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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달리기 Jul 18. 2022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줘

비 온 뒤 무지개를 닮은 키키에게

안녕하세요, 키키.     


한 주 간 무탈하셨나요. 한여름의 날씨는 여전히 변덕스럽네요. 오늘 아침 하늘은 푸르죽죽한 잿빛이더니 무지막지한 소나기가 휩쓸고 간 저녁 하늘은 산뜻한 파랑입니다. 마치 ‘키키 같은’ 날씨네요.   

  

지난 편지에서 키키는 이중적이고 변덕스러운, 자신의 모순되고 모난 부분까지도 고백할 수 있는 솔직함이 자유라고 했죠.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당신의 기준에서 저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좀, 잘나 보이고 싶거든요. 미운 건 다 감추고 예쁜 면모만 보여주고 싶어요. ‘자유로워지자고 해놓고 이 자식이’라고 대꾸해도 어쩔 수 없는 본심입니다.     


자유로워지지 못했던 최근의 일화를 들려드릴게요. 저번 주의 일인데요. 잘못 결제한 물건을 환불해야 했는데, 담당 데스크 직원이 무례하더라고요. 그는 너 같은 손님은 따분하고 성가시다는 얼굴로 눈도 안 맞추더니 저를 헛걸음하게 만든 후에야 환불을 진행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은 그 직원 분 앞에서 제가 주눅 들어있었다는 거예요. 심지어 그 직원 분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저는 환불 규정을 어긴 것도 아닌데요!)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 침울하더군요. 상대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름과 계좌 정보밖에 모르는 생초면의 타인인데도 저는 그에게 미움받기를 무서워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은 신경도 안 쓸 일에 나는 왜 피해망상까지 해가며 꼴사납게 굴고 있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마음의 껍질을 차곡차곡 까 보았어요.      


미움받기 싫은 마음의 한 겹 아래에는 사랑받고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그 욕구를 한 겹 더 까 보면 나는 사랑받고 있지 않고 인정받고 있지 않다는 착각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착각이죠. 저에게는 저를 있는 그대로 애정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데스크 직원이 저를 미워하고 있다는 생각 역시 망상에 가까우니까요.      


그렇다면 이 착각의 아래에는 뭐가 있을까. 한 겹을 더 까 보니, 나는 그다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불쌍하게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묻는다면 여기서부터 좀 복잡해져요. 저의 ‘아수라 모드’가 발동하거든요.


저는 저를 쓸모없다고 생각해요. 이 ‘쓸모’는 지극히 생산 중심의 사고죠. 소위 말해 ‘고부가가치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요.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다짐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고민하고 글을 잘 쓰고 싶어 울면서도 글 따위가, 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사람을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구조를 비판하면서 능력 없는 자신이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저도 아수라 백작으로 손색이 없죠.     


당신은 저번 편지를 맺으며 ‘우리는 어느 정도의 취약함까지 보듬어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죠. 나의 모순을 고백하는 일이 어떻게 ‘취약성의 인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사실 이해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저의 모순을 파고들어 가니 알겠더라고요. 나는 단순히 변덕스러운 내가 아니라, 돈 없고 능력 없고 체력 없고 때로 이유 없이 우울하게 늘어져있는, 볼품없이 취약한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요. 그건 아주,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죠. 평생을 분투해야 하는 일인지도요.     


우리는 어느 정도의 취약함까지 보듬어줄 수 있을까. 이 물음이 저는 이렇게 들렸어요. ‘나는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까.’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서 편지를 미루고 미루었는데요. 답장을 쓸 용기는 생뚱맞게도 한 보살님에게서 얻었습니다.     


속세를 못 견뎌 절에 들어간 것은 아니고요. 지난 토요일, 3년 만의 퀴어 축제가 열렸던 서울 시청 광장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광장의 부스를 구경하다가 한 보살님이 조그마한 종을 앞에 두고 서계신 것을 보았는데요. 가까이 다가가니 그는 귀여운 봉 하나를 저에게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종을 칠 건데요. 치기 전에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을 위해서 종을 치겠다고요. 여기 모인 사람들과 여기 없는 사람들, 심지어 저 바깥에서 혐오를 외치는 사람들까지 다 포함한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눈을 꾹 감고 종을 치는 거예요. 자, 해보세요.     


그의 말대로 눈을 감고 종을 치자, 딩- 하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는 다시 이렇게 말했어요.

    

잘했어요. 이 종을 치는 순간은 아주 짧아요. 몇 초 되지 않는 이 순간을 꼭 기억하세요. 마음이 힘들고 사는 게 힘들 때 ‘아 그때 그 아저씨가 그런 얘기를 했지’하고 종을 쳤던 이 몇 초를, 이 마음을 기억하세요. 할 수 있겠죠?



광장의 열기가 사라진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말을 다시 생각했어요. 그리고 모든 중생, 이라는 단어 위로 제 얼굴을 덧붙여봤습니다. 코가 쑥 빠진 우울한 얼굴로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 돈 없고 능력 없고 겁 많고 취약한 나를 ‘모든 중생’의 사이로 살포시 넣어두고 마음속으로 종을 딩- 울려보았어요. 그러고 나니 이 편지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취약함까지 보듬어줄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취약함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최대한’입니다. 최대한 해봐요. 폭우가 쏟아지는 무대에 올라가 막춤을 추는 심정으로 우리 솔직해져 봐요. 취약해져 봐요. 처음에는 춥고 부끄럽고 불편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곧 홀가분해질 거예요. 그러다 비가 조금씩 잦아들고 무지개가 뜨면, 그때부터는 사랑의 본격적 턴(turn)입니다. 취약함의 무대 위에선 결국 사랑이 메인 댄서니까요. 너무 겁먹지 말자고, 딩- 종을 울리듯 생각해봅니다.     


오늘 편지의 제목은 퀴어 퍼레이드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노래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에서 가져와보았어요. 몇 번을 실패하게 되더라도 우리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봅시다. 우리 자신을, 서로를.    

 

2022.07.18. 사하 보냄.     


P.S. 제가 가을에 태어난 것을 아시고 붙여준 별명일까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여름에 태어난 키키는 비 온 뒤 무지개 어떠세요. 한철의 폭풍을 모두 견뎌낸 강인하고 명랑한 무지개를 당신은 퍽 닮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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