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편
오늘의 선곡은 '불안 : 내 안의 나와의 관계, 위로, 화해' 입니다.
저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볼까 하는데요.
조금(?) 예민한 성격에
'No' 근육이 제로인
우유부단을 넘어선 결정장애에
의외로 성실함과 체력은 갖고 있는
회사에선 쓰기 좋은 재료였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에, 싱글에, 사고는 안치는, 시키면 다하는.
일을 잘한다기 보다는 평타는 치면서 펑크 안내는
남이 미루는 일들도 많이 떨어지고
대부분이 여자후배들이고 결혼해서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일이 몰릴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뭐 예로 28~30일 연속 근무를 일년 중 세 번은 했던 거 같구요.
명절에 쉬어 본 적 없고 휴가를 하루도 못내본 해도 있었구요.
아무 생각 없이 일만하는 생활이었는데요,
제작년 휴가 때 홋카이도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그때 6.9도 지진을 겪었는데요.
여행 중 호텔에서 일본 중심에 태풍이 덮치는 화면을 보고
혼자 그냥 큰일이네 하고 넘겼는데요.
홋카이도야 북쪽이고 조금 거리가 있었으니까요.
다음날 JR선이 모두 끊겼더라구요.
그래서 계획을 바꿔 삿포로 시내를 돌아다녔는데요.
그날 밤에 자는 중에 갑자기 '꿀~렁'이라는 느낌에 눈을 떴는데요.
놀이기구가 주로 상하 운동이라면,
이건 좌우로 매우 크면서 빠르지는 않은 움직임이었습니다.
호텔 안 노란 비상등이 켜지고
핸드폰에서는 경고음 같은 문자소리가 울리고요.
뭐지.. 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켜니 재난문자가 와있었고
제일 빠른 정보는 트위터라 생각해서 보니 지진에 대한 얘기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여진을 겪었구요.
아무튼 교통편이 열리기까지 3일동안 물과 전기 없이 지내다 무사히 돌아왔는데요.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그때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일본에서는 전혀 이상한 게 없었는데요,
남들보다 더 겁먹지도 않고 담담했습니다.
다만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실제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순간이 있었다 정도였다고 생각했는데요.
돌아와서는 그게 아니더라구요.
갑작스런 폭식(물론 평소에도 많이 먹긴 했지만요.. ^^;;)에
안그래도 있던 불면은 심해져서 아무리 피곤해도 2시간 이상은 잘 수가 없었구요.
손에 큰 상처가 났는데,
밤에 집에 들어와 샤워할 때 물이 닿고 나서야 내가 다쳤구나를 깨닫구요.
내시경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저는 하루에 7~8번은 화장실을 가야했구요.
대장내시경 할 때처럼 평소에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일단 잠부터 자야 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지진이 트리거 역할을 했고 원래 쌓여있던 게 터진 거라고 하더라구요.
자율신경이 흔들려 제 마음이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거구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촉발한 불안장애, 우울증 다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상담과 치료 등을 계속 병행하고 있는데요.
대부분 내 안에 있던 과거의 나, 현재의 나를 다시 만나고 돌아보는 과정입니다.
잊고 있던 나, 상처 받은 나, 그리운 나, 그리고 현재의 나
나를 이해하고, 달래고, 앞으로 조금 더 단단하게 하는.
이 시간과 과정이 지난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고 그런데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 등을 겪고 힘들어 하고 있죠.
잊고 있지만 몸은 기억하는 사람과의 상처, 가족과의 상처 등에 아픔도 있을 거구요.
정도의 차이지만 이로 인해 병원을 다니시는 분도, 그냥 참고 사는 분도,
아직 깨닫지 못하는 분도 계실거구요.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시간
그리운 '나'와의 건강한 이별.
상처받은 '나', '이런' 나를 인정하고 화해하는 길은 끊임없이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오늘의 노래의 전반부는 조금 어두울 수 있는데
가사에 집중하면 좋을 거 같구요.
그래도 후반부에는 위로와 사랑으로 마무리 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01. 전진희 / 자신 없는데
그룹 하비누아주의 리더이자 피아니스트 전진희의 2번째 솔로 앨범 수록곡입니다.
2017년에 솔로앨범 [피아노와 목소리]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나인(디어클라우드), 곽진언, 이영훈, 지언 등 여러 보컬리스트와 함께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부른 곡은 많진 않았습니다.
2019년에 발표한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에서는 모든 곡을 본인이 불렀습니다.
보통의 곡은 보컬이 강조되는 반면 전진희씨의 앨범은 악기와 목소리의 지분이 반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 진실한 느낌이 강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앨범 발매 전 먼저 선공개 공연을 열었었는데요.
그때 공연 중에서 제가 제일 기억나는 가사는 이 곡 중 '행복할 자신 없는데'였습니다.
그냥 제 마음을 너무나 정확히 표현한 말이였습니다.
02. 푸른새벽 / 스무살
한희정씨는 2001년 박혜경의 뒤를 이어 그룹 '더더'의 보컬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프로젝트 밴드 '푸른새벽'으로 활동했습니다.
2008년에 솔로 앨범을 발표했구요.
푸른새벽의 곡은 전체적으로 어둡지만 마음을 깊게 파고 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익준 감독님이 방송에 출연하셔서 대본을 쓰실 때 주로 푸른새벽의 노래를 듣는다고 하셨기도 했네요.
이 곡에서는 '내가 숨어있던 좁은 방'이란 가사가 마음 속 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 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03. 쓰다선 / 남겨진 것들
을지로 까페 겸 공연장 '작은물'에서 열린
도마와 쓰다선이 함께한 기획공연 '펑펑펑 - 대신 울어드립니다'에 갔었는데요.
사연을 미리 접수해 거기에 맞춰 노래를 불러주는 컨셉이었습니다.
제 사연 뒤에 불러준 노래가 남겨진 것들(어떤 날)과 헷갈리는데요 ^^;;
(물론 이유는 두 노래가 다 좋아서 입니다. 두 곡 중에서 고민하다 이 곡을 선택했구요.)
싱어송라이터 쓰다(Xeuda)와 드럼에 양재혁, 비올리스트 하늘에선으로 구성된 팀입니다.
2019년 발표한 첫번째 미니앨범 '남겨진 것들' 타이틀 곡입니다.
고요한 밤 아니 그냥 그 밤
늘 같은 밤 아니 달도 나를 앞섰던 밤
04. 정승환 / 보통의 하루
이 곡은 첫번째 플레이리스트에서 선곡했었는데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 OST입니다.
박아셀씨가 작사, 작곡을 했구요, 앞서 소개한 전진희씨가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오늘도 아무일 없는 듯
보통의 하루가 지나가
이 가사가 정말 많은 걸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가 어떻게 보면, 감정과 나에 대한 직접 마주치는 내용이라면요
이제는 조금씩 화해와 위로로 가볼까 합니다.
05. 전진희 with 강아솔 / 우리의 슬픔이 마주칠 때
앞서 소개한 전진희씨의 앨범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 수록곡입니다.
전진희씨 절친인 강아솔씨와 함께 부른 곡입니다.
우리의 슬픔이 마주칠 때
그냥 웃어줄래
알고 있잖아
우리 우리, 짙은 마음의 무게를
06. 하비누아주 / 사랑
오늘은 전진희씨 특집인 마냥 계속 관련 노래를 고르는데요.
(뭐 개인적으로 제가 완전팬이기도 하고요.)
하비누아주가 올해 발표한 싱글입니다.
앞의 전진희씨 노래보다는 듣기에는 보컬이
가사는 남녀관계의 사랑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친구 또는 나 자신과의 이야기에도 적용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랑'이라는 가사가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랑. 그래도, 사랑.
이런 고백은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스윗소로우가 지난 주 발표한 싱글입니다. 아이유씨가 같이 했구요.
스윗소로우의 김영우씨가 작사/작곡했습니다.
스윗소로우가 직접 쓴 곡 소개 중
"깊고 작은 나의 방, 그래도 내 마지막 남은....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방. 그래도 여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겠지.
다시 걸어가야 하는 거겠지. 오늘 또 오늘, 내일 또 내일, 내 마지막 남은 깊고 작은 나의 방에서."
스윗소로우 목소리를 악기로 쌓아올리고
거기에 스윗소로우의 각 보컬과 아이유씨의 목소리가 가사와 잘 엮여서
악기 또한 빈틈을 채워 전체적으로 듣는 중 '위로'가 느껴지는 곡인 거 같습니다.
08. 아이유 / 무릎
이 곡은 많이 아시다시피 아이유가 할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곡이라고 합니다.
2015년 발표한 [CHAT-SHIRE] 수록곡이구요.
아이유님의 목소리 자체가 위로죠. ^^;;
나 지친 것 같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아
......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스르르르륵 스르르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스르르르륵 스르르
깊은 잠을...
마지막 곡은 빅베이비드라이버 최새봄님의 곡입니다.
2014년 발표한 2집 [A Story of a Boring Monkey and a Baby Girl] 수록곡입니다.
제목 자체에서 안도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가사나 곡분위기 또한 조금 가볍게 마음을 토닥이고 사알짝 올려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늘엔 둥근 구름 그 구름 속 작은 게으름
흘러흘러 떠가네 반겨 주는 이 찾아
강가엔 버들가지 내 품엔 저녁 저녁 어스름
.........
흘러흘러 꿈꾸네 반겨주는 이 따라
흘러흘러 춤추네 반겨주는 이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