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eun Min Feb 02. 2022

Chapter15.
천만에요,백 가지가 있어요 ①

전국 모야의 9가지 작업자 유형을 소개합니다

어린이는
백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어린이는 가지고 있죠.
백 가지의 언어
백 가지의 손
백 가지의 생각
백 가지의 생각하는 방법
놀이하는 방법, 말하는 방법을.


- 로리스 말라구찌, <천만에요, 백가지가 있어요> 중에서




'작업'이란 무엇일까요? 성인의 눈에 때때로 어린이들의 작업이란 단순한 이어붙이기나 조합, 꾸미기 정도의 활동이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업은 어린이가 사물을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의 힘을 기르며, 자신을 능동적으로 표현하고 새로운 시도와 실패 속에서 자신감을 획득하는 과정입니다. 전국의 17개 모야를 돌아보다보면 다채로운 색깔과 유형의 작업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흩어진 모야의 공간에서 오늘도 나름대로의 작업을 진행해가고 있지요. 각자의 언어와 방법과 생각과 관점으로요. 무언가를 창조해내려 골몰하는 과정에는 9가지 모습만이 있을 수 없지만, 우선 전국 모야의 운영자 분들이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신 어린이들의 작업 풍경을 중심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었던 9가지 작업 고수들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1번째 유형 : 연구자   


첫번째 유형은 연구자로서의 작은손입니다. 연구자의 모습을 지닌 작은손들은 한 가지 주제에 깊이 몰두하여, 파고 또 파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종 범지기마을10단지 푸른작은도서관의 모야에 찾아갔을 때 오른손이 소개해주신 한 어린이는 자동차를 만든 뒤, 다음에 다시 왔을 때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전부 분해하고 새로운 재료와 형태로 다시 제작을 시도하며 그 과정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해요. 오른손도 지켜보며 신기하고 놀라웠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같은 주제만 계속 반복하는 것 같은 어린이들이 있을 때 한번 시간을 두고 자세히 지켜보세요. 무언가 계속 변주가 일어나고 있을 테니까요. 

형태와 사용재료가 계속 달라지는 자동차 작업
입체 형태로 만든 작업을 평면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합니다.

대구 마을도서관 햇빛따라의 모야에는 파충류 연구자가 있답니다. '그림자'라는 별명을 가진 작은손이지요. 도서관에서 파충류에 대한 책을 보며 프린트물과 책을 통해 관심을 키워가더니 자세히 들여다보며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나름의 모형도 만들어봅니다. 파충류에 대한 관심은 공룡으로 이어지기도 했지요. 자신만의 연구프로젝트가 쌓여가는 그림자의 작업에 모두가 놀라워했답니다. 도서관 안에 있는 책이 작업에 영감을 주는 사례이기도 하지요. 

그림자의 연구작업 변천사



2번째 유형 : 수집가


두 번째 유형은 수집가입니다. 매의 눈으로 재료를 관찰하고 수집하는 일에 탁월함을 보여주는 작업자들이죠. 때로는 수집 자체가 작업이기도 하고, 수집한 재료를 조합해 자신의 것을 만들기도 합니다. 재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작은도서관 함께크는우리의 모야 어린이들은 오른손과 함께 종종 자연재료를 채집하러 떠난다고 해요. (수집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좋은 방법!)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수집해 작업으로 남겨보는 작은손들의 작업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3번째 유형 : 실험가


작업실에서 정말 자주 볼 수 있는 유형이 바로 실험가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험가들은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검증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경로를 탐색하고, 때로 난관을 만나 실패를 경험하며 문제를 해결해가지요. 실험가들이 실험을 지속하려면 때로는 가설이 허무맹랑하게 들리더라도, 작은손의 생각을 인정 해주고 시도를 격려하는 오른손의 자세가 필수이지요. 실험을 마음껏 해보려면 너른 공간이 필요한 법인데, 서울 강동구의 작은도서관 웃는책은 도서관 앞에 바로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고 도서관 내 층고 차이가 있어 실험이 일어나기 딱 좋은 환경이지요. 웃는책의 작은손 '하트'는 어느날 가오리연을 날리고 싶었다고 해요. 도화지와 나무젓가락으로 가오리연을 만들고는 날아가는지 궁금하다며 놀이터에서 테스트를 해봅니다. 안 날아가자 "종이가 무거운 것 같다"는 가설을 세우고는, 종이를 가벼운 트레이싱지로 바꿔보았죠. 또 날아가지 않습니다. "바람이 없는 것 같다"며 뒤에서 바람을 내보도록 하고 "가운데 구멍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가운데 구멍을 뚫습니다. 그래도 연은 날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하트는 연을 소중히 보관해 가져가며 바람이 있는 날 다시 날려보겠다고 했다고 해요. 

하트의 연날리기 실험

웃는책의 '소문'과 '미스터리'는 종이컵 전화기를 만들어 "얼마나 들릴까?" 질문을 던져봅니다. 최대한 줄을 길게 만들어 도서관 2층을 지나, 3층까지 올라가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실험을 해보았죠. (놀이터까지 나가서 실험을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종이컵 전화기, 어디까지 들릴까?


4번째 유형 : 모방가


작업과정 가운데는 남의 걸 따라해보는 모방이 많이 일어납니다. 성인의 시선에서 '그건 작업이 아니지!'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린이들 사이에서 따라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은 모습으로 읽혀지기도 하는데요, 사실 모방은 사실 굉장히 중요한 과정입니다. 남의 것을 흡수해보며 자신의 관점과 해석, 기술을 만들어갈 수 있는 필수 코스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만들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따라해볼 수 있도록,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만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에 놓인 책과 모야의 어린이들이 만들고 간 작업물은 동등하게 훌륭한 모방의 원천이 되어줍니다.


울산 양정 작은도서관 달팽이에서는 도서관에서 소풍과 도시락에 관련된 책을 모아 편히 읽을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 책 <샌드위치 소풍>은 실제 샌드위치 모양처럼 겹겹 책장이 친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한 작은손이 스티로폼과 기다란 풍선을 가지고 무지개 샌드위치를 만들었어요. 그걸 기록으로 담은 오른손도 참 먹음직스럽다며 감탄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 웰컴퀘스트*를 진행중이었는데, 무지개 샌드위치를 유심히 바라보던 또 다른 작은손이 마침 ‘나도 한번 똑같이 만들어보자’ 미션카드를 뽑았고, 이렇게 재미난 형태의 샌드위치가 연달아 만들어지게 되었답니다. 

(*웰컴퀘스트 : 모야 오른손들이 작업주제가 고갈되거나 적응이 낯선 어린이들에게 건넬 수 있는 미션카드)


한편, 마을도서관 햇빛따라 도서관 모야에서는 구슬 롤러코스터의 사례를 들며 모방의 힘을 매우 강조합니다. (햇빛따라 모야 운영자 인터뷰)  '고양이'라는 별명의 작은손이 만들기 시작한 구슬 롤러코스터는 이후 많은 친구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다양한 모방 롤러코스터들이 만들어졌다고 해요. 그 자리에서 보지 못하고 나중에 작업물만 본 친구들은 모방의 과정에서 각자의 재해석과 상상이 덧대어져 제작 포인트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관전 포인트라고요 :)  

작은손 고양이의 구슬 롤러코스터
햇빛따라 모야 다른 친구들의 롤러코스터 작업열풍!
새롭게 만들어진 롤러코스터 시연


5번째 유형 : 탐험가


탐험가들은 모름지기 자연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발견자들이지요. 충남 서천의 여우네도서관의 작은손들은 탐험가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여우네도서관 주변은 작은 개울이 흐르고 주변에 농지가 있어 이 운좋은 어린이들은 모야에서 만든 것을 가지고 자연으로 탐사를 떠난다고 해요. 

많은 재료가 필요치 않아요! 모야에서 만든 탐험가의 도구들


작은 개울의 올챙이들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한 올챙이채와 종이어항을 모야에서 뚝딱 만들어, 한참이고 나가서 놀다 들어오곤 한다는 작은손들의 작업사례를 듣고 사진을 보았을 때의 부러움이란! 모야가 있는 도서관은 아무래도 대부분 도심 속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여우네 도서관은 자연의 풍요로움 속에 자리한 도서관으로서 자연스레 작은손들이 특혜를 보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덕분에 이런 탐험가들의 면모 또한 발견할 수 있었네요.


서천 여우네도서관 개울가의 탐험가들



모야에서 볼 수 있는 작업유형! 물론 아홉가지만 있을 수 없고, 한 장면이 하나의 유형으로만 구분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톺아보니 작업의 다채로움을 확인할 수 있는 듯 합니다. 여러 유형 가운데 먼저 연구자, 수집가, 실험가, 모방가, 탐험가의 모습을 소개시켜드렸는데요. 나머지 4가지 유형도 궁금하시다면, 이어진 글을 확인해주세요!


이어서 보러 가기 : 천만에요, 백 가지가 있어요 ② 전국 모야의 9가지 작업자 유형을 소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