닮는다는 것은 억지로 강제로 되지 않는다.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저도 모르게 흠모하고 지향점을 따라서 선택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이렇게 정리하고 있는걸 보면, 나에게 어떤 질문을 남긴게 분명하다. 

소박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삶을 일궈나가던 왕룽과 오란의 소박함, 근면함, 검소함, 책임감.. 이런 "인류보편적 가치"들이 지금 나에게도 가치있게 작동하고 있는가? 땅을 절대 팔지 않겠다는 말을 하며 웃음을 띈 젊은이가 보여주듯, 새로운 시대와 세대가 그것이 가치가 아니라 지향하지 않더라도, 진짜 내가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살고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러한 것을 가치있게 여기는가? 왜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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