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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손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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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quum Jun 16. 2016

직접 만든다는 것, 그 힘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주말 오전, 릴리쿰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드디어 첫 문을 열었다. 한 달 남짓 모집해오던 크라우드펀딩이 예상보다 성공적으로 끝나, 후원자들에게 감사 인사도 전할 겸 오프닝 소식도 활기차게 알릴 겸 릴리쿰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준비했다. 스스로 만든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제작자들을 초대했다. 그들과 그들의 물건이 하나 둘 모여들어 헛헛했던 공간을 채웠다. 차례로 이 제작자이자 판매자들의 지인, 우리들의 손님, 텀블벅 후원자들, 지나가던 행인들이 문들 열고 들어섰다. 따뜻한 차와 커피를 대접하고 노릇노릇 키시(quiche)도 구웠다. 금세 겨울 냄새나는 풍경이 되었다. 해가 지고 작은 공연과 함께 파티가 열렸다. ‘이태원 그 집’을 계약한 지 딱 세 달 만에 연 일종의 ‘개업식’이다. 손때 묻혀가며 정성스레 꾸린다는 게 이렇게나 오래 걸리다니, 어이없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서로를 보며 웃었다.

릴리쿰의 공간 구성 스케치

   보통의 상업 공간들은 전문업체를 섭외해 2주 이내로 실내 공사를 재빨리 마치고 바로 영업을 시작한다. 내부공사로 인해 지체되는 시간만큼 영업활동 없이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므로 사실 그게 '남는 장사'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직접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셀프 인테리어 공사를 직접 하는 동안 놀랍게도 월세를 세 번이나 냈다. 이렇게 얘기하면 대단한 공사를 한 것 같지만 견적부터 구매, 설치까지 직접 하느라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작업하는 동안에 을지로 3가 4가, 청계천 일대를 밥 먹듯 드나들었다. 나중에는 누군가 묻는다면 ‘어디 가면 무엇을 구할 수 있어요.’라고 조언할 정도가 되었다. 바닥 데코타일을 구매하는 데에 몇 차례 샘플 확인과 회의를 거쳤다. 나무 벽에 칠할 페인트 색을 결정할 때에도 컬러 칩을 고른 후 몇 가지 색을 칠해 테스트를 거쳐 최종 결정한 색을 조색했다. 조명과 조명 레일은 청계천 조명상가 거리에서 구매해 직접 설치했다. 부엌공간도 싱크대와 콘크리트 블록, 타일을 사다가 조금 거칠지만 어디서 살 수 없는 모양새로 만들었다.

   직접 만든다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고, 게다가 솜씨가 서투르다면 사서 쓰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주변에 대해 좀더 알게 되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더 배우게 된다. 어디서 무슨 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 구석구석 알게됨은 물론, 어떤 일은 전문 기술자에게 의뢰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콘크리트 벽 뚫고 칼 블록 넣기 신공으로 팔 근력도 키웠다.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인테리어 공사를 스스로 해보니 숙련자들의 노동과 기술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님을 느끼며 그 협업과 노동에 대한 교환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다. 그리고 하나의 공간을 재구성한다는 것이 이렇게 부분과 전체를 번갈아 살펴가며 하나씩 채우고 연결해가는 과정임을 알아갔다. 공간에 관해서는 소비자에 머물렀던 지난 날들로부터 자신감도 생겼다.

직접 만진 공간 릴리쿰을 우리는 사랑해마지않았고 릴리쿰의 친구들 또한 그러했다고 말한다. 특별히 세세하게 디자인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늑하다고 한다. 격려와 응원이 섞인 멘트라는 걸 잘 알기에 늘 고맙다. 직접 수고를 들여 좋은 것 중 빠질 수 없는 한 가지는 역시 작업 후 친구들과 함께 배를 채우고 잔을 기울이며 힘들었다 수고했다 토닥토닥 했던 시간들이다.


   직접 만진다는 것. 우리에게 직접 만진다는 것은 직접 해본다는 것이며 스스로 생각해보려 한다는 뜻이다. 직접 재료를 만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재미를 느낀다. 그 흥미에 대한 기억이 오롯이 내 것이 된다면 지식의 내면화도 가능하다.

   요즘은 하늘에 날리는 연도 완성품이나 미리 재단된 키트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연날리기 자체가 전통적이라 흔치 않은 놀이가 된 지 오래되어 만들기 키트 상품만으로도 향수에 젖기도 하는데 사실 어릴 적 처음 경험했던 연 만들기는 재료준비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감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대나무를 직접 쪼개고 살에 창호지를 발라 정성껏 만들었던 방패연은 얇게 가른 대나무의 두께, 팽팽한 텐션, 질감이 서걱거렸던 종이, 끈끈하게 갠 풀을 뜰 때의 느낌으로 손끝에 남아 있다.

   손끝에 인지되지 않는 경험은 관념에 머물기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장에 가서 직접 보고 만져 물건을 고르는 일보다 클릭으로 해결하는 온라인 쇼핑은 훨씬 쉽고 편리해 더 빨리 내 욕망을 채워주는 듯하다. 그러나 많은 정보 속에서 진짜 내게 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신발 한 켤레를 사더라도 믿을 만한 제조사인지, 정말 내게 맞는 스타일인지, 화면에서 드러나지 않는 흠은 없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성공적인 구매를 위해 미리 무수한 사용 평들을 읽어보지만 그 즉시 의심 한 조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이 후기는 진짜 일까, 아니면 알바(광고)일까?'

몸은 편해졌을지언정 머리는 피로해진 셈이다.


   업무 역시 눈앞에 펼쳐진 스크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손작업에서는 사실 생각하는 일과 실행하는 일을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과 손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머리 속에서 바삐 굴러가는 관념적인 생산에서 오는 혼돈이 조절된다. 이 때문에 산업디자인 교육에서도 입체모형을 만들어보는 3D 스케치와 시제품 제작을 늘 강조한다. 컴퓨터 모델링으로만 제품을 설계하고 실제로 크기와 비율, 재질을 탐색하지 않으면 실제 제품을 생산할 때 더 많은 오류가 드러난다. 경제적, 시간적 손실도 발생한다. 아무리 경력 많은 디자이너라고 하더라도 이 과정을 건너뛰지 않는다. 디자이너에게는 두뇌와 손을 연결해야하는 직업적 숙명 같은 것이 있다.


     오락과 여가는 제 손으로 만들기는 커녕  제 두뇌로 생각하는 것조차 뒷전으로 밀리고 남의 것을 그대로 유희한다. TV 속 육아, 여행, 특히 요즘 대세인 요리 프로그램처럼 일상과 가깝고 실용적인 주제를 다룬 프로그램이 인기다. 요리, 배낭여행, ‘썸남썸녀’의 대화를 실시간 메신저로 공개적으로 지켜보는 연애상담도 있다. 먹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인터넷 ‘먹방’도 있다.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대신 겪은 이들이 화면에 등장해  보여주고 우리는 그걸 보고 듣는 시청자가 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들 덕에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다양성을 가져오리라 기대되었지만 요즘은 정보의 소비에 있어서 오히려 더 획일화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혹자들은 남의 의견을 자기 생각인 양 차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패션화 된 타인의 의견이나 편집된 매체의 관점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독립적으로 사고할 힘을 기르는 일이 아닐까. 직접 재료와 도구를 만지며 몸을 움직여 스스로 생산자가 되기를 시도하는 일은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건을 계획하며 무엇이 필요한지 인식하고 그것을 구현할 방법을 탐색하면서 사물과 환경,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깊이할 수 있다. 사용하고 소비하는 방식까지 고민하면서 더 큰, 확장된 우리 자신들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물론 뭐든 다 직접 하는 것이 능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으로 매겨진 가치가 곧 실질적 가치인 것 마냥 치부되는 것들 중에 허상들을 가려내고, 스스로 체득한 가치와 우리를 흔드는 것 사이에서 인간다움의 균형을 잡는 삶의 방법이 되어준다.




글쓴이: 정혜린

*이 글은 2016년 11월 발간된 [손의 모험 -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공유하는 삶의 태도에 관하여] (릴리쿰 저, 코난북스) 원고의 일부 또는 가공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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