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2024/문학동네
너무 화제가 되면 선뜻 다가가지지 않는다.
출간 당시부터 독서 애호가들의 SNS를 꽤나 오르내리던 책으로 기억한다. 화려한 수상경력으로 문학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은 작가 김기태의 작품들은 '2024 젊은작가상'(「보편 교양」)과 2번의 이상문학상 우수상(「세상 모든 바다」 「팍스 아토미카」)을 수상하고, 3번의 문학과지성사 ‘이 계절의 소설’(「전조등」 「롤링 선더 러브」 「보편 교양」), 2번의 ‘올해의 문제소설’(「전조등」 「롤링 선더 러브」)에 선정되었다. 그 작품들을 모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표제작으로 한 소설집이 출간되었다.(문학동네, 2024)
뜨거운 2024년을 보낸 이 소설의 무성한 말들이 가라앉은 이듬해에야 이 책에 손이 닿았다. (작품의 수상경력을 보며 화제가 된 이유를 수긍했고 책을 읽은 후에는 한 편 한 편의 작품이 귀하게 느껴졌다.)
아홉 개의 단편은 쉽게 읽혔고 마음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시대상을 너무 세밀하게 담아낸 나머지 사회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이 목격될 때면 불안과 무력감을 느꼈다. '세모바'의 팬,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솔로농장’ 참가자, 캄캄한 길 전조등에 의지해 앞만 보고 가는 '그' 등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SNS에서 스쳐본 듯한 통속적인 사람들로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상은 내 삶과 인간관계를 되짚어 보아도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현실의 삶과는 조금 떨어진 시대의 문학을 애정하며 이데아적이고 고상함을 지향하는 기성세대 독서 애호가였던가.
목 차
세상 모든 바다
롤링 선더 러브
전조등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보편 교양
로나, 우리의 별
태엽은 12와 1/2바퀴
무겁고 높은
팍스 아토미카
일본인으로 귀화한 재일한국인 4세 ‘하쿠’는 케이팝을 좋아해 한국의 대학원으로 유학 온 학생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정체성과 소속감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그는 인류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인터내셔널한 케이팝 그룹 ‘세상모든바다’의 팬이 되었다. ‘세모바’의 공연 날 공연장 밖에서 벌어진 시위 퍼포먼스로 인해 쏟아지는 인파가 뒤엉켜 많은 사상자가 발행했는데, 가장 어린 사망자였던 백영록과의 짧은 에피소드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하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이돌과 팬덤이 지향하는 바가 어떤 옮음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눈앞에 보이고 즉각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근시의 사랑이 오히려 그립다고 말한다.
p.29 이번에는 어디에 ‘좋아요’를 남기고 무엇을 리트윗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p.37 플래그는 서랍 속에 접힌 채로 있다.
지금은 펼치지 않고도 떠올릴 수 있는 그 세계지도에서, 세상의 모든 바다는 분명 이어져 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이 다소 무섭다. 바다를 등지고 아무리 멀리 가도, 반드시 세상 어떤 바다와 다시 마주치게 될 테니까. 그 불편한 예감에 시달릴 때마다 이상하게도 오래전 지하 소극장에서 본 오타쿠들이 떠오른다. 그 기모이한 오타쿠들의 열렬한 구호. 가치코이코죠. 진짜 사랑 고백.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역시 좋아 …… 그것도 사랑이라면, 나는 어쩐지 그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 <세상 모든 바다>
세계가 바다로 연결되어 있듯 전 지구적 사람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음을 문화의 유행 속도로 실감하는 요즘 오히려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문화인과 그의 팬덤이 정치적 올바름에 목소리 내고 그 영향력이 상당한 팬덤문화를 조명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오히려 나의 생각과 지향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p. 70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람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p.74 속을 보이면 어째서 가난함과 평안함이 함께 올까.
p.76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롤링 선더 러브>
삼십 대 평범한 싱글 라이프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 ‘조맹희’는 용기 내어 ‘솔로농장’ 출연 신청을 했다. 〈나는 솔로〉 예능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출연자들의 짝찾기 과정과 시청자의 반응을 실감 나게 재현했는데 출연자가 캐릭터화되는 것과 그 단편적인 모습을 시청한 사람들의 실시간 댓글과 저속한 평가는 리얼리즘 그 자체였다. 그중 폄하하기 쉬운 캐릭터 ‘완두’ 맹희는 사랑에 대해 진지했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대중에 소개되거나 소비된 사람은 쉽게 평가되고 찬사를 받기도 하며 무참히 비난을 쏟아내는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용기 내고 나아가는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외환위기의 여파, 경제적 어려움이 일으킨 가정불화가 원인이 되어 치솟은 이혼율. 이혼한 엄마와 여전히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살고 있는 진주.
러시아에 살고 있던 고려인 3세 부부는 백인우월주의자의 폭력과 위협을 경험하였고, 뱃속 아이의 안전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 니콜라이.
두 사람은 서울 동북부의 한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에 배정받았다. 행정실에서 발송된 ‘흰 봉투’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달받으며 서로를 알게 된 둘은 경제적으로 여전히 고단하지만 각자의 성실한 삶을 살아가다 경기도 동남부의 한 도시 주민센터에서 다시 만났다.
p.119 실습이 끝나고 니콜라이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으로 시작하는 규칙을 읽으며 ‘통상임금’과 ‘기본급’ ‘고정적 수당’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할 때, 진주는 모니터에 얼굴을 붙이고 국가장학금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소득 평가액에 재산의 소득 환산액을 더한 뒤…… 기준중위소득 대비 비율에 따라……’ 두 사람의 스무 살은 낯선 단어들을 마주하면서 시작되었다.
p.133 예쁘고 멋있고 촉감 좋은 물건들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자아실현 같은 건 모르겠지만 견딜 만한 일을 하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삶. 가끔은 나란히 누워서 햇볕을 쬘 사람이 있는 삶. 이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어두운 골목을 걸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불안해졌다. (중략)
그 사이로 점점 자주 니콜라이의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금발을 양 갈래로 딴 소녀가 꼿꼿하게 서서 앙칼진 표정으로 그 문장을 외치고 있었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후 그들은 이삼 주에 한 번씩 만나서 1인분으로 주문하기 어려운 온전한 식사를 함께하며 각자의 불안정한 세계에서 짧은 평안과 위안을 나누는 우정을 쌓아갔다.
각자의 삶은 몇 번의 이사와 이직으로 이어졌고 경기도 서남부의 한 도시에서 함께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잠정 친한 사이’로 결론 내린 두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것 같았다.
고용불안, 고용형태에 따른 소득 불평등, 주거불안은 외환 위기 이후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한 원인이자 결과물이다. 사회복지제도가 확대되었지만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계층의 격차가 벌어지는 만큼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벌어지는 폭을 감당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한국인의 평균 연봉 삼천팔백 정도에는 앞으로도 가닿기 어려울 거 같다고 느끼는 평균 연봉 이하의 무수히 많은 평범한 근로자들이 삶을 살아간다.
이들의 삶에 소소한 행복이 있기를, 기울어진 사회는 좀 더 평탄해지기를 바랐다.
김기태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현실은 시리고 매섭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글에 배어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청년을 삶을 공감할 수 있었고 편협한 시야를 넓히겠노라 다짐했다. 이어서 읽게 된 책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