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실패 2013년 5월호
‘과학문화민간활동지원사업'이라는 공모 사업에 제출할 사업계획서를 쓰기 위해 다 함께 밤샘 작업을 했던 날이 떠오른다. DIY와 기술 그리고 놀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활동하는 우리에게 딱 맞는 조건이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던 지인 덕분에 얼떨결에 도전하게 된 일이었다.
하고 싶은 활동도 계획도 많지만, 정형화된 언어로 정리하고 성과를 낼 만한 세부 일정을 짜는 일은 머리를 모두 맞대어도 역시 어렵기만 한 일이었다. 우리의 언어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특히나 우리처럼 행정이나 서류 작업과는 거리가 먼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지원 사업에 지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도전’이었다. 우리는 평소 쓰지 않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검토해가며 신중하게 서류를 다듬었다.
선정자 발표가 있던 날, 문서를 열어 선정자 리스트를 읽어내려 가는데 무슨 대학의 산하 조직이나 연구소 혹은 사뭇 진지한 느낌의 단체들 이름 사이로 ‘땡땡이공작'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이질감을 잊을 수가 없다.
공적 자금의 지원은 분명 우리의 활동이 더 멀리 뻗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하지 않으면 더 좋을,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도 너무 많이 생겨났다. 프로젝트의 본질보다 서류, 증빙, 결과 발표로 귀결되는, 가장 필요한 ‘인건비’는 철저히 배제하는 지원 구조는 우리를 ‘신뢰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돈이 되지 않는 문화 예술 활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원 사업은 대체로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정부 지원 사업이란 게 좀... 아시잖아요."라는 말에 격한 공감을 표할 수 있게 되었다.
#서류100장이제일쉬웠어요 #고통스런서류작업 #허망한프리젠테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