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외고집설렁탕
맛있는 음식에는 힘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면 무장해제가 되는 기분이죠. 대화가 필요할 때 식사 자리를 찾는 이유가 있습니다. 먹다 보면 말문이 열리잖아요. 어려운 상대와 함께라도 평소 못다 한 말을 꺼낼 수 있어요.
회사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 CEO겠죠. 직원들이 CEO와 밥을 먹으면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요. 불편하기만 할까요. 굳이 불편한 자리를 만들어봤습니다. 리멤버의 명함 스캔 서비스를 책임지는 김재진, 김수경 매니저가 최재호 대표와 점심을 먹습니다.
올해 가장 많은 눈이 내린 날이었습니다. 리멤버의 점심시간은 한 시부터 두 시까지입니다. 점심때가 되니 쌓이나 싶었던 눈도 다 녹았네요.
식사 장소는 삼성동의 <외고집설렁탕>입니다.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된 집입니다. tvn의 <수요 미식회>에도 나왔고요. 주력 메뉴인 설렁탕과 수육이 정말 맛있습니다. 두 조합을 생각하면 느끼할 것 같은데, 먹어보면 신기하게도 담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집은 김치와 깍두기도 뭔가 다릅니다. 어딘가 깔끔하고, 시원해요. 리멤버 사무실이 있는 포스코사거리와도 가까워 걸어서 10분 이내로 갈 수 있습니다.
어색합니다.
먼저 말문을 연건 최재호 대표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자리가 많았는데, 회사가 커지고 인원이 많아지면서 동료분들하고 식사 한 번 하기도 어려워졌네요. 입사한지 오래된 재진님은 아시잖아요.”
“맞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다 같이 모이는 자리가 많았는데, 요즘은 드물어요. 재호님하고 밥 먹는 건 특히 오랜만이고요.”
“예전에는 팀 회식하면 가서 끼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안 부르는 건지 뭔지…”
“안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적절한 타이밍에 음식이 나왔습니다. 수육과 설렁탕입니다.
‘안 부르는 게 맞다’라는 말에 수심이 가득해진 최재호 대표.
최재호 대표가 다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예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재진님 처음 오셨을 때를 떠올려보면 아련해요. 동료가 10명도 채 안 될 때였는데요, 그땐 점심시간마다 다 같이 밥을 먹었죠.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게 4년도 넘었고, 이사도 많이 해서 지금 일하는 곳도 벌써 리멤버의 다섯 번째 사무실이잖아요.”
그 시기부터 함께한 김재진 매니저도 기억을 떠올립니다.
“맞아요. 그때는 호칭도 형, 누나, 동생이었죠. ‘님'자를 붙이기 시작했을 때도 생각나네요. 다들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몰랐죠.”
“별게 다 고민이었네요. 진짜.”
“정말.”
“재진님은 첫 직장이잖아요. 벌써 4년 반이 됐고요.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회사 많이 컸잖아요. 동료도 60명 가까이 되고, 투자도 몇 번이나 받았고, 가입자 수는 250만 명이 됐고. 초기부터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순간순간이 감격스러웠어요. 하지만 우린 훨씬 큰 미래를 그리고 있잖아요. 아직 한참 멀었죠. 나가더라도 잘 되는 모습은 보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회사 성공하는 거 못 보고 나가면 정말 억울할 것 같아요.”
“맞아. 얼마 전에도 다른 동료한테 같은 얘기를 들었어요. 목마르다는 얘기. 빨리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다는 얘기. 성에 안 찬다는 거죠. 우리 보고 성공한 회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작 우리는… 특히 긴 시간 리멤버에서 일한 동료들은 더 간절해 해요.”
“재호님은 그런 동료들 보면 부담도 되시겠어요.”
“뭐, 부담도 있지만, 저도 꼭 너무 해내고 싶어가지고.”
리멤버 사무실은 6층에 있지만, 재진, 수경 매니저가 속한 스캔 팀은 최근에 사무실을 확장하면서 같은 건물 1층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김재진 매니저가 최재호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저희 자리 옮긴 다음에 1층 와보셨어요?”
“가끔 가죠. 몰래.”
“왜 몰래 오셨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밤늦게 가거나 주말에 가서 갈 때마다 아무도 안 계셨어요.”
김수경 매니저도 최재호 대표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뭐 하나 얘기해도 돼요?”
“그럼요.”
“대량의 명함 관리가 필요한 분들 있잖아요. 비서 같은 분들. 그 고객들을 타겟팅해서 명함 스캔 대행 서비스를 광고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이 모이는 카페나 그런 데에. 제가 비서학과를 나오기도 했고, 주위에 비서인 지인들도 있어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비서 분이 관련 문의를 주셔서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됐어요. 비서 분들은 명함 대량 스캔 서비스가 정말 필요한 분들이에요. 리멤버는 모르는데 스캔 대행 서비스만 보고 연락 주신 분들도 있어요.”
“오, 정말, 너무 좋은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사실 이런 생각은 많아요. 그런데 잘 못 꺼내겠어요.”
“왜요?”
“아이디어대로 실행했다가 실패할까봐. 그러면 의견 내기가 더 어려워질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왜냐면, 저도 제가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가 실패한 게 너무 많아요. 시도는 원래 잘 안되는 게 기본이에요. 오히려 한 번에 잘 되는 게 대박인 거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시도하고, 시도하면서 얻은 교훈으로 다시금 더 나은 시도를 하고. 그게 저희가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지금 하던 대로 계속해 나가면 되는 건지, 지금 해내고 있는 게 충분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제안해주시면 돼요. 말 나온 김에 내일 함께 논의해 볼까요?.”
“좋아요.”
“스캔 팀은 올해 엄청난 성과를 이뤘잖아요. 말만 하고 시도도 못해봤던 일. 올해에 무료 스캔 대행 이벤트를 떠올려보세요. 저는 4년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거든요. 사무실이 명함 박스로 뒤덮일 만큼 스캔 서비스를 제대로 한 번 해보자. 대한민국의 명함을 싹 다 스캔해서 디지털로 대이동 시켜보자. 그거 해냈잖아요.”
“감사해요.”
“제가 더 감사하죠. 그리고 지금은 연초를 대비해서 향후 계획을 논의하기에 매우 적기인 것 같네요. 먼저 제안해주셔서 감사해요.”
“안심이 돼요.”
“안심이요?”
“아직 주니어라서 제가 정말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거든요. 가끔 이렇게 밥 먹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호님은 뭐 바라는 거 없어요?”
“두 분이 말씀 주신 것들이 제일 바라던 거였어요.”
“우리 동료들이 재진님처럼 리멤버에 애정을 간직하고 있었으면 하는 거, 그리고 이제는 인원이 많아져서 제가 하나하나 신경을 못 쓰는데, 수경님처럼 먼저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하고, 저에게 말씀해 주시는 거.”
“두시가 다 됐네요.”
“조금만 더 있다 가죠. 두시 반에 들어가는 걸로. 오랜만에 얘기하니 저도 너무 좋네요.”
“그나저나 여기 정말 맛있네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김수경 매니저가 못다 한 말을 꺼냅니다.
“아,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었는데 못 드렸어요. 우리 회사 참 좋은 게, 협업이 잘 된다는 거예요. 팀 내에서든, 부서 간이든. 불필요한 이기주의도 없고. 하나의 목표를 보고 다 같이 달려가는 것 같아서 일할 맛이 나요.”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붙임성 좋은 강아지를 만났습니다. 나름 괜찮은 점심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