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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손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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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quum Jun 25. 2016

수리수리 자가수리

   첫 번째 땡땡이공작 워크숍을 끝낸 후 멤버들끼리 모여 앉아 다음 행보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폰 자가 수리를 해볼까?”

   한 멤버가 문득 꺼낸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아이폰은 배터리가 기기 안에 내장되어 따로 분리되지 않는 폐쇄성이 강한 기기다. 이런 아이폰을 뜯어본다고? 단단한 자물쇠로 잠겨 있고 “열지 마시오”라고 적힌 상자를 열어보자고 하니 흥미가 돋았다. 이런 사람이 우리만은 아니어서 참고할 수 있는 친절한 자료들도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었다. 한번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시작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해체된 아이폰 3G

   일단 쓰지 않는(망가져도 부담이 없는) 아이폰 3Gs 기기를 구하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최근에 기종을 변경한 지인의 옆구리를 찔러 쓰지 않는 기기를 받았다. 일단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확보했다. 아이폰을 해체하는 데 필요한 준비물은 규격에 맞는 드라이버와 헤어드라이어, 작은 고무 흡착판이 전부였다. 상세하게 작성된 튜토리얼 사이트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한 단계 한 단계를 그대로 따라가며 시도했다. 먼저 충전 케이블과 연결하는 잭 양쪽의 작은 나사를 푼다. 흡착판을 LCD 액정의 홈 버튼 부위에 고정한다. 손끝으로 흡착판을 잡고 힘을 주어 들어올린다. 조심스럽게 액정을 아래쪽부터 들어 45도 기운 상태까지 연다. 그러면 내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카메라 모듈 옆에 위치한, 액정과 본체를 연결하는 리본 케이블들이 접히거나 찢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3Gs 기종에는 해체 순서를 가이드하는 번호 스티커가 각 부품에 붙어 있다. 손톱 끝으로 이 리본 케이블들이 연결된 플라스틱 탭에 살짝 힘을 줘 번호 순으로 들어 올리면 마침내 액정이 기기와 분리된다. 하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첫 번째 시도였음에도 모든 해체와 재조립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정말로 워크숍을 열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물건의 수명과 고쳐서 쓰는 일의 가치를 생각했다. 수택(手澤)이라는 말이 있다. 손이 자주 닿는 물건에 물건을 쓰는 사람 손때가 남아 윤기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소유한 사람의 손이 닿은 시간이 쌓이면서 자기만의 가치가 생기고, 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담긴 말이다.

요즘 넘쳐나는 물건 가운데 정말 오래도록 쓰고 간직해 손때가 묻은 물건이 얼마나 될까. 새로운 모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기기에는 더더욱 이런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 물건을 고쳐서 쓴다는 것 또한 더 이상 익숙한 일이 아니다. 무언가를 직접 고쳐 쓰는 수고를 감당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문가 또는 서비스 센터에 수리를 맡긴다. 물건이 망가지면 오히려 ‘홀가분하게’ 그것을 버리고, 새 것을 사는 데 익숙하다.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은 제품에 고장이 생겼을 때 ‘보험’이나 ‘리퍼’라는 개념을 적용해 쓰던 기기를 수리해주는 대신 무상으로 다른 기기로 교환해주는 시스템을 운용한다. 이 또한 계획적 진부화의 하나다. 이제는 제품의 설계뿐 아니라 서비스 정책까지 소비를 강요하는 구조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구입한 전자 기기들은 정갈한 포장 박스에서 우리 손을 거쳐 불과 2, 3년 사이에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만다. 이후에는 폐기물의 세계화라는 운명을 타고 아프리카의 가나나 인도 델리, 중국 꾸이위의 전자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진다. 물건으로 쓰이던 생이 끝나도 쉽게 사라질 수 없는 디지털 폐기물들은 세계 곳곳에서 유해 물질로 뒤덮인 거대한 피라미드를 짓고 있다.

 

   아이폰 자가 수리를 위해 튜토리얼을 참고한 아이픽스잇닷컴(ifixit.com)에는 몽키스패너를 꼭 쥔 다부진 손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수리 선언문(REPAIR MANIFESO)’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내용에 우리 모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가 수리 선언문

우리는 아래의 진실들이 자명함을 선언한다:


수리는 재활용보다 낫다.

물건들을 오래 지속시키는 것이 그것들로부터 원재료를 파내는 것보다 효율적이고 비용 면에서 효과적이다.

수리는 지구를 지킨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며 우리는 선형적인 생산 공정을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재사용하는 것이다!

수리는 금전을 절약한다.

무언가를 수리하는 것은 종종 무료이고, 보통 교체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우리 스스로 수리하면 적잖은 땡전을 절약한다.

수리는 공학을 가르친다.

어떤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분해하는 것이다!

수리할 수 없다면, 가질 수 없다.

수리는 사람과 기계를 연결하고 소비를 초월하는 연결을 형성한다. 자가 수리는 지속가능하다.

수리는 우리와 물건들을 연결시켜준다.

수리는 개인을 강화시킨다.

수리는 소비자를 공헌자로 변화시킨다.

수리는 자랑스러운 소유를 고취한다.

수리는 영혼을 불어넣어 물건을 특별하게 만든다.

수리는 자립이다.

수리는 창의력을 요구한다.

수리는 친환경이다.

수리는 즐겁다.

수리는 우리의 물건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수리는 돈과 자원을 절약한다.

우리의 권리

품질 보증을 유지한 채로 우리 제품을 열고 수리할 수 있는 권리

열어볼 수 있는 제품

에러 코드와 배선도

문제해결 지침과 순서도

모든 것에 대한 수리 문서를 작성할 권리

수리 기술자를 선택할 권리

‘제거하지 마시오’ 스티커를 제거할 권리

우리의 사생활 안에서 물건을 수리할 권리

모든 소모품을 우리 스스로 교체할 권리

수리를 위해 전용 공구가 필요 없는 하드웨어

합당한 가격에 수리 부품을 구할 권리



   ‘수리 선언문’은 일종의 저항 운동이다. 계속해서 소비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을 거스르자, 대신 물건의 수명을 연장하고 사물을 다루는 능력을 기르자는 행동이다. 동시에 직접적인 환경 운동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의 권리’를 차근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으로 차단된 물건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는 일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가 수리 워크숍을 겪으며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이런 문제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또 잘못되었다고는 느끼지만 다른 선택은 하지 않았던 ‘관찰’에 머무는 것과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직접 행동에 옮기는 ‘개입’의 차이를 경험하기도 했다. 살면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에 ‘개입’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멀쩡한 기계나 물건을 유행에 쳐진다는 이유로, 할부가 끝났다는 이유로 새것으로 바꾸지는 않게 되었다.

   이런 다짐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직접 실행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훨씬 어렵다. 워크숍에 대한 호응은 생각보다 컸고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이 공감과 응원을 드러냈으나, 직접 자가 수리를 해보겠다는 (사)용자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워크숍이 요란한 빈 수레가 되는가 싶었을 때 기다리던 ‘용자’들이 나타났다. 기대보단 적은 인원이었지만 예정대로 워크숍을 열었고, 그 사이 아이폰 3GS 해체와 조립의 마스터가 된 멤버 쟝의 일대일 강의로 참여자 두 명 모두 성공적으로 직접 수리를 해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꽤 공을 들여 준비했기에 워크숍 과정과 결과 모두 대 만족이었다.

   그렇다고 거기서 끝내기엔 아쉬웠다. 우리가 열어본 것은 아이폰 3Gs뿐이었다. 아직 우리에겐 (당시로서는) 아이폰4, 4s가 남아 있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또 다른 아이폰을 뜯어보고 싶어졌다. 4, 4s 기종은 당시 신형 모델이었기 때문에 남는 기기를 구하기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했다. 남는 기기는 없었지만 쓰는 기기는 있었다. 당시 멤버 중 두 사람이 아이폰4와 4s를 쓰고 있었다. 이번에는 각자 자기 아이폰을 뜯어보기로 했다. 

   날을 잡고 저녁 일곱 시쯤 만나 작업을 시작했다. 이전 기종과 달리 신 기종들은 촘촘히 모듈화된 구조여서 액정을 교체하려면 전체를 다 해체해야 하는 구조인데다, 정말 깨알같이 작은 나사로 조립되어 있어 어떤 나사는 조일 위치를 잡는 것도 수십 차례 시도가 필요했다. 완전 해체 후 재조립을 완료하기까지 여섯 시간 정도가 걸려 작업을 마쳤을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전화기를 해체했으니 전화가 불통인 채로 그렇게나 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멀쩡한 아이폰을 뜯었다 조립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정말 기나긴 시간을 거쳐 재조립을 끝낸 후 전원 버튼을 눌렀을 때가 절정의 순간이었다. 이럴 수가! 액정에 태양이 불타는 듯한 처음 보는 패턴이 뜨는게 아닌가. 

   재조립하면서 민감한 LCD와 디지타이저 케이블 부분이 살짝 접혀 화면이 고장 난 것이었다. 그렇게 액정 하나를 망가뜨렸지만 가장 중요한 실패의 이유를 배웠기에 두 번째 자가 수리 워크숍에서는 다행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참가자의 자가 수리를 도울 수 있었다.


   아이폰 모델이 우리가 처음 열어본 3Gs에서 이제 6S가 나왔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가 했던 작은 시도들이 실상 어떤 변화를 만들어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러했듯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저 ‘우리의 권리’가 작지만 유의미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 수리는 우리와 물건들을 연결시켜준다.




글쓴이: 선윤아

*이 글은 2016년 11월 발간된 [손의 모험 -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공유하는 삶의 태도에 관하여] (릴리쿰 저, 코난북스) 원고의 일부 또는 가공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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