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는 그리움과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소설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서평

by HEMIE


작별하지 않는다.png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2021년/문학동네






"왜 이런데다 무덤을 쓴거야?"


수천 그루의 검은 나무들 그 뒤의 봉분들 사이를 거닐면 어느샌가 바닷물이 차오르며 밀물에 쓸려내리는 무덤을 바라보고 서있는 화자, 경하의 반복되는 꿈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경하는 2014년 한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발간한 이후, 역사적 트라우마를 온몸으로 겪어낸 듯 수시로 찾아오는 위경련과 편두통의 고통에 시달리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가족과 직장도 잃어버렸다. 결국 수신인 없는 유서 쓰기를 반복하며 자살로써 이 고통의 삶을 마감하려는 듯 가는 실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친구 인선에게서 지금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봉합수술 전문병원이었다. 목공방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해 봉합수술을 받고, 3분마다 수술 부위를 바늘로 찔러 피를 내야 하는 상태를 목도하며 지금 당장 제주에 있는 인선의 집에 가 죽어가는 ‘새’를 보살펴 달라는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받았다. 서울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제주도에 도착한 때에는 눈 폭풍으로 변해 있었다. 차가 끊기기 전에 어둠이 내리기 전에 중산간 마을에 버스정류장에서도 걸어서 30분 거리의 숲속에 있는 친구 집에 당도해야 한다.


두 친구가 경험하는 신체적 고통을 독자가 실감한 후에야 비로소 1948년부터 시작된 4.3의 참혹함을 마주 보게 한다. 가늠 안되는 슬픔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보라는 듯 말이다.


미군정하의 혼란한 시기 극단의 대립에서 ‘무엇을 위한 진영 대립인가’를 망각한 채 무장봉기단 진압을 명분으로 무차별하게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절멸이 목적이었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상실한 폭력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존자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는지, 봉인이 해제되기까지 몇십 년을 또 침묵해야 했는지 생사의 기로에 있는 혹은 영혼인지도 모를 화자를 통해 전달한다.


수십 년 전 생시에 보았고 얼마 전 꿈에서 보았던,

녹지 않는 그 눈송이들의 인과관계가

당신의 인생을 꿰뚫는

가장 무서운 논리이기라도 한 것처럼.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p134


물뿐 아니라 바람과 해류도 순환하지 않나.

...(중략)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 p136

작별하지 않는다 中



‘녹지 않는 눈송이’가 인선 어머니 정심의 삶을 관통하듯 소설 전체를 ‘눈’이 관통하고 있다. 시신 위의 녹지 않는 눈을 모티브로 순환하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우리에게 이어져 온다는 것, 사무치는 그리움과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output%EF%BC%BF4202642031.jpg?type=w966 제주 4.3 평화공원 (2011)



그 말을 뱉은 순간 견딜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왔다. 지퍼백에서 건과일 한 주먹을 꺼내 입에 넣고 씹자 놀랄 만큼 달콤한 맛이 번졌다. 정전이 아니라면 전기레인지를 켜고 따뜻한 걸 만들어 먹을텐데, 나는 생각했다. 쌀죽을 끓일 텐데. 대접 속 물에 잠긴 두부를 꺼내 노릇하게 부칠 텐데. p183


잔에서 입술을 뗀 인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뱃속에도 이 차가 퍼지고 있을까. 인선이 혼으로 찾아왔다면 나는 살아 있고, 인선이 살아 있다면 내가 혼으로 찾아온 것일 텐데. 이 뜨거움이 동시에 우리 몸속에 번질 수 있나. p194

작별하지 않는다 中



혼으로 찾아온 아마의 허기를 달래주고 쓰다듬어 주면서 자신도 식욕을 느끼는 모습은 다시 희망이 찾아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위로하고 억울함을 알아줄 때 산 자도 슬픔을 딛고 살아갈 수 있다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혼이 들어선 안 되는 말, 정말로 혼들이 들어줄지 모를 소원…… (중략)

그 소원이 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싸우는 것.

내가 날마다 썼다 찢는 것. 화살촉처럼 오목가슴에 박혀있는 것. p206

작별하지 않는다 中



경하와 인선의 오목가슴에 박혀 이들을 옥죄어 오는 것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희생자들의 유골이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것 심해의 연니로 가라앉아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조차 빨갱이로 처형되던 서슬퍼런 독재정권이 지나고 권위주의 정부가 지나고 나서야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들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부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젖먹이 아기도?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

무엇을 절멸해?

빨갱이들을. p220


꿈이란 무서운 거야.

소리를 낮춰 나는 말한다.

아니, 수치스러운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 p237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p311

작별하지 않는다 中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증언문학으로 분류된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의 생존자 증언과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역사적 사건을 재현한다. 증언문학은 희생자의 명예 회복, 생존자와 가족의 상처 치유에 기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액자구성으로 주인공 ‘경하’는 소설가로 ‘인선’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위와 관련된 일을 하며 진실을 찾아가기 위해 자료집을 찾고, 인터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이 진실을 찾아 가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독자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사건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읽는 과정이 고통스러워 외면하고 싶다는 감상에 젖은 내 볼멘소리가 부끄러웠다.


심장 주변이 뻣뻣해지는 걸 느낀다. 잔인한 역사의 비극은 이후에도 수차례 반복되었다. 국가폭력은 인정되었지만 진영논리를 내세운 극단의 대립은 최근 몇 년간 더욱 심각해지고 왜곡됐다. 가해자들이 살아서 2차 가해가 이어진다. 비극적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그날까지 지극히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이며 증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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