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피곤합니다. 어제 그리 늦게 자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은 이전보다 더 일찍 앉아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해야 할 공부 분량을 끝낸 것은 아닙니다. 오랜만에 쓰고 싶어서 맥북을 열었습니다. 무슨 말이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냥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무슨 말을 쓰고 싶었던 걸까요. 이 글을 쓰면서 천천히 알아보겠습니다.
상반기가 끝났습니다. 상반기에 이룬 것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말할 수 있는 것을 찾을 때까지 한참을 생각할 것입니다. 떠오르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반기에 이룬 것은 ‘불안감 확장하기’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속상합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사람은 무엇을 이뤄야 하겠느냐고 질문합니다. 답은 잘하지 못합니다. 그건 질문이 아니라 회피니까요.
사람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태어났을까요. 아니면 어떤 것을 위해 태어났을까요. 사람은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요. 정답을 모르지만, 문제 풀이는 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찾은 문제 풀이 방식은 ‘행복해지기’입니다. 저는 행복이 제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되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라고 적은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알지 모르니 거짓말하기 싫어서입니다. 행복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하고 싶나요. 행복은 어떤 것일까요. ‘행복은 자려고 누웠을 때 아무 걱정 없는 것’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출처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말이 행복의 정의라면 저는 행복해 본 적이 없습니다. 거의 모든 날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민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입니다. 현재를 또 미래를 고민하고 불안해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불치병 중 하나입니다. 낫고 싶습니다. 걱정을 그만하고 싶고 불안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불안이 여러분 마음을 헤엄칠 때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보통 글쓰기를 하거나 달리기를 합니다. 엊그제는 대낮에 달리기를 했습니다. 땀이 사우나에서 나온 것처럼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불안이 뚝뚝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불안이 줄어들었고 안정되고 상쾌한 기분이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오늘은 달리고 싶지만, 요통으로 걷기조차 힘든 상황입니다. 오전에 병원에 다녀왔는데 디스크 사이가 좁아 통증이 오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진료를 기다리면서 통증보다 먼저 제가 먼저 생각한 것은 진료비였습니다.
오늘은 허리가 아파서 달리지 못했고 가슴이 답답해서 맥북을 폈습니다. 요즘 가슴이 자주 답답합니다. 명치 끝에 탁구공이 있는 기분입니다. 탁구공이 핑퐁 핑퐁하면서 마음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옵니다. 저는 딱딱한 탁구대가 되어 둔탁한 소리만 냅니다.
밤에 잠들기 전에 기출문제집이 아닌 책을 몇 장 넘깁니다. 요즘 읽는 책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입니다. 잡지사에서 일하던 저자가 형의 죽음을 계기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추억이 있던 장소에 일하는 내용입니다. 경비원 시선으로 관람객, 동료 경비원 등을 바라보며 생각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저도 이런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찰관이 되어서 마주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제 시선으로 쓰고 싶습니다. 그 책 역시 솔직하게 쓸 자신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턱이 제 마음을 울퉁불퉁하게 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방지턱을 마주한 승용차가 된 기분입니다. 엔진을 밟고 싶어도 브레이크를 누르게 됩니다. 신께서 속도 조절을 하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는데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해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정말 너무 많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해도 세지 못합니다. 하나만 골라서 말씀드려보자면 지금, 이 순간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라이즈> 가 떠오릅니다. 거기서 나오는 대사를 사랑하거든요. 10년이 지난 영화이니 약간의 내용을 꺼내도 되겠죠? 내용을 알고 싶지 않은 분께서는 마지막 문단으로 내려가서도 좋습니다.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영화 후반부, 배트맨은 가지고 있던 배트맨 비행기에 폭파 시간이 예정되어 흐르고 있는 핵폭탄을 넣고 자동운항 장치를 켭니다. 먼바다에서 핵폭탄을 터트려 아무 시민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운송기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동운항 장치가 고장 났거든요. 배트맨은 운전석에 직접 앉아 출발을 준비합니다. 많은 시민의 목숨 대신 자신의 한목숨을 택합니다. 출발 직전 고든 경찰청장이 다가와서 배트맨에게 한마디 합니다.
“여태 당신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구해준 영웅의 이름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배트맨은 말합니다.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어요, 부모를 잃은 소년 어깨에 외투를 둘러주며 세상이 끝난 게 아니라고 사소한 말을 하는 사람도 영웅인 것처럼”
그때 고든 청장은 배트맨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외투를 벗어 둘러준 소년이 자라서 배트맨이 된 것을요.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사소함이 다른 이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고 믿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의 시험이 끝났는지 스터디카페가 조용합니다. 남아있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시험 기간에 보통 새벽 1시까지는 학생들이 가득 앉아 있거든요. 시험이 끝난 학생들을 상상하며 자유를 떠올렸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지금보다 자유로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웠다고 생각하지 못했죠. 그 시절 역시 친구들과의 관계, 미래 불안. 그 시절에는 그 시절 고민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주 작은 고민들이었는데 그때는 당시 문제들 때문에 가끔 앓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은 명치에 탁구공이 있고 가끔 숨을 쉴 수 없는 불안을 헤엄치지만 지나고 나면 이 것들이 작은 파도였다는 것을 탁구공이 아니라 쉽게 날아가는 작은 풍선이었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무조건 당도할 것이라는 걸요. 그래서 조그만 힘든 척하고 적당히 흔들리겠습니다. 흔들리는 힘으로 바람을 일으켜 추진력을 만들어 날아가 볼게요. 제가 원하는 곳으로요.
저의 솔직한 마음 잘 읽고 계신가요? 매주 편지를 솔직한 마음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 마음이 조금 부담스러울지 가끔 걱정되기도 합니다. 따뜻하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섯 통 보내기로 했었는데 이번이 마지막 편지인데요. 매주 보내는 마음이 후련하고 좋네요. 그리고 저에게 보내주는 답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메일함에 오는 답신들을 별표로 치고 용기와 힘이 필요할 때 꺼내 읽습니다. 제 편지가, 제 글이 여러분에게 용기와 힘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주 금요일에 계속 편지를 쓰겠습니다. 언제까지 쓰게 될 지 제 미래처럼 알 수 없지만 계속 써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아군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성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