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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스이 Jul 22. 2021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다시 쓸 용기를 위하여

 브런치에 글을 못 쓴 지 한 달 반은 되었다. 이유 모를 불안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자꾸만 공황이 찾아왔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 호흡이 위태로웠다. 숨 쉬는 게 어렵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가슴에 압박붕대가 칭칭 감긴 채로 KF94 마스크를 열 개쯤 겹쳐 끼고 숨을 쉬는 느낌이다. 게다가 눈을 뜨거나 감거나, 어둑한 어느 좁은 공간에 갇혀있는 기분이랄까. 압박붕대에 갇힌 가슴 안에서 심장은 마구 뛰었다. 비상약 없이는 견딜 수 없었다. 아직도 아침마다 하루 일과를 계획하기가 버겁다.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다. 씻고 밥을 먹어야 할지, 먹고 씻을지를 결정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런 내가 한없이 바보 멍청이 같다는 생각을 지우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공황 탓에 아무것도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으며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었다.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감히 나 따위가, 한 순간에 한없이 나약해진 내가 우울과 불안을 견디는 이들을 향해 응원의 글을 써왔던 게 스스로 우스웠다. 그래도 용기를 냈다. 내가 브런치를 열지 못한 50여 일 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었다. 대개 검색 키워드는 강박증, 정신과, 정신과 진료비 같은 것이었다. 지난날 나의 고민을, 지금의 누군가가 겪고 있구나. 그래서 인터넷을 살펴보는 중이구나. 내 글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쓸 때 나는 언제나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을 첨부한다. 펜을 들기 전에, 그동안 내가 뭘 하긴 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휴대전화 갤러리를 확인했다. 놀랐다. 의외로 꽤 많은 무언갈 했더라. 숨이 차서 괴로운 나는 오히려 숨차게 만드는 운동에 몰입해야 숨이 차지 않았다. 매일 헬스장을 다녔다. 종종 거울 앞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불안 때문에 글쓰기와 책 읽기가 어려워지고는 줄곧 그림을 그렸나 보다. 색연필로 아무 생각 없이 컬러링북을 채우기도 하고, 오일파스텔로 손이 따르는 대로 뭔갈 그리기도 했다. 

 상태가 조금 나아진 후에는 동네의 새로운 카페들을 발견하며 때때로 즐거워했다. 아인슈페너가 맛있는 곳,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나를 맞이하는 곳, 약과가 맛있는 곳, 탁 트인 창가에서 집중하기 좋은 곳. 날이 좋은 날에는 혼자 사진전에 다녀왔다. 요시고의 작품과 그의 마인드에 크게 감명받았다. 그의 표현을 빌려 난생처음 손가락에 타투를 새겼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아, 봉사활동도 했다. 미혼모의 아가들을 위한 신생아 손발싸개와 모자를 바느질했다. 서투른 바느질에 자꾸만 내 손을 찔렀다. 그게 타투보다 훨씬 아팠다. 완성품을 만지작거리니 마음이 따뜻하고 뿌듯했다. 

 무엇보다 간간히 친구들을 만났다. 소중한 친구들에게는 살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누구와는 별 말없이 컬러링북을 채웠다. 기차를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이와 경치 좋은 곳에서 잠시나마 잡생각을 버렸다. 오랜만에 만난 아무개는 나에게 양희은의 책을 권했다. 권유받은 책을 그 자리에서 훑어보았다. 성향이 꽤나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절친과는 같이 사주를 보러 가서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구나.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만은 아니구나.


용기를 주는 한 마디. 서촌 GRANHAND. galaxyS21

앞으로도 내 컨디션은 사인 그래프처럼 들쭉날쭉할 것을 안다. 아주 좋았다가도 나빠질 것을 안다. 그러나 다시 좋아지는 날이 분명히 있음을 믿기로 했다. 그런 날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글을 쓰겠다.


나의 모든 경험과, 그 경험에 함께해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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