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활하는 12평 남짓한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에는 단 하나의 룰만 존재한다. 매일 부딪히는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거나 큰소리가 나거나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들은 모두 차단하고 평온함이 깃드는 '쉴 곳'으로 만들 것. 이 단 하나의 룰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매일 밤 9시 오늘의 안건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혼자 살아서 편했던 점은 너무 많다. 개인 공간이 있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집안을 오로지 내 취향만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볼륨을 있는 대로 높여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불러도 시끄럽다고 핀잔을 듣지 않아도 되고, 기름을 여기저기 튀어가며 요리를 해도 눈치 보이는 일이 없다. 일이 없는 날엔 하루 종일 잠옷 차림으로 방바닥을 굴러다녀도 씻으라고 재촉하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밤늦게 까지 친구를 만나고 들어와도 인기척에 잠이라도 깰까 까치발을 들고 집안을 서성이지 않아도 된다.
이 중에서도 가장 편했던 점을 꼽으라면 단연 아침시간을 방해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아침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내 방을 습격해 이불을 들추는 것을 걱정할 일이 없고, 위-이잉 하고 시끄럽게 돌아가는 청소기 소리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
나의 기상시간은 보통은 9시-10시로, 아침잠이 많기도 하지만 문제는 안 그래도 밝은 귀가 아침에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반응할 정도로 소리에 민감해진다는 것인데, 전 씨는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 7시면 자동적으로 눈을 뜬다. 그다음엔 일어나자마자 밥을 챙겨 먹는 사람이라 난 전 씨가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에 강제 기상을 해야 했고, 전례에도 없는 아침 7시 기상을 며칠씩이나 하다 보니, 평소 루틴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몸도 쉽게 피곤해졌다. 아무리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적응하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아 대책이 시급했다.
- "나 요 며칠 7시에 일어나다 보니까, 몸이 너무 힘들어서 저녁에 일하는데 집중이 안돼."
- "어떡하지?.. 나도 더 자고 싶은데 7시만 되면 정말 자동으로 눈이 떠져." (정말 더 자고 싶어 하는 전 씨에 표정을 보니 헛웃음이 난다.)
- "뭐, 그래도 일어나서 같이 아침을 먹는 건 좋은데, 그것만 좋아."
- "흠, 귀마개를 끼고 자면 어때?
- ".. 그러면 잠에서 깨지 않는 게 아니라 깨어 날 일이 없을 거야."
- "왜?"
- "귀마개를 끼면 거슬려서 잠을 못 자고 밤새 깨어 있을 거거든."
이미 한번 정해져 있는 루틴은 바꾸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나는 아침잠이 많으니 전 씨가 나의 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대로 내가 전 씨의 기상시간을 맞추는 건 하루 루틴이 바뀔 수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3일을 같은 안건으로 회의를 한 결과 전 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을 가기로 하였고, 나는 잠을 더 잘 수 있는 대신에 저녁에는 전 씨의 숙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이 늦어질 것 같으면 작업실에 나가 일을 하기로 했다.
전 씨가 오고 나서 눈에 띄는 한 가지는 서로가 자연스레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로 이 사람이 나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의 눈치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루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눈치를 살핀다.
이전에는 혼자 살아서 편했던 점도 있지만, 둘이 살면 혼자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둘만 아는 편안함이 있다. 비록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건 혼자 살 때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줄어든 만큼 나와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