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서 배운 것들, 나를 다시 세운 순간들

by 리라이프

이전 포스팅 〈트라우마로 남은 ‘똥차’ 이야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오랫동안 한 사람 때문에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살아야 했다. 그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비슷한 얼굴을 스쳐 보기만 해도 온몸이 굳을 만큼. 악몽처럼 되살아오는 기억들은 나에게 분명한 ‘트라우마’였다.


하지만 그런 상처에서 빠져나오게 한 건 대단한 심리학 책이나 전문가의 조언이 아니었다. 사실은 너무 힘들어서 선택했던, 작고 조용한 나만의 일상들이었다. 그 선택들이 시간이 지나 내 내면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결국 나를 더 단단한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noah-silliman-gzhyKEo_cbU-unsplash.jpg



그 사람의 ‘바람’ 사실을 알기 전부터, 나는 어느 순간 ‘혼자만의 시간’에 유독 끌렸다.

평일에는 일하고 공부하며 버티고, 주말이면 카페나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었다. 책 속 좋은 문장들을 필사하고, 그날 느낀 감정들을 조심스레 다이어리에 옮겨 적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저널링을 시작했다.
매년 12월이면 스타벅스에서 다이어리가 나오는데, 어느새 내 책장에는 그 다섯 해 동안의 나를 담은 다이어리가 차곡차곡 쌓였다.
우울하거나 슬픔이나 부정적인 마음들이 밀려올 때면 나는 늘 같은 방법을 택했다.


조용한 공간에서, 오직 나와만 시간을 보내는 것.
멍하니 생각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감정들을 글로 쏟아내기도 했다.


어느 날, 카페에서 평소처럼 일기를 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일기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어떨까?’

나는 약 10년 가까이 기록해 온 일기장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카페 한복판에서,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깨달았다.
이 모든 상처의 원인은 사실 누구에게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만약 누군가를 탓해야 한다면, 결국 그건 ‘나’였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았고,
나를 위한 선택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고,
어떤 관계를 끝내야 할 때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들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나를 위한 연애를 하자.”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느라 내 마음을 소모하지 않고,
상대가 흔들면 함께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 중심을 스스로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사실 나는 그동안 ‘확신이 없는 나’로 살았다.
그러니 조금만 감정이 흔들려도, 조금만 말이 세게 들어와도
쉽게 휘둘리고, 쉽게 무너지고, 쉽게 상처받았다.


그 모든 반복을 끊기 위해서는
나부터 단단해져야 했던 것이다.


이별은 참 잔인했고, 긴 그림자를 남겼지만
결국 그 어둠을 지나오게 해 준 건 ‘타인’이 아니라 ‘나’였다.


카페 한 구석에서 나의 과거와 마주한 그날,
나는 비로소 내가 걸어온 길들을 인정했고,
그 길 위에서 다시 일어설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상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상처를 품은 채로도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다시 나를 세울 수 있다.


이젠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는 방식으로
다시 나를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