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실패 2016년 10월호
10월 초, 서울시에서 여성을 위한 메이커스페이스를 운영할 팀을 공모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위탁 운영’은 우리가 관심을 두던 분야와 거리가 멀었지만, 여성을 위한 메이커 스페이스라면 얘기가 달랐다. 규모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기획부터 운영까지 경험해 볼 기회였다. 그래서인지 엄청날 서류 작업과 강요받을지도 모르는 출퇴근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 번 지원해볼까?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문제는 그 공모가 창업 지원이나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 등 다양한 분야도 포함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말하자면 양이 너무 많은 세트 메뉴 같은 프로젝트였다.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는 분량도 한 접시뿐인데 다른 요리 두 개가 함께 나오는 세트로밖에는 제공되지 않는 메뉴. 그냥 포기해버리기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여성 메이커 스페이스를 리서치하면서 신이 나 있던 상태였다. 그러니 그 ‘메뉴'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두 접시를 해결해 줄 또 다른 팀이 필요했다.
공모 마감을 3주쯤 앞둔 시점. 그간 연을 맺어왔던 분들로부터 추천받은 두 팀이 합류했다. 경력이나 실적이 탄탄한 팀들이었다. 승산이 있겠는데? 희망을 품었던 것도 잠시, 첫 회의를 마친 후 한 팀이 이 사업이 자신들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며 탈퇴 의사를 전해왔다. 그것도 문자로. 우리는 좌절했지만, 곧 처음의 팀보다 관련 사업 경력이 더 많은 팀이 나타났다. 이런 게 전화위복인가 봐. 다시 희망을 찾은 우리는 며칠간 밤을 새워가며 기획서를 작성했다.
다음날 세 팀이 모여 공모에 제출할 서류를 다듬는 작업을 진행했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회의가 거의 12시간 넘게 진행되었을 즈음 서울시에서 요구하는 운영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상주해야하는 인력에 대한 이야기. 새로 합류한 팀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아뿔싸, 그들은 조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뛰어든 것이다. 그들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빠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미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기엔 늦은 시점. 결국 공모를 포기하게 된 것 보다도 12시간의 회의 전에 탈퇴해줄 수는 없었나 하는 원망이 더 컸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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