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앤컴퍼니 사람들의 이야기 #4
대학교 4학년 1학기. 캠퍼스의 낭만에서 벗어나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시기다. 배운 전공으로 평생 먹고살 수 있을까. 전공을 좋아하긴 하나. 전공이 아니면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아진다. 리멤버의 박희우 매니저도 마찬가지였다.
“4학년 1학기가 끝나고 걸어온 길을 돌아봤는데, 이룬 게 하나도 없어 보였어요. 미디어를 전공했는데 적성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도 했고, 전 주어진 일만 했던 정적인 학생이기도 했거든요.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막막하더라고요. 얼른 취업을 하고 싶었어요. 사회 경험을 해야만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는 졸업을 앞두고 경험과 발전에 대한 갈증이 컸다. 정체되어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보면 불안도 찾아왔다. 그래서 리멤버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안도감이 들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그저 직장을 다니는 게 정답은 아니었다. 연차가 쌓인다고 무조건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3년 차 데스밸리'를 겪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박희우 매니저도 다시 한번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리멤버에서 만 4년. 지금은 다르다. 그는 전사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일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뿐만 아니라 리멤버 서비스의 핵심 요소인 명함 정보 입력과 타이피스트 관리 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고객 만족도를 상승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동료로 평가받는다. 박 매니저는 “업무의 목적과 목표에 대해 계속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리멤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타이피스트가 명함 정보를 수기로 입력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IT 시대에 사람이 직접 타이핑을 친다는 소식은 낯설었다. 하지만 문자입력기술(OCR)과 수기입력을 같이 쓴 리멤버는 다른 명함 앱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2014년 8월에 리멤버에 인턴으로 입사한 박희우 매니저는 이 명함 입력 시스템을 운영하고 타이피스트를 관리하는 Digitization 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첫 사회 경험인 만큼 의욕이 넘쳤다. 대학 때 느꼈던 정체가 싫었기에 직장생활은 그 자체로 의미가 컸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의 자세로 임했어요. 새로운 걸 배우고 사회생활을 알아간다는 게 처음엔 너무 좋았죠.”
명함 정보가 정확하게 입력되는지 검수, 검토하고 타이피스트들의 질문에 응대했다. 하루에도 명함이 수만 장씩 들어오기에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일을 하면서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핵심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가는 것만으로 흥미로웠고,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팀의 일원이란 것만으로도 보람 있었다.
복잡하고 실수가 있어선 안 되는 업무였기에 일을 배우고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한 몇 달 뒤부터 나타났다.
당시의 명함 입력 시스템 운영은 손은 많이 가지만 반복적인 업무였다. 예측 가능한 하루가 계속됐다.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를 할 틈이 보이지도 않았다.
“반복적인 일만 계속하다 보니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의 직장인에게는 일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문제는 일에 대한 권태도 같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게 아니라 그저 회사라는 기계의 부속품 같은 기분이 든다. 많은 이들이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기분을 그저 안고 가버린다. 하지만 박희우 매니저는 안주하는 기분을 견딜 수 없었다.
고민이 깊어질 때였다. Digitization 팀에 새로운 동료가 합류했다. 딜로이트와 현대캐피탈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김선 리더였다.
당시 리멤버의 입력 정확도는 타 서비스보다 월등히 좋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리멤버는 시작부터 ‘오류 없는 명함 입력'을 목표로 했다. 수기로 입력한다고 완벽한 정확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한 명함 입력을 위해 시스템을 어떻게 기획할 것인지, 타이피스트의 입력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줄 것인지, 보다 효율적인 프로세스는 없을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시스템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움직였기에 더욱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다. 웬만한 IT 서비스를 하나 새로 만드는 수준이었다. 리멤버의 최재호 대표는 이 명함 입력 시스템 운영을 ‘종합 예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선 리더는 ‘명함 입력 체계를 고도화해서 완전한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목표를 세웠다. 박희우 매니저는 목표가 명확해지자 ‘다음 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일 중요한 건 ‘명확한 목표'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전에는 주어진 일만 했지 ‘어떤 방향으로 서비스를 개선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거죠. 완벽한 명함 입력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 이 일이 단순 반복 업무로 생각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계속해서 ‘다음 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팀의 미션이 '정확하게, 안전하게, 빠르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대량의 명함을, 편리하게 입력하자'로 정해진 것도 그즈음이었죠.”
김선 리더는 미션을 정립하고 세부 목표를 세워 팀원들에게 부여했다. 그때부터 박희우 매니저는 다시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정체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시간이 지나다 보면 루틴이 생긴다. 하루하루가 예측 가능해지니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많은 직장인이 이 권태를 그냥 둔다. 반복적인 생활이 재미없으면서도 편하고, 루틴을 바꾸자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해관계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희우 매니저는 김선 리더가 합류해 목표를 짚어준 시점부터 끊임없이 서비스 개선을 위한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제안하고, 실행했다.
“그때부터 회사가 저를 믿고 일을 맡긴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전에는 반복적인 일만 했었다면 목표가 명확해진 순간부터는 정확도나 처리 속도의 지표를 다각도로 뽑아서 분석하고, 어떻게 이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됐어요. 개선할 수 있는 부분들이 하나씩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개선점을 계속해서 제시하고, 실행하며 서비스를 보완해 나갔어요. 비로소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죠.”
김선 리더는 이끌었고, 박희우 매니저를 비롯한 Digitization 팀의 동료들은 모두 자기 몫 이상을 해냈다. 특히 박 매니저는 성실성과 기획력을 인정받아 1년도 못돼 정직원이 됐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타이피스트 시스템 리뉴얼의 기획을 직접 맡았다. 그의 주도로 타이피스트가 명함 정보를 정확히 입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는 객관식 튜토리얼 기능이 도입됐다. 타이피스트가 직접 정확도와 처리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개선됐다. 오류를 자동으로 감지해 경고 메시지를 띄우는 기능도 추가됐다.
지금의 리멤버는 하루 20만 장 이상의 명함을 처리하면서도 보안 사고나 오차가 거의 없다. 박희우 매니저는 지난 4년간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명함 항목 입력의 정확도를 높이는 일이었어요. 98%까지 올리는 데는 상대적으로 수월했는데, 99%까지 올리기까지 시간이 1년 가까이 걸렸죠. 고된 프로젝트였어요. 하지만 고객 만족에 타협은 없다는 생각으로 해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즐거웠어요.”
그는 김선 리더와 함께 일하며 일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직장 생활에 좋은 멘토가 필요한 이유다. 성장은 그저 경력을 쌓는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명확한 미션을 두고, 그를 위한 세부 목표들을 하나씩 이뤄가야 가능한 것이었다.
박희우 매니저는 ‘서비스의 가치’를 실감하게 되면 ‘일을 하는 이유'가 더 명확해진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리멤버는 무료 명함 스캔 대행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 달만에 수백만 장의 명함이 스캔 팀으로 들어왔다. 명함이 사무실로 배달됐다. 리멤버의 Digitization 팀은 매일같이 야근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어요. 그런데 고객님들이 보내주는 명함 택배 안에 편지나 과자 같은 선물이 들어있었어요.”
고객의 목소리를 통해 리멤버라는 서비스가 유저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완전한 명함 입력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되고, 누군가의 일상을 함께한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해졌다.
“그걸 팀원들하고 보면서 ‘우리 서비스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이 리멤버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실감이 다시 한번 든 거죠. 이것보다 더 큰 ‘일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지치지 않고 무사히 이벤트를 마칠 수 있었어요. 더욱 능동적으로 서비스 개선을 위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리멤버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명함으로 연결되는 세상, 성공적인 비즈니스 기회'라는 비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수기로 사람들의 명함 정보를 입력하는 것도, 그걸 문제없이 처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불가능해 보인다던 미션을 우리 팀은 하나씩 해나가고 있어요. 명함 입력의 정확도는 2016년 말에 99%까지 높였고, 제가 합류할 때 2시간이 넘었던 처리 속도는 자동 입력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평균 15분으로 줄었죠. 초창기에는 100%였던 수기입력 비율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시스템 덕분에 20% 수준으로 낮아졌어요. 타이피스트 분할 입력 방식과 데이터 암호화로 여태껏 보안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죠. 지금까지 누적 1억 3천만 장의 명함을 처리하는 동안에요.”
박희우 매니저는 리멤버에 합류한 지 4년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하루가 새롭고, 도전하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팀 동료들은 모두 ‘정확하게, 안전하게, 빠르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대량의 명함을, 편리하게 입력하자’라는 미션을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개선할 점이 보이고, 새로운 목표가 생겨요. 이제는 정체되어있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계속 성장하고 발전할 거예요. 우리가 세운 미션을 달성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