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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스이 Sep 26. 2021

불안하다고 불행한 건 아니다

내가 불안으로 얻은 것들

 불안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어야 했다. 업무는커녕 출퇴근조차 힘에 부쳐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숨 쉬는 것처럼 쉽다 못해 당연한 인체의 생명 활동이 힘겨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불안해서 지독하게 불행하고 불쌍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끝없는 자기 연민으로 어느새 나를 세상 제일 딱한 존재로 만들고, 그런 나를 위해 슬퍼했다. 그러다가도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 불안 때문에 자책하는 날도 많았다. 하필 나는 왜 이토록 불안해서 이렇게나 불행할까. 그렇게 생각의 끝은 나의 존재를 지우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라지고 싶었다. 이렇게 살 바에 살고 싶지 않았다. 심한 날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죽음을 위해 어떠한 방법을 강구하거나, 시도할 의지나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나는 그만큼 겨우 버텨지면서 살았다. '버텼다'기 보다는 '버텨진'게 맞다. 그냥 나를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무기력했다. 


 요즘은 불안으로 얻은 것에 대해 생각한다. 우선, 퇴사 후 전보다 많이 다양한 경험을 했다. 대낮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평일 오전에 전시회를 느긋하게 즐기게 되었다. 그림도 그려보고 운동도 마음껏 했다. 스포츠라면 스스로 젬병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바꿔주는 계기도 생겼다. 서핑을 배우면서 의외로 물에서는 겁이 없고 제법 중심도 잘 잡을 줄 안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 체육시간에 배우는 운동은 주로 구기종목인데, 다 형편없었다. 공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뜀틀 같은 건 땅에 넘어질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난 겁쟁이라고 생각했는데, 물에서는 고꾸라지고 물을 먹어도 무섭지가 않았다. 이렇게 서른한 살이 되도록 몰랐던 나를 조금씩 알아가게 됐다. 일, 여행, 일상 모두 계획대로 움직여야 마음이 편했는데, 요즘은 꽤 즉흥적으로 산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니 떠오르는 걸 금방 할 수 있다. 예전엔 생각만 했던 작은 타투를 하고, 어느 날 머리 말리는 것이 짜증스러워서 곧장 머리를 짧게 잘랐다. 보고 싶은 이가 있어 곧장 교통편을 예약하고 만나러 가기도 했다. 이런 모든 일은 대개 불안 때문에 괴로워서, 혹은 불안을 좀 가시게 하려고 했던 행동이었다. 계기는 분명히 그랬지만, 다 재밌었다. 재밌다. 결론적으로 사는 게 좀 더 다채로워졌다.


윤슬을 반짝이며 흐르는 물처럼 살고 싶다 (canon af35ml - kodak color plus200)


 무엇보다 불안은 내게 을 만들어줬다. 작년 겨울 어느 날, 나는 내 이야기를 글로 써서 책을 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정말이지 별안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작가라는 장래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2021년 목표는 '브런치 작가 되기'로 정했다. 온라인으로 글쓰기 클래스를 수강하면서 매일 짧은 글을 썼다. 글쓰기 공모전이라면 시, 동화, 에세이 할 것 없이 글을 써서 제출했다. 때로는 지금 당장의 감정이나 묵혀둔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썼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집요하게 몰두했다. 올해 5월에 브런치에서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으니 목표를 조기 달성한 셈이다. 


 불안하다고 반드시 불행한 건 아니다. 속상한 날이 없을 수는 없지만, 소중한 나의 삶이 몽땅 불행해지는 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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