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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eun Min Feb 03. 2022

Chapter15.
천만에요, 백 가지가 있어요 ②

전국 모야의 9가지 작업자 유형을 소개합니다

어린이는
백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어린이는 가지고 있죠.
백 가지의 언어
백 가지의 손
백 가지의 생각
백 가지의 생각하는 방법
놀이하는 방법, 말하는 방법을.


- 로리스 말라구찌, <천만에요, 백가지가 있어요> 중에서




무언가를 창조해내려 골몰하는 작업의 과정에는 9가지 모습만이 있을 수 없지만, 우선 전국 모야의 운영자 분들이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신 어린이들의 작업 풍경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었던 9가지 작업 고수들의 모습을 지난 글에 이어 소개합니다. 

'천만에요, 백 가지가 있어요 ① 전국 모야의 9가지 작업자 유형을 소개합니다' 읽으러 가기 


6번째 유형 : 스토리텔러  


이어서 소개해드릴 작업 고수의 모습은 '스토리텔러'로서의 작업자입니다. 이들은 멋진 이야기를 꾸며내고, 또 그것을 다양한 재료와 도구, 장치를 활용해 감각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유능함을 보여줍니다. 먼저 수원 바른샘어린이도서관에서는 작은 이야기와 장면을 상상해 스톱모션을 스스로 만든 작은손 '솔하'가 있답니다. 이 작은손은 스톱모션을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하였고, 모야에서 스톱모션 만드는 어플을 다운받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자 제작 방법을 숙지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스톱모션은 장면마다 사진을 찍어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번 작업은 스스로 114장의 사진을 찍고 연결해 만들었습니다. 내용은 당시 바른샘도서관의 '이 달의 꼼지락재료'였던 지점토를 활용하여, 모야손이 등장해 밀가루를 붓고 떡방아를 찧는다는 내용인데요, 이야기를 멋지게 전달할 무대를 디자인하고 캐릭터까지 만든 섬세함이 놀랍습니다. 이어서 만든 작업은 모야손이 '추석'을 맞이한 장면입니다. 밤에 뜨는 달이니까 뒤에 라이트를 비추어 달빛이 빛나는 모습을 더 실감나게 한 표현력이 돋보이네요. 


바른샘도서관의 다른 어린이, 진성이는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줍니다. 아래 작품은 '눈알나무'라는 제목인데요, 초록풍선에 눈알들을 여러개 붙여 주었는데 그 이유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나무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아래는 진성이의 이야기입니다. 


"이건 시각장애인을 위한 눈알 열매에요. 이 눈알은 백년에 한번씩 열리고 3년에 2개씩 떨어져요. 그렇지만 올라가서 딸수는 없는 열매에요. 하늘에서는 요술가루가 달려 있는데 이 가루가 눈알나무에 닿으면 눈알이 1미터씩 커져요. 나무 앞 바람과 천둥사이에 투명한 막이 있어서 이 막이 나무를 지켜줘요. 땅에는 흑인과 백인들(병뚜껑에 수수깡을 붙여서 표현)이 있는데 흰 종이테이프로 붙인건 백인이고, 검정색 종이테이프로  붙인건 흑인으로 표시했어요. 백인들이 흑인들을 때리고 무시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나쁘다고 생각해요."

진성이만의 상상력을 통해 인류애가 담긴 이야기가 드러난 눈알나무 이야기.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궁금해집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멋진 스토리들이 앞으로 모야에서 더 많이 피어나면 좋겠네요. 


유독 스토리텔링 작업이 두드러진 바른샘도서관의 사례 가운데, '모야에서 이런 작업까지 가능해?'하며 놀란 작업이 있다면 바로 시를 써내려가는 작은손의 사례입니다. 자신만의 북커버를 만들고, 그 안에 종이를 덧대어 일필휘지로 자작시를 써내려 간 주연이라는 작은손이죠. "이렇게 어린이에게 오늘도 배운다"며 시를 공유해주신 오른손 덕분에 함께 멋진 시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보기 : 모야는 어른도 어린이에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바른샘 모야 운영자 핏치의 인터뷰)


인간의 삶


1세기부터 살아온 우리 삶

참 깁니다

길고 긴 삶 

1분 1초 

하루라도 소중한 시간은 같습니다


작은손 주연이는 자신이 그동안 쓴 시들을 엮어 엄마와 <나 몰라 동시집>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 시집을 모야의 다른 친구들과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해두었답니다. 주연이의 시들, 함께 감상해보시죠. 

바른샘어린이도서관 모야의 김주연 시인의 첫 동시집


한편, 울산의 양정 작은도서관 달팽이에는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작은손들도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좋아하는 것들을 그리며 책을 만드는 작은손도 있고, 더 나아가 이야기를 만들어 시리즈물을 만드는 차기 웹툰 작가님도 계십니다. 그 작가님은 가끔 연재중인 작품 <액션맨> 속 등장인물을 모야에서 만들어간다고 합니다. 장르는 액션활극인 것 같네요. :)

달팽이 도서관의 웹툰 작업 <액션맨> 중


7번째 유형 : 기획자 


여덟번째 유형은 '기획자'입니다. 탐색이나 하나의 물건 제작을 넘어, 기획자들은 주도적으로 판을 만들고 역할을 나누어 일을 도모합니다. 작은도서관 웃는책에서는 열린 '어린이가 주도하는 어린이날 행사'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모야 홍보를 위해 판을 벌려 놓으니 작은손들이 알아서 참여하면서, 도서관 앞 놀이터에 자리를 펴고 다른 친구들을 모야로 초대하고 뱃지를 만들어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고 해요. 모객과, 안내, 뱃지제작 등의 일을 나누어 맡고 서로의 별명을 불러가며 어린이 주도로 일이 진행되다 보니 모야가 가장 많이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작은손도, 오른손도 무척 신이 나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함께 보기 : '어린이들만의 모야 문화'를 만들어가길 기대하고 있는 웃는책 오른손 네네의 인터뷰)

어린이가 진행한 어린이날 모야 행사


8번째 유형 : 장인


'장인'은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겠지만, 여기서는 숙련된 기술자 혹은 도구제작자로서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아마 많은 작업실의 어린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장면일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특히 듀이와 봉석이라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도서관 마스코트로 활보하고 있는 양정 작은도서관 달팽이의 어린이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양정 작은도서관 달팽이의 고양이, 듀이와 봉석이

고양이와 함께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어린이들은 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다양한 장난감들을 고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많이 만든 것은 낚시 장난감이었습니다. 고양이들과 교감하기 위해 나무, 수수깡, 모루, 철사, 방울 등을 이용해서 정성껏 만들었고 이 도구들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하네요. 고양이 장난감 숙련자들이라면 바로 달팽이의 작은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한 고양이 장난감들 (아래 두 사진은 전동 장치를 활용한 장난감)


9번째 유형 : 설계자 


마지막으로 소개할 유형은 설계자 유형입니다. 이들은 주제에 맞는 형태와 구조를 설계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재료를 선별하며 시도와 난관을 감수하는 건축가들입니다. 작년 하반기에만 티티섬 모야에 80번 등장한 단골 재원이의 경우가 그렇지요. 재원이에게 작업의 영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 머릿속엔 설계소가 있어요.”


그간 시도한 다양한 작업 가운데 특히 오랜 시간에 거쳐 몰입한 작업들은 흥미롭게도 대부분 목적이 있는 구조물을 계획한 후 다양한 재료를 연결 & 조합하여 '구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항상 모야에 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주제를 고민했지만, 어떠한 주제이든 설계자로서의 작업을 진행했다고 공통점이 보여졌지요. 의자나 집, 농구골대나 대관람차, 각종 게임과 미로 등 각각의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적합한 재료를 고민하고, 각 구성요소가 구조로써 기능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을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고난이도의, 움직임 요소가 있는 작업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도를 구현하기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점이 오히려 작은손을 깊이 몰두하게 하는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따라 만들어 본 농구게임
스케일이 큰 구조작업

"이 재료(=상자용 골판지 종이)는 창의적으로 쓸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좋아요.”

“종이로만 벽을 만드니까 너무 휘어져요. 종이와 종이 사이에 단단한 뼈대가 있으면 더 튼튼해질 것 같아요.”

"상자가 나무색이니까 집의 종류는 나무집으로 하는게 좋겠죠? 기둥도 나무색으로 써야겠어요"

재원이의 다양한 설계 작업. 조작, 변형가능성이 높은 골판지와 상자를 많이 활용합니다.
모터로 움직이는 대관람차


놀라운 점은 단골 작은손이 이러한 구조적 작업을 자주 하고, 모야 곳곳에 그러한 작업이 전시 형태로 많이 보여지자 친구들을 중심으로 모방이 일어나면서 설계와 구축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작은손들이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지면(?)의 한계로 더 많은 작업을 소개하지 못함이 아쉬울 정도로 많은 구조적 작업들이 일어나는 티티섬 모야의 모습이지요. 


티티섬 모야의 다양한 건축물들 


이상으로 모야에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작업자들의 모습을 유형별로 소개해보았습니다. 연구자, 수집가, 실험가, 모방가, 탐험가, 스토리텔러, 기획자, 장인, 설계자. 주변에서 작업에 몰두하는 어린이가 보이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9가지 유형을 넘어 아마 50가지, 100가지도 넘을, 더 많은 유형을 각자의 현장에서 발견해주시고, 또 제보(?)도 해주시길 바랍니다. 올해 모야에서도 더 많은 작업의 풍경을 발견해가보도록 할게요! 



글. 민지은 (도서문화재단 씨앗 모야 프로젝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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