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전야

by 일개의 인간
우리가 생활하는 12평 남짓한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에는 단 하나의 룰만 존재한다. 매일 부딪히는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거나 큰소리가 나거나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들은 모두 차단하고 평온함이 깃드는 '쉴 곳'으로 만들 것. 이 단 하나의 룰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매일 밤 9시 오늘의 안건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여전히 나는 절친이자 존경하는 K와의 식사자리에서 예고 없는 일상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가 K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패턴은 그날 대화의 맥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K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나만 아는 고민으로 이미 90프로의 확률로 통보를 하는 것에 가깝다.


- "나 동거를 할까 생각 중이야."

- "갑자기?"


K는 얼핏 보면 놀란 듯 반응하지만 이미 체념한듯한 말투로 내게 물었고, 곧바로 동거를 하면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서 나열 하기 시작했다.


난 K의 이런 한결같은 반응이 너무 좋다. 하고 싶으면 하고 말면 말고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떠한 리스크도 마다하지 않는 나에게 K의 대안은 꽤나 쓸모가 있다. 사실 나에게 선택이란 리스크까지 가지도 않는다. 늘 상황이 닥치면 그제야 대처하는 편인데 K의 선택은 이걸 감당할 수 있으면 해.라는 식이다.


- "잘 생각해야 돼. 한국에선 아직도 동거를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도 무시할 수 없지. 아무리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개인보단 사회가 먼저인 한국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너의 결정의 타격을 줄 수도 있어."


K의 말이 구구절절 옳다. 개인으로 살아가기보단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한국 사회에선 10명의 사람 중 8명이 같은 의견을 제시하면, 각 각 다른 의견을 가진 나머지 2명이 대다수가 가진 의견 쪽으로 기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당장은 괜찮지만 나중일도 생각해야 돼.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일은 모르는 거잖아. 연애는 같이 살지 않으니까 비해 헤어지는 문제에 대해 간소화될 수 있지만, 같이 살다가 헤어지면 각자의 거리를 두고 지냈던 것에 비해 서로 상처를 더 받게 될지도 몰라."


이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꿔서 얘기하면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고 좋은 쪽으로도 얼마든지 방향을 틀 수 있지 않을까. 안 좋은 쪽으로 머리를 굴려봤자 시도를 막는 스위치를 켜는 것 밖엔 되지 않는다. 헤어짐, 이것은 지금에선 접어 둘 일이다.


- "만약에 같이 살다가 서로가 서로를 못 이기면 집 소유자인 네가 나가는 게 아니라 어쨌든 들어오는 쪽이 도로 나가야 하는데, '따로 살자'라고 말을 꺼내는 과정부터 넌 어려움을 겪게 될 거야. 일단은 들어오는 사람이 칼자루를 지게 돼. 너랑 지내겠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본인의 생활을 다 접고 내려오는 거잖아. 혹, 네가 먼저 같이 살지 못하겠다 하는 때가 와도 말을 쉽게 꺼내선 안돼. 결국엔 쫓아내는 것이 되어 버리는 거니까. 이게 너 하나 보고 온 상대방에 대한 배려야."


이것은 미리 대책을 세워두는 것이 서로한테 좋은 일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못 이길 때, 한 사람이 집을 나가야 하고 그 사람이 나는 아니다. 나간다고 해서 꼭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면, 우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는 것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