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의 창작하는 자신감을 위한 워크숍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은 도서관 속 어린이 작업실 '모야 MOYA'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떤 팀들이 모여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도와 시도를 담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어린이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궁금하신 분,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의 변화를 상상하는 분들께 구체적인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Chapter 1. 모야가 시작된 모양부터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릴리쿰 물고기입니다.
오늘은 날이 추우니, 따뜻했던 시기의 기억을 소환해 볼까요.
작년 여름 7월 초입니다. COVID-19의 상승세가 한풀 꺾이고, 다시 고개를 들기 전 전국 각지의 오른손이 하루씩, 총 사흘에 걸쳐 릴리쿰 스테이지에 모였습니다.
‘오른손의 창작하는 자신감’을 위한 워크숍이었어요.
모야를 조성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일 년 반. 어느 도서관은 운영한 지 1년을 채워가고, 어느 도서관은 오픈을 앞두고 있는 시기. 오른손을 대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공통으로 꼽은 게 특정 분야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싶다는 거였죠. 특히 전자 부분에 있어 그 필요가 두드러졌습니다.
많은 오른손이 전자에 관련된 재료와 도구를 낯설어했습니다. 모야의 공간 조성이 끝나면 저나 상호가 출동해 재료와 도구 이용법을 설명하고 놀이작가분이 함께 ’물건 최후의 날’ 베타 워크숍을 진행하며 시범을 보이긴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관련 지식을 온전히 이해하고 활용하기는 어려운 게 당연했죠.
다른 필요는 오른손들끼리의 네트워크였습니다. 그간은 모야의 운영에 관한 정보는 우리가 씨씨쿰이라 불렀던 씨앗재단과 씨프로그램, 릴리쿰. 그리고 작은 도서관 협회에서 도서관, 오른손으로 전달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왔는데, 실제로 모야를 운영하며 다양한 어려움에 부딪혀 온 오른손들은 다른 오른손들은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고 싶어 하고, 또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어요.
그런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선 함께 만나는 자리, 그리고 좀더 여유 있게 전자에 대해 체험해보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것으로는 충족되지 않을 거라 판단해 어렵게 실제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하루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뉘었습니다.
1. 릴리쿰이 제작한 ‘회로의 침공술’ 게임을 통해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며, 전기 관련 기초 지식을 배우는 시간
2. 사물해킹으로 전기파리채를 해체하고, 회로를 들여다보는 전자회로 실습 시간
3. 해킹한 부품과 미리 준비한 만들기 재료를 가지고 무엇이든 만들어보는, 도전! 작은손
회로의 침공술은 전자 회로라는 기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날 수 있도록 릴리쿰이 설계한 키트이자 이를 활용한 아날로그/디지털 게임입니다. 만든 전도성 테이프를 다양한 형태로 결합한 블록과 LED, 배터리, 피에조, 진동모터와 같은 전자 소자가 연결된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블록을 쌓고, 잇는 것만으로 회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전류의 흐름, 전압과 전자소자의 상관관계, 회로 연결을 간편하게 설명하기에 좋은 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임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초면인 오른손들 사이의 어색함을 깨기에도 좋았고요. 결과는, 대성공(이라고 봐도 괜찮겠죠)
오른손들은 전자 블록을 높이 쌓고, 길게 이으면서 자연스럽게 전자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회로의 침공술이 인상적이었던 한 오른손은 블록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물어보고, 메모해 가셨는데요, 그 결과 페이스북 페이지에 작은손들이 직접 블록을 만들어 회로의 침공술을 즐기는 사진을 종종 보게 됩니다.
시간을 마칠 때쯤, 릴리쿰 내 전자회로를 연구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분과인 ‘전자요리연구소’에서 전기 및 전자회로 소자에 대해 쉽게 풀어쓴 ‘전자요리 Cookbook‘의 자가출판본을 보여 드렸는데, 원하시는 오른손이 많아 온라인으로 정리해 발행하였습니다.
‘복습용‘이랄까요 :)
안 쓰는 물건을 분해해보는 것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베타 워크숍을 진행하다보면 작은손에게 차례를 양보하면서도,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든 오른손을 종종 만나곤 했기 때문이죠. 오른손에게도 작은손처럼 마음껏 물건을 뜯어보고 그 안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기계를 뜯어보는 것도 재밌었겠지만, 워크숍이니만큼 진행의 효율을 고려해 값이 비싸지 않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고, 내부에 전자회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을 선정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정한 건 전기 파리채였습니다.
전기 파리채는 재미있는 물건입니다. 플라스틱 가이드로 서로 닿지 않게 되어 있는 3겹의 철망 중 가운데의 촘촘한 철망에는 (+)가, 좀 더 성긴 바깥쪽 철망 두 개에는 (-)가 연결되어 있어 곤충이 그 둘을 잇는 순간 전기가 흐르며 곤충을 감전시키는 원리죠. 뜯어보면 회로는 매우 간단하지만, 보호장치를 위해 2개의 스위치가 있고, 3V의 전기를 좀 더 높은 전압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캐퍼시터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용 상태를 알려주는 LED도 따로 떼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길게 연결되어 있고요. 회로의 침공술을 통해 익힌 전기의 원리를 복습하기에도 좋고, 다른 부품을 연결하거나 작게 만드는 것만으로 그 쓰임을 변형하기 좋아 워크숍의 목적에 정확히 부합했습니다.
2017년에 이미 여학생들과 함께 전기 파리채를 전기충격기로 바꾸는 공작소녀 워크숍을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돌발상황을 미리 경험해보았다는 것도 장점이었죠.
그 덕분일까요,
잔류전기로 인한 감전이나 날카로운 철망에 손을 베이는 부상은 (공작소녀 때만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은 제작입니다. 베타 워크숍에 참여하는 작은손과 같은 조건을 두었어요. 분해한 물건을 사용해도 되고, 준비된 다양한 재료를 써도 되니,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만들 것.
사실 첫날엔 팀을 짜서 팀 작업을 하셔도 된다고 안내했고, 바로 영감을 떠올리기 어려워하는 분도 계실 것 같아 만들기에 도움이 될만한 키워드도 제시했었는데, 막상 진행해보니 모두 자신이 하고픈 것에 집중하느라 팀 작업엔 관심이 없고, 역시 키워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만들고 싶은 걸 만드시더라고요. (작은 손처럼요) 그래서 둘째 날부터는 이런 요소를 제외하고, 자유롭게 작업하시도록 하였습니다.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루 동안의 워크숍을 마친 뒤 나왔던 오른손의 목소리를, 사흘 간 함께 해주셨던 '어린이와 작은도서관 협회'의 예서님이 정리해 공유해주셨습니다.
#전기 잘알로 재탄생
이번 살롱을 통해 다양한 ‘모야’ 오른손 분들을 만나서 많은 조언도 얻고 좋은 기운도 얻어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전기 회로에 대해 거의 몰랐는데 친절히 설명해주셔서 이해가 쉽게 되어 아이들에게 설명해줄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도성 테이프를 붙여서 만든 나무토막(젠가)으로 간단하고 재미있게 전류의 흐름을 설명하며 아이들과 놀 수 있을 것 같고, 전기 파리채 해킹도 충분히 아이들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익했어요. 단, 나의 기억력이 문제...
쉬운 설명으로 전자, 전류 등을 설명해 주셔서 작은손에게 좀 더 쉽게 전자도구의 활용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전기 울렁증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은손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시간
직접 모야에 참여해 보니 작은손들 활동을 이해하고 창작의 어려움을 느꼈으며 모야를 운영하는 오른손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 연대 의식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막상 작은 손이 되어보니 시간도 빨리 가고 만들기의 어려움도 알게 되었습니다. 재료를 통한 경험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할 듯 해요.
오른손의 어려움만 호소했는데 작은손의 마음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일일작은손이 되어보니 작은손들이 주로 쓰던 말과 행동들에 대해 이해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 & 활용법 습득
상호 님과 물고기 님의 결코 어렵지 않은 설명을 보며 저도 어떤 식으로 이과적 지식을 친구들에게 전달해야 하는지, 관련 영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젠가에 구리테이프 연결한 것... 너어어어무 아이디어가 좋았어요. 당장 실천하고싶습니닷!
릴리쿰 작업장과 스토리지, 재료바 등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물론 워크숍두요~
#모든 것이 좋았다
오랜만에 대면이라 좋았는데… 전기를 배우고 모르는 부분 따로 더 질문해서 좋았고, 실전으로 응용해서 파리채분해 하고 바로 창작활동으로 이어져 짜임이 좋았어요. 중간에 다른 걸 더 배워도 좋았겠지만 잊어버리기 전 바로 실전으로 다시 습득하는 진행 전 오늘 너무 알찬 시간이었어요
모든 것이 완벽~~~ 했어요! 진행방식, 다과 준비..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까지!!! 다음엔 산속이나 바닷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1박 2일? 로 자연물을 활용한 워크숍이 어떨까요??? >.<
물론 좋았던 부분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쉬운 부분으로는 주로 프로그램 진행을 따르다 보니 기대만큼 오른손 간에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꼽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타 모야와 상황공유 시간 있었으면 싶었어요. 단톡방도 구글 시트도 있지만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좋으니까요. 다른 모야 상황도 듣고 싶었거든요. 만나기 힘든 각지의 오른손님들인데.. (각 작업실에 대해) 수다를 많이 못 떤 것 같아 아쉬워요^^ 소소한 각 작업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모야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해 아쉬워요. 다른 모야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 이 부분을 충족한 방법에 대한 고려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모야의 오른손들과 대면으로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야의 기본 취지나 운영방식이 있고 그에 따라 운영되고 있겠지만 각 모야의 오른손들의 운영, 재료의 보충, 사용방법 등 조금씩 다를 거라 생각이 듭니다.
이상이 반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는 ‘오른손의 창작하는 자신감을 위한 워크숍’입니다.
이날의 워크숍은 마치 게임이나 모험소설에서 모험을 떠난 이들이 어느 날 밤, 우연히 한 주점에서 만나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쉼표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비록 COVID-19 때문에 다들 얼굴을 가려야 했고, 식사조차 멀리 떨어져서 각자 해야 했지만 이요.
올해, 혹은 내년에 다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때는 마스크 없이 함께 식사하며 운영 시 어려웠던 점과 내가 만난 작은손 이야기를 (조금 비위생적이더라도) 침 튀기며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규모로 나누지 않고, 한날한시에 전국의 오른손이 다들 모여서 와글와글하게요. 한 오른손이 제안해주셨던 것처럼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가 며칠씩 함께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공통점이 있으니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나는 여행이 되겠네요.
모험엔 동료가 많을수록 좋잖아요.
글 _ 물고기(릴리쿰)
'어린이작업실 모야'는 릴리쿰, 씨앗재단, 씨프로그램이 함께 만든 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로 집이나 일상에서 떠오르는 영감과 호기심을 손으로 표현해보는 '작업'을 위한 공간입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가 도서관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일상에서 창작하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제3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모야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릴리쿰, 씨프로그램, 도서문화재단 씨앗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