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활하는 12평 남짓한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에는 단 하나의 룰만 존재한다. 매일 부딪히는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거나 큰소리가 나거나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들은 모두 차단하고 평온함이 깃드는 '쉴 곳'으로 만들 것. 이 단 하나의 룰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매일 밤 9시 오늘의 안건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전 씨와 장거리 연애를 할 당시에는 거의 매일 밤 영상통화를 했다. 한 번은 스크린 뒤로 보이는 빨래 더미와 침대 위에 짐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전 씨의 방을 보고 흠칫 놀랬던 적이 있는데 도대체 잠은 어디서 자는지 궁금해 물어봤더니 바닥에서 잔다고 했다. 통화를 할 때마다 매번 같은 위치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을 보고 전 씨의 청소 습관을 어리 짐작했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다.
우리는 청소 파트를 나누어 번갈아 가며 청소를 하는데, 하루는 전 씨가 바닥청소를 맡은 날이었다. 집에는 액자를 걸어두는 것이 싫어 바닥에 놓았는데, 바닥에 둔 액자를 다 들어내고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액자는 그대로 두고 놓인 부분 주변만 빙 둘러 닦는 것을 보고 나는 재빠르게 걸레를 뺐어 들어 도끼눈을 하고 전 씨를 노려보았다. 전 씨가 설거지 파트를 맡은 날엔 싱크대 주변 사방으로 물이 튀어 물기가 흥건한데도 물기를 닦지 않고 설거지를 다했다며 장갑을 벗었고, 나는 도로 장갑을 끼고 주변을 다시 닦아야 했다. 옷을 개는 것 또한 전 씨는 대충 말아 접어 휙- 식탁 의자에 두면 되지만 나는 단정하게 보기 좋게 개어두고 입지 않은 옷은 옷장에 넣어두거나 걸어두어야 한다.
전씨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지만 내가 보는 전 씨의 청소 습관은 물건을 한번 놓아두면 그 자리는 웬만해선 건들지 않는 것 같다. 눈에 띄는 곳과 그 주변만 깨끗하면 된다. 전 씨가 생각하는 설거지란 그야말로 그릇만 닦으면 되는 것이었을까. 이후에도 서로가 눈치껏 재량껏 청소를 하긴 했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거슬렸다. 이렇게 어딘가 미심쩍은 부분들을 하나하나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괴로웠다. 반복해서 말을 해도 고쳐지지 않을 것 같은 일은 타협하거나 누구 하나 습관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난 전 씨에게 청소에 대해 입을 열었다."
- "있잖아, 내가 생각하는 청소란 마음의 거울이야. 곧 내 마음의 정돈 상태가 청소 상태로 드러난다고 생각해. 먼지 한 톨 없이 쓸고 닦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물건은 항상 있는 그 자리에 놓고 물건과 함께 가려져 있거나 보이지 않는 주변까지 깨끗이 유지하는 것이 청소를 했다고 할 수 있어."
- "응? 집 깨끗한데?",
- "아니. 내 말은, 네가 청소해야 하는 파트를 내가 다시 하고 있잖아. 당연히 지금은 내 맘에 들게 청소를 했으니까 깨끗하지."
- "왜? 내가 청소한 게 맘에 안 들었어?"
우린 서로 웃으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과 말의 뉘앙스는 긴장이 가득했고 날이 서있었다. 나는 아무 문제없다는 듯한 전 씨의 표정이 순간 얄미워 깊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질끔 감았다 떴다.
- "각자 다른 청소 스타일이 있잖아, 내 청소 스타일은 옷은 단정하게 개어두고, 안입는 옷은 옷장에 넣어야해. 매일 아침 일어나면 환기를 시키고 바닥을 청소하고, 설거지는 밥을 먹고 난 후 바로 하는 게 좋아."
- " 응. 지금 우리 그렇게 하고 있잖아."
- "자세히 말하면, 바닥청소는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다 들어내고 그 밑까지 닦고, 설거지는 그릇만 닦는 게 아니라 그릇을 닦고 난 후 그 주변 물기까지 다 닦아야 설거지가 마무리가 된 거야."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다)
- " 흠.. 그래 알았어. 다음부턴 그렇게 할게. 뭐든 깨끗하면 좋지 뭐."
전 씨는 분명할 얘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하기 전에 내 감정을 먼저 읽었다.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고 바로 응하는 전 씨에게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던 건 아닌지 미안함이 들어 당시에는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고 난 후, 전 씨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그때는 왜 순순히 응했는지 물었더니 그때와 똑같이 뭐든 깨끗하면 좋은 거다 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 씨와 내가 같이 살기로 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청소는 생활 습관이 맞지 않는 부분 중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린 여전히 이 안건을 가지고 티격태격 중이지만, 각자가 원하는 포인트를 건들지 않거나 지켜주는 쪽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