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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개의 인간 Mar 13. 2023

교육의 수요와 공급,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여전히 연관성 없는 각 나라의 언어들을 다루느라 깊이 있는 일상을 보낸다. 한국어와 영어만 두고 보아도 문자 사이에 제대로 된 연관성을 찾기 힘든 언어로 한-영/ 영-한 교차 형식의 수업은 상당한 양의 설명이 주어져야 한다. 직역이 아닌 말과 말 사이에  행간을 주도적으로 파악하는 문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실로 현재 까지는 뜸하게 진행 중이었던 0개 국어가 활발하게 완성되어 가는 듯하다.


나는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번아웃이라 하기엔 조금 과장이지 않을까 싶다. 나 스스로도 전체적인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지 않아 보이기에, 다만 학습의 면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얻고 가꾸고 다루는 일에서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 상태로 교육이란 체계로 넘어오면 역시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학습을 돕는 것에 감흥이 줄어든다. 주어진 일을 익숙하게 해내어 가는 것이 최선일뿐 보람도 열정도 사그라들었다.


최근 수업에서 문장에 filler words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매 순간 뇌를 갉아먹는 느낌을 느껴 본 적 적이 있나? 살면서 의식적으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던 질문이라 생소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사각사각 뇌를 좀먹고 있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어민처럼 영어 하는 방법’. ‘자연스럽게 영어 하는 방법’에  하나의 프리패스로 기술을 전수받았다는 걸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호들갑이 라고도 한다. 참변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무언가가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당연시 거쳐야 할 과정을 덮어둘 때 이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정당한 대가로 그때 참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모이는 사람들은 잘하게 보이는 눈속임의 기술만을 획득하고 이게 정답인 것 마냥 학습을 이어간다.  


우리가 말을 해야 할 때 의식적으로 행해야 할 것은 적재적소에 쓰임이다. 인위적으로 모양새를 다듬는 것이 의식되면 그리고 더 나아가 이것이 맞다고 인식되는 순간 교육의 방향은 틀어진다. 압도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언어학습에 프리패스 구간을 만들어 놓으면 결과물의 완성도는 떨어진다. 그리고 학습자에게 이러한 교육의 형태가 굳어지면 앞으로의 교육자는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인다. 결국은 수요 맞춰 공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큰 틀로 보아 좋은 교육의 질은 자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택하는 안목에서 교육에 질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 안목을 통해 얻어 낼 수 있는 것에 퀄리티는 제대로 된 것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배움은 정해진 기간이 없다 는 말을 좋아한다. 평생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미래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난 이 희망을 위해 교육자는 배움을 결과만으로 현혹하지 않고, 학습자는 배움을 오래도록 탐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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