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에게 이런 말은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나약하고 맘이 여려서 어떡하려고 그래."
"남들 다 그러고 사는데 넌 왜 그렇게 유난이니?"
"우울하지 않게 너 스스로 노력을 해봐."
"운동하고 일 열심히 하면 그럴 틈도 없다더라."
"약에 의존하면 안 돼. 얼른 끊어야 돼. 나랑 있을 땐 약 먹지 마."
"(정신의학 관련 서적을 내밀며) 이거 한 번 읽어봐."
"약 계속 먹으면 멍청이 된다더라."
"그거 약 먹으면 졸리기만 하던데, 별 소용없어."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는 말.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되는 말. 내가 실제로 들은 말이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겪는 다른 이들이 들었다는 말. 그리고 내가 나에게 던졌던 모진 말이기도 하다.
내 아픔을 반드시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불안장애나 우울증, 강박증, 공황장애 따위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 때가 있다. 병원비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이 필요하거나, 타인 앞에서 약을 먹어야 할 때, 약 때문에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설명해야 할 때 그리고 나 스스로가 치료 중임을 밝히는 게 편할 것 같을 때 - 이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이유로 내 병을 남에게 드러냈다. 응원과 지지를 주는 사람들도 참 많았지만, 위에 제시한 문장과 같은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저런 말을 들으면 괜히 위축되곤 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그래서 제대로 된 대꾸를 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동안 못했던 말대답을, 여기에 적으며 속풀이를 하련다.
"그렇게 나약하고 맘이 여려서 어떡하려고 그래."
▶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치료받으면 되죠.
내가 마음이 약하고 여린 건 맞다. 그러니까 병원에 다니는 거다. 나라고 병원이 좋아서 가는 건 아니다.
"남들 다 그러고 사는데 넌 왜 그렇게 유난이니?"
▶ 그러게요. 그런데 제가 유난인걸 어쩌겠어요? 그리고 저처럼 유난스러운 '남들'도 꽤 많답니다.
슬프게도 이건 내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남들은 힘들다 힘들다 해도 그럭저럭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럴까. 해답을 찾을 순 없었다. 대신 나 같은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 후로 내가 유난이라거나,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좀 편해졌다. (정신과 관련 키워드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아주 많아서 놀랐다. 그리고 정신과 진료 대기실은 늘 북적인다.)
"우울하지 않게 너 스스로 노력을 해봐."
▶ 혹시 선생님께서는 노력만으로 병을 자가 치유하는 능력이 있으신가요?
노력. 중요하다. 약만 먹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반대로 노력만 한다고 병이 낫지는 않는다. 명백히 약물이 필요한 병이다. 노력이 뭘까 싶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운동을 꾸준히 하려는 노력을 한다. 운동할 때만큼은 불안 증상이 없어서 '그 노력'이 효과적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운동으로 올라가는 심박수 때문에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니 뭔지 모를 그 노력 타령을 멈춰주시길. 어떤 이는 병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노력의 행위이자 결실이다.
"운동하고 일 열심히 하면 그럴 틈도 없다더라."
▶ 일하다가 걸린 병이에요. 운동도 하고 있었는데요, 퇴근 시간이 늦어져서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어요.
바쁘게 살면 우울할 틈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다. 그 바쁜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게 나의 우울과 불안이다. 예전의 나처럼, 출근길에 숨이 차는 증상을 겪는 직장인이 꽤 된다. 퇴근 후에도 일 생각으로 스트레스받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불안, 분노, 좌절, 압박감 - 온갖 부정적 감정을 겪는 회사 생활. 퇴근 후에 몸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요가를 다녔지만 그마저도 야근 때문에 꾸준히 다닐 수 없었다.
"약에 의존하면 안 돼. 얼른 끊어야 돼. 나랑 있을 땐 약 먹지 마."
▶ 네가 뭔데?
들었던 말 중에 제일 어이없었던 말. 의사도, 약사도, 전문상담사도 아닌 네가 뭔데? 남자 친구라서? 네가 해결해주는 게 대체 뭔데 그런 말을? 당시에는 말문이 턱 막혀서 대꾸할 수 없었다. 아이고 원통해라.
"(정신의학 관련 서적을 내밀며) 이거 한 번 읽어봐."
▶ 저를 생각해서 책까지 구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만, 저 대인기피증은 아니에요.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무심한 듯 툭 책 두 권을 던져주셨던 아버지. 딸에 대한 서투른 애정과 연민의 표현이었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우울증이었지 대인기피증은 아니었다. 물론 학교 가는 걸 너무 싫어했으니 그렇게 생각했을 만도.
"약 계속 먹으면 멍청이 된다더라."
▶ 단어 선택이 좀 그러네요. 어쨌거나 저는 지금 치료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마치 멍청이처럼요.
내가 정신과 약을 언제부터 먹었더라?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성인이 되어서도 증상에 따라 약을 먹기도 하고 먹지 않기도 해왔다. 오래 복용하면 멍청이 되는 약이었다면, 나는 이미 수년 전에 똥멍청이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대학도 나왔고, 일도 잘만 했다. 오히려 우울이나 불안이 심할 때 일이나 책에 집중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
"나도 우울증 왔었는데 그거 약 먹으면 졸리기만 하던데, 별 소용없어. 난 스스로 좋아졌어."
▶ 약을 조절하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전 안 졸리고요. 무엇보다 선생님과 저는 증상이 명백히 달라요.
겪어본 사람의 조언이라기엔 잔인했다. 마치 '내 MBTI는 ISTJ인데 너도 ISTJ니까 너는 나랑 성격이 완벽히 같아!'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쉽게 내뱉는다고 생각한다. 아, 몰라서 그렇구나- 하고 넘겨야 속이 덜 상한다. 설득하거나 항변하고 싶을 때가 많겠지만 그 또한 감정 소모다. 말이 통할 것 같은 사람이라면 찬찬히 얘기해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어렵겠지만 개의치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이 나의 소중한 사람일 때 맹렬한 실망과 더 없는 슬픔이 찾아오곤 한다. 이미 상처 받은 마음에 믿었던 사람이 소금을 팍팍 뿌려대는 꼴이니까. 혹시 누군가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부디 이런 말만은 하지 않기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