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유난히 목록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책장, 사진첩, 그리고 올 한 해 다녀온 전시들까지.
올해는 유독 미술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해였다. 어떤 전시는 강렬했고, 어떤 전시는 조용했으며, 또 어떤 전시는 오래 곱씹게 남았다. 완벽하게 정리된 리뷰라기보다는, 그때의 공기와 감정을 기억해 두기 위한 작은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회화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미술관만 기록하였다.)
1.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025.01.11.
연초에 만난 카라바조는 예상대로 강렬했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전제로 했고, 인물들은 성스럽기보다 지나치게 인간적이었다.
특히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관련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영상이 인상 깊었다. 미리 공부하고 가니 훨씬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https://youtu.be/6u67kB3SQu0?si=YZwzOPgattUgJaym
이 전시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전시였다. 연초의 시작으로는 꽤 강한 선택이었다.
2.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상설 전시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 2025. 09.26.
이곳은 전시를 ‘본다’기보다, 머문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밀도와는 전혀 다른, 고요하고 느슨한 리듬의 미술관이었다.
Glasgow Boys의 그림들에서는 스코틀랜드 특유의 자연과 현실감이 느껴졌고, 메리 여왕의 초상 앞에서는 역사와 회화가 겹쳐지는 묘한 순간을 마주했다.
오픈런으로 들어간 미술관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작품보다도 고요하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공간의 분위기였다.
3.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마이아트 뮤지엄 / 2025.12.23
회사 컬처데이 일환으로 도슨트해설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 제목에 '클림트'가 들어가서 클림트 전시로 오해하면 안 된다는 당부의 말씀으로 시작한 전시 ㅎㅎ
19세기 이탈리아 회화와 클림트의 이중초상화가 중심으로 구성된 전시였다.
리치오디가 되살려낸 기적의 복원 이야기와 숨겨진 여인의 초상은 인상 깊었기에 별도의 글로 따로 정리해 볼 예정이다.
올해 다녀온 전시들은 하나같이 다른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전시는 시선을 붙잡았고, 어떤 전시는 발걸음을 늦추게 했으며, 또 어떤 전시는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들었다.
전시는 결국, 그 순간의 ‘나’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내년에도 아마 비슷한 목록을 만들게 되겠지만, 그때의 감정은 또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