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실패

회장님 어록 말고 저항시

월간 실패 2015년 6월호

by reliq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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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촌 이종근 기념관으로부터 처음 ‘생체신호를 이용한 워크숍’을 요청받았을 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었던 생체신호는 심장박동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어쩌다 몸의 저항값을 미디엄으로 데이터 아트를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여느 때처럼 둘러앉은 테이블과 커피와 두서없이 끼적인 낙서, 그리고 잡담과 드립이 섞인 느슨한 회의의 결과물일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손바닥에서 손바닥, 손가락에서 손가락, 두 귀와 양 볼간의 저항을 한 번에 잴 수 있는 멀티-멀티미터를 제작했다. 총 4개의 멀티미터를 버튼 하나로 제어할 수 있게 개조하고 저항을 측정할 각각의 전선 끝에는 심전도 측정에 사용되는 패드를 붙인 노랑, 초록, 파랑, 분홍색의 빨래집게를 매달았다. 자작 합판으로 그럴싸한 케이스도 제작했다.

우리가 생각한 알고리즘은 이렇게 측정된 데이터 값에 따라 선별된 시어를 조합해 시를 쓰고, 데이터의 숫자를 음표 코드에 대입하여 오르골로 연주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진행된 워크숍. 친구가 저항 측정을 위해 온몸에 주렁주렁 빨래집게를 단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는 건 모두 같았지만, 그렇게 얻어낸 데이터로 시를 쓰는 태도는 저마다 달랐다. 누구는 장난스럽게, 혹은 건성으로 임했고, 또 누구는 굉장히 진지하게 자신의 호흡을 데이터 사이에 녹여내었다. 각자 자신의 시를 낭독할 때마다 웃음과 비난, 그리고 탄성이 터져나왔다.

데이터 아트라는 예술의 방식을 소개하고, 예술의 형식을 어렵게만 느껴온 청소년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우리에게도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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