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실패

시작부터 보스급 몬스터

월간 실패 2016년 5월호

by reliq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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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센터와 함께 서울 도심에 팝업 놀이터를 기획하고, 여는 작업을 하기로 할 때만 해도 우리가 기대했던 그림은 풀밭 위를 여유롭게 뒹굴거리는 사람들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노는 것에 열중하는 아이들, 그리고 다양한 색과 재질로 재미나게 디자인된 놀이 공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놀이터를 여는 날이 오자 그 그림에서 제대로 구현된 건 놀이 공간의 일부분뿐이었으며, 그나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실패한 부분을 꼽자니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먼저 쓸까 고민하느라 손이 멈춘다. 기대한 것의 5배가 넘었던 인파, 지켜지지 않은 놀이 약속, 서비스를 받는 게 권리인 것처럼 굴었던 사람들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그래서 대비하지 못했던 수많은 변수. 작업자 간에도 어긋났던 소통. 그리고 어린이날과 서울시청이라는 장소성. 제대로 된 장비 하나 갖추지 못한 채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보스급의 몬스터를 만난 꼴이었다.

5월의 햇살이 그렇게 뜨거울 수 있다는 걸 그 날 처음으로 알았다. 서울 시청 앞을 오가는 사람이, 특히나 가족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도. 후원하는 측은 참여자가 많아 좋아했다지만, 우리의 기준에서 그 놀이터는 실패였다. 한동안은 곱씹을 때마다 씁쓸해졌던 실패.

가장 뼈아팠던 점은 그 놀이터가 ‘우리답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이런 놀이터를 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부터, 그럼 어떤 놀이터를 열어야 할까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앞으로의 놀이터 작업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느릴 수도, 힘들 수도 있겠지만 가장 힘든 한 걸음은 이미 떼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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