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실패

우주실험보다 오래 걸린다

월간 실패 2013년 4월호

by reliquum


자작으로 ‘기계’를 만들고 싶다는 로망은 꽤 해 묵은 것이었다. 문제는 어떤 기계에 도전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역시 꽤나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빔 프로젝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빔 프로젝터를 굳이 자작으로 만든다고 해도 별 이점이 없다. 가격도 성능도 디자인도 사는 것이 훨씬, 이백 배 쯤 더 낫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것을, 만들어 보기로 했던 것이다. 자작의 매력이라면 소재를 내가 끌리는 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로 프로젝터 케이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제 갓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자신있게!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우리 능력에 대한 검증없이 무작정 사람들을 초대했다. “같이 만들어요!” 놀랍게도, 우리 말고도 이걸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주변에 여러명 있었다.

프로젝터 워크숍을 위한 리서치와 작업은 장씨가 거의 도맡아 했다. 빔 프로젝터가 작동하는 원리를 알아보는 첫번째 이론 워크숍과 신발 상자 같은 박스에 보드, 렌즈, 램프 등을 임시로 구성해보는 프로토타입 워크숍까지 진행한 후, 메이커 페어에 출품할 샘플을 우여곡절 끝에 완성하기까지 많은 공을 들인 과정이었다. 이어 워크숍도 순조롭게 마무리 되길 기대했지만, 예상치 못한 사정들이 생기면서 중단된 워크숍은 아직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볼록 렌즈를 통해 강렬한 빛이 발사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주실험 비주얼이라고 농담을 주고받던 순간이 생각난다. 결국 우주 실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도록 마무리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야심찬 프로젝트의 가장 큰 실패다. 아직도 상자 속에 쳐박힌 채 쓰지 못한 재료들은 이따금씩 우리에게 따가운 시선을 던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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