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은 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 '모야 MOYA'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떤 팀들이 모여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도와 시도를 담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어린이작업실이라는 공간이 궁금하신 분,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의 변화를 상상하는 분들께 구체적인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호랑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물고기입니다.
모야 프로젝트를 맡은 이후 하루하루 폭풍 같은 날을 보냈는데, 영영 계속될 것 같던 작업도 마무리되어 가고, 어느새 해가 바뀌었네요. COVID-19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릴리쿰은 9개 도시, 13개의 도서관을 방문해 운영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모야에 내어주신 공간을 측정하고, 배치를 고민하고, 가구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을 백여 가지가 넘는 재료와 도구로 채워 넣고, 빈 부분은 어린이들이 채워 줄 거라 기대하며, 이곳을 운영해주실 분들에게 모야의 의미와 비전, 운영 원칙을 전달하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오늘은 각기 다른 곳에서 12번*을 반복하며 조금씩 살이 붙고, 형태가 바뀐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2021년 1월 기준으로 아직 한 곳이 남았습니다.
Chapter 1. 모야가 시작된 모양부터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모야’라는 이름은 앞서서 설명되었듯 어린이가 신기한 것, 새로운 것을 맞닥뜨렸을 때 감탄사처럼 내뱉는 말에서 따왔습니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이건 왜 그래?”
“저건 왜 그래?”
울음이나 표정이 의사 표현의 전부였던 시기를 지난 아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질문을 쏟아내며 자기 세계의 외연을 빠른 속도로 확장해 갑니다. 순수한 호기심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은 가히 모험이라 할 만합니다.
‘작은손이 모험을 시작하는 곳’이라는 슬로건은 그런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질문을 만나고, 답을 찾는 제작이 일어나길 바라면서요.
그렇다면 모험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실패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효율적으로 목적지까지 일직선으로 전진해 순탄하게 임무를 수행해내는 이야기가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단 몇 페이지 안에 끝나버릴 테지만, 그마저도 다 읽기 힘들만큼 지루할 것입니다. 눈물이 나오는 순간이 없는 대신 웃음이 터지는 순간도 없을 테고, 나 자신을 비춰보며 나라면 이렇게 할 거야, 저런 실수는 하지 않을 거야 다짐할 기회도 없겠죠.
관계도 중요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은 한자, 사람 인(人)을 배울 때부터 유구히 들어온 식상한 경구이지만, 드물게 온전히 공감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타인과의 교류에 기대고 있죠. 이야기 속 모든 영웅에게는 친구나 조력자가 있습니다. 짐 크노프에는 루카스 아저씨가 있었고, 삐삐에게는 토미와 아니카가 있었죠. 누구 하나 온전히 믿기 어려운 이상한 나라에서조차 앨리스에게는 체셔캣과 부루퉁한 애벌레가 있었습니다. 길을 떠나 누구도 만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주인공은 없습니다. 긴 여정 속에서 주인공은 타인에게 질문하고, 도움을 받고, 때로는 친구가 되어 함께 모험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여러 감정을 겪으며 성장해 갑니다.
실패해도 안전하게 느낄 것과 다른 어린이들과 어우러지는 것.
모야의 운영원칙을 고민할 때, 이 두 가지가 보장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구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성공했을까요?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어린이들은 모야를 통해 모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처럼 집과 보호자를 떠나 다양한 가능성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죠. 곳곳에서 정답이 없는 질문을 만나고, 그 쓰임이 상상의 가짓수만큼 다양한 재료를 얻게 됩니다. 탐색을 돕는 도구와 함께 모험을 떠날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어린이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수많은 실패를 하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신만의 모험담을 써나갈 것입니다.
옛날 추리소설처럼 등장인물을 먼저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작은손
모야에서 작업하는 어린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작은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약속을 해야 합니다.
뒷짐손
작은손의 보호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작은손을 멀리서 지켜보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오른손
어린이작업실 모야에서 작은손들과 함께 하는 어른입니다. 권리랄 건 없고, 책임만 잔뜩 짊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어린이작업실이니만큼 모야의 주인공은 바로 어린이입니다. 이곳에서 만들어질 다양한 것들을 기대하며, 우리는 모야를 이용하는 어린이에게 ‘작은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곳을 찾는 모든 어린이가 ‘작은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손이 되기 위해선 엄격한 릴리쿰이 설치한 두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첫째. 어떤 작업을 할지 혼자 생각하고, 진행할 수 있을 것
둘째. ‘작은손 약속’을 읽고, 이해하고, 동의할 것
스스로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어린이는 모야에서 자신의 안에 있는 제작 본능을 인지하고 다양한 재료와 도구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어른들이 안절부절못하게 할 정도로 커다란 작품을 만들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구석에 앉아 머릿속 세계를 탐험할 수도 있습니다.
모험의 방식에는 규칙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조건이 전제됩니다. 어떤 모험을 하든,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구를 잘 다루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엇을 할지 스스로 생각하고, 혼자서 결정하며, 진행할 수 있는지가 기준입니다.
모야는 어린이의 독립적인 제작 활동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주제를 주어야만 만들 수 있다면, 매번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려주고, 도와주어야만 만들 수 있다면 그 어린이는 아직 모야에서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처음에는 모야를 찾는 모든 어린이에게 과제를 주려고 계획했었습니다. 세 제자에게 동전 한 닢을 주고 커다란 방을 채울 수 있는 걸 찾아오라고 보낸 스승*처럼, 모야를 이용할 자격이 된다는 걸 증명하라고 말이죠.
* 왕과 세 처녀, 기업가와 세 아들 등 다양한 버전이 있습니다.
재밌을 것 같았지만, 현실적으로 실행하기는 어려웠죠.
그래서 우리는 한발 뒤로 물러나 혼자 작업이 가능하다고 보장되는 최저연령을 정했습니다. 7살입니다. 여러 사례와 자료를 참고해, 7살 이상의 어린이라면 혼자서도 작업을 할 수 있으리라 믿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손이 될 자격을 ‘7살 이상’으로 못 박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나이는 대략의 가늠자에 불과하니까요. 따라서 작은손이 되고 싶어 하는 7살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과제를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혼자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말이죠.
그리하여 모야를 방문하는 어린이들은 살아온 시간으로, 혹은 용감하게 능력을 보임으로써 작은손이 되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은손 약속
두 번째 관문은 <작은손 약속>을 지키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는 작은손들이 공간을 이용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을 정리한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 규칙이 필요한가부터, 필요하다면 어떤 부분이 필요할지까지 규칙에 대해 길고 긴 토론을 벌였는데 그 결과 우리는 필요한 관점을 자율과 관계, 협력, 책임, 안전, 제작에 대한 태도 등으로 구분하고 각각에 해당하는 약속을 정했습니다.
약속 1.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자.
약속 2. 친구의 다른 점을 존중하자.
약속 3. 친구가 물어보면 도와주자.
약속 4. 재료와 도구는 함께 쓰자.
약속 5. 내가 쓴 자리는 스스로 정리하자.
약속 6. 나도, 친구도 다치지 않게 조심하자.
약속 7. 만들기는 즐거운 만큼만 하자.
모야에 들어오고 싶어 문을 두드리는 친구가 있다면 꼭 이 7개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 동의해야 합니다.
동의를 구하는 방법은 몇 번 수정되었는데, 최종적으로 정리된 방식은 서약서에 서명을 받는 것입니다.
작은손이 되고자 하는 어린이는 종이에 인쇄된 약속을 하나하나 소리 내 읽은 뒤, 동의할 경우 그 아래 서명을 합니다.
한 두 번쯤 쓰고 싶은 재료를 욕심내었다거나 청소를 깨끗하게 하지 못했다고 해서 작은손 자격이 박탈되는 것이 아닌데도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약속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라면 대충 그러겠다 대답하고 넘어가 버릴 것을 친구를 존중해야 한다는 항목에서 사이가 안 좋은 친구까지 존중할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재료를 내어놓지 않으려 하는 친구에게 “함께 쓰는 거라고 약속했잖아.” “알았어, 반 줄게.” 하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는 걸 보면요.
물론 작은손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일이 몇 번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반복된다면 작은손 자격을 박탈할 수 있기는 합니다. 작은손 서약서에도 그 사실이 명기되어 있고요.
이는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수단으로, 실제 일어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해 정한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폭력적인 처사이고, 어른이 그런 권한을 가지는 것이 옳지 않다 여겨져 다른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주인공인 어린이에 대해 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제한하고 약속을 정한 것은 이 공간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의 안전과 공간의 지속을 위한 조처였을 뿐, 모든 어린이에겐 작은손이 될 자격이 있었으니까요. 어려운 것은 오히려 모야를 이용하지 않을 어른의 역할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팝업 놀이터를 통해 어린이들과 만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바뀌어야 하는 쪽은 어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놀이터를 펼쳐놓으면 어린이는 금세 그 공간을 이해하고, 들어가 자신의 세계로 바꿔놓았지만, 대부분의 어른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규율이나 결과물, 서비스를 요구했고, 방법을 물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어른들의 태도가 고스란히 어린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죠.
어린이들이 실패의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게 제작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선 모야의 공간에 보호자가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보호자와 함께 있을 때 더 즐거워한다거나, 내가 - 혹은 우리가 - 옆에서 지켜봐 줘야 더 힘을 낸다거나, 위험한 건 대신해줘야 하지 않겠냐 하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하지만 앞서의 사례는 오히려 ‘보호자는 모야에 들어오지 않는 게 좋다’는 주장의 근거로 더 적합합니다.
어린이 대상으로 제작 워크숍을 하다 보면, 보호자가 곁에 있는 경우 많은 어린이가 보호자의 반응을 살피고, 그에 따라 제작에 더 열을 올리기도, 흥을 잃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보호자에게 인정받는 것을 더 우선하죠. 만약 어린이가 칭찬을 받기 위해 실패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단 잘 만들 수 있는 게 확실한 무언가만 반복해서 만든다면, 그 제작이 어린이의 주체적인, 그리고 자발적인 활동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어린이의 제작욕구가 계속 이어질까요?
이는 어린이가 모야를 이용하는 동안 출입을 막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린이들은 작업을 마치면 보호자의 곁으로 돌아갈 테니까요. 즐겁게 손을 움직이며 만들어 온 작업물에 보호자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어린 모험가의 마음은 부풀기도, 작게 구멍 난 풍선처럼 쪼그라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제작하고, 또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른의 개입을 막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른 자신의 변화가 중요했습니다.
이것이 보호자는 모야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모험담의 등장인물이 된 이유입니다.
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요청서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는 어떤 곳인지, 보호자 분이 어린이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그렇기 때문에 어떤 걸 부탁하고 싶은지를 정리한 것입니다.
보호자님, 안녕하세요.
<어린이작업실 모야>입니다.
모야는,
모야는 아이들이 상상한 것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여러 가지 재료가 있고, 그걸 바꾸는 도구가 있고, 친구들이 있지요. 이곳은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보호자님은,
보호자님은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보호자님이 아이의 작업과 작업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아이들의 세계는 좁아질 수도, 더 넓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경계를 넓혀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식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참여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가 자유롭게 참여하도록 해주세요. 설령 작업이나 프로그램이 유익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아이가 참여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강요하지 말아 주세요. 스스로 원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의 활동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에게 결과물을 요구하지 마세요.
이곳은 작품을 만드는 곳이 아닌 작업을 하는 공간입니다. 재료를 탐색하고, 도구를 사용하고, 상상을 구현하는 과정 자체에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결과물보다는 작업 그 자체를 존중해주시고,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무엇을 만들었는지, 몇 개를 만들었는지를 묻기보다는 어떤 걸 표현하고 싶었는지, 작업 과정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말을 꺼내놓을 수 있도록 질문해 주세요.
아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믿어주세요.
작업실 내 안전을 살피는 ‘오른손’이 있지만 그런데도 앗, 하는 사이에 아이가 다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아이가 위험을 인식하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운다고 생각해주세요. 큰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위험한 도구는 ‘오른손’의 관리하에서만 장갑을 착용하고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구급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이들 각자의 속도를 존중해주세요.
초행길은 항상 그 실제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집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고민하고, 탐색하고, 판단을 의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작업이 느리고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고, 너무 성급하게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배우고 성장해 갈 것입니다. 그러니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이 있음을 존중해 주세요.
아이들이 작업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작업의 방식에는 규칙이 없지만, 아이가 작업을 통해 무언가 얻기 위해서는 꼭 충족되어야 하는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자율성입니다. 아이에게 작업을 강요하지 마시고, 반대로 언제까지 끝낼 것을 요구하지도 말아 주세요. 아이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만들 수 있도록 지지해주세요.
어린이들의 모험은 보통 집을 떠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죠. 보호자가 직접 등장하는 모험담은 많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로, 돌아갈 집으로 존재하죠.
‘모야’에서 써 갈 아이들의 이야기에서는 이런 역할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충분할까요?
글쎄요. 그것은 모야 프로젝트에 남겨진 수많은 질문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죠.
그러고보니 벌써 빠뜨린 게 보이네요. 어린이가 집에 돌아와서 무언가를 자르다 베인 상처나 글루건의 공격에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을 자랑할지도 모르겠다는 얘기요. 가슴이 철렁하시겠지만 모험에서 막 돌아온 용사들이니 봐 달라는 얘기도요. 하지만 돌아갈 집으로서 존재해달라는 부분은 잊지 않았으니 그나마 가장 중요한 것은 전달한 것 같습니다.
모야에 허락된 유일한 어른, 오른손에 대해서는 다음 챕터에서 이어가 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글, 그림 _ 물고기 (박지은)
이어서 다음 챕터를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어린이작업실 모야'는 릴리쿰, 씨앗재단, 씨프로그램이 함께 만든 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로 집이나 일상에서 떠오르는 영감과 호기심을 손으로 표현해보는 '작업'을 위한 공간입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가 도서관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일상에서 창작하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제3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모야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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